신자유주의와 ‘문화전쟁’
강내희 / 중앙대 영문학(문화연구)
한국의 2000년 한해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지배와 그에 맞선 민중투쟁의 한해였지만 동시에 ‘문화전쟁’의 한해이기도 했다. 연초에 ‘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위’라는 한 보수적 시민단체가 장선우의 영화 <거짓말>을 음란물로 검찰에 고발한 이래 문화영역에서는 억압과 침탈이 끊이지 않았다. <거짓말> 논란이 채 가시기 전에 같은 단체가 임권택의 <춘향뎐>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시비를 걸더니, 이어서 만화 <천국의 신화> 작가 이현세, <거짓말>의 원본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쓴 장정일이 음란물 제작을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뿐만 아니다. ‘입김’이라는 페미니스트 작가 집단은 전주 이씨 종친회와 유림회의 방해로 ‘아방궁 종묘점거 프로젝트’ 전시회를 포기해야 했고,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든 명필름도 JSA 전우회가 난입하는 수난을 겪었다.
공동경비구역 JSA 제작사에 전우회 난입
이런 문화전쟁 현상이 처음 나타난 곳은 미국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보수임을 자임하는 세력들이 ‘가족’ ‘전통’ ‘개인 책임’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사회 기강을 바로 세운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노동자, 여성, 소수민족,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를 ‘무책임 조장, 기독교 문화 전통 무시, 가정 파괴, 도덕적 문란 행위’로 몰아부치는 이들은 ‘신보수주의자들’이다. 최근 보수 단체들이 문화적 표현물을 놓고 음란성 시비를 걸며 나서는 것을 보면 한국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 보수주의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강화될 때 일어난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문화 보수화가 일어나는 것은 ‘20 대 80 사회’의 출현, 즉 인구 양분 현상 때문이다. 극소수가 사회적 부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다수를 통제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 가운데 하나는 다수를 ‘가치 없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무책임, 무능력, 성적 문란 등의 누명을 씌움으로써 체제의 희생자인 대중을 오히려 비난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맥락에서 기본적 권리 행사를 비난하고 죄악시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문화전쟁이 국내에서 ‘음란물’을 범죄시하며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지금 관행대로라면 음란물로 판명되는 표현물을 제작하는 행위는 모두 위법이 된다. 음란물 제작은 과연 위법인가? 표현의 자유가 기본권이라면 표현물로서의 음란물 제작도 당연히 기본권에 속한다. 음란물의 제작과 그것의 위법적 제작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음란물을 제작했다는 것만 가지고 처벌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으로 처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문화 보수주의, 신자유주의 강화 때 기승부려
지금 문화전쟁은 기본권을 무시하며 진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호도하는 문화적 통제의 일환이다. 문제는 이 통제를 더 이상 국가만이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찰만이 문화 보수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예술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졌다는 민예총도 <거짓말> 사태가 났을 때 ‘음란물’을 만든 감독을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
노동의 진보운동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 전선에서 ‘따로 함께’ 투쟁하려면 문화 좌파와 노동 좌파는 힘을 합쳐야 한다. 진정한 진보는 각 부문의 좌파가 연대해야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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