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또는 이른바 여성문제 일반에 대하여

–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상태 (회원)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사건이 생겼고 말이 많아졌다. 이는 복잡 미묘한 일인가? 그렇다면 다음은 어떤가.

첫째, 현 100인위 활동에 대해 조직의 이름으로 전폭적인 지지 성명을 발표한다.

둘째, 성폭력 사례 실명공개와 연관하여 이에 대한 평가, 징계 및 차후처리 과정에 대해 역시 100인위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한다. 따라서 그 과정에 대한 물적 정신적 지원을 남김없이 수행한다.

셋째, 100인위와 연대하여 그들과 의뢰하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조직 내부의 공식적인 감찰기관을 구성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 조직 내의 성과 여성문제에 관한 강령, 내규 일체를 검토하게 하고 성폭력문제 등 관련된 사항들을 상시적으로 검토 관찰하게 하고 문제 발생시 평가 및 처리를 그들이 전담하도록 한다.

이것은 현 100인위와 그 활동에 대한 극단적인 그리고 명확한 태도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는가? 그 이유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대답들을 가지고 있는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천가지나 만가지를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대답들을 100인위는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은 그 대답에 대한 반론을 충분히, 다시 말해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충분히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에 대답하는 것은 적지 않게 중요한, 하나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모두는 개별적인 차원에서라도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바로 전체적인 총체성에 이르는 통로가 되는 때문이다.

어떤 총체성?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동안 우리가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해야 할 그 어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무엇인가 하면…

진정으로 웅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기실 100인위의 문제의식이란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뻔하게 있었던 내용들의 반복 그것도 부분적인 반복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것의 이면이다. 그것을 발생시키는 어떤 거대한 기초가 문제인 것이다. 그건 대체 무엇들이었을까.

첫째, 우리는 욕망 일반 나아가 한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짝짓기 방식의 규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결국 운동은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생존해야 하는 대중의 삶의 방식, 그 핵심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했을 때 이 욕망들과 규칙들은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징검다리이다. 일부 일처제가 옳은가? 90년대 이후, 사실은 유사 이래로 반복되어온 20대들의 전투적인 성행동의 양태를 뭐라 해야 하는가? 너무도 바쁘고 힘이 버거운 좌파-아니 노동운동 진영 일반-들은 이 문제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물론 힘과 역량이 없다는 건 전혀 아니다. 요지인즉, 그게 언제이든 짚고 넘어가지 안되는 뜨거운 감자가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이 문제들은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할당제 같은 문제를 훨씬 뛰어 넘는다. 남과 여가 더불어 간다는 것은 한 운동과 조직의 형태와 내용 전체를 질적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적모순을 진지하게 되묻는 한 해방의 비젼은 단순한 승리 같은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인간이 관계한다는 것, 싸운다는 것, 사람이 사람처럼 산다는 것 전부가 다른 그림으로 제출되는 때문이다. 성적모순을 디딤돌 삼아 인간과 관계 자체를 전혀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구성하는 것. 이것은 아틀라스의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지만 이 또한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그들은 누구였을까? 이른바 386 이후 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오늘날 100인위로도 현상했던 이들은 90년대 중반 이후로 캠퍼스를 휩쓸고 다녔었다. 그들은 ‘고독하고 고통스럽다’ 했고, ‘일상이 투쟁’ 이라 했으며, ‘문화적 축제와 페스티벌이 투쟁의 방식’이고 ‘엽기야말로 전투성’이라 했다.

오늘날 캠퍼스는 몰락해 가고 있다. 좌파 활동가의 재생산은 무척이나 암담해 보인다. 대체 어떤 고뇌들이 우리의 후배들을 짓눌렀던 것인가. 투쟁과 운동은 일단 고통의 감지와 몸부림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들은 그 고통을 딛고 그들만의 활동가가 되었다. 이것은 근원에서부터 고찰되어야 한다. 좌파와 그들이 만난다는 것은 먼저 이 이질적인 고통이 맨살로 부딪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것은 끝없이 평행한 동어 반복에 불과하다.

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침투가 확대되는 90년대 이후 한국 자본의 속살에 맞닿게 되었다. 현장 밖에는 드디어 또 하나의 현장이 자신을 현장으로 주장하고 있다. 문화, 성, 사이버 공간, 무엇보다 일상대중의 일상적 삶 속에 있는 빈곤과 번민과 욕망과 쾌락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에 대답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말 작은 것,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것.

강력한 위원회의 건설. 이것이 답이다. 사려 깊고 역량 있는 인자들로 구성된, 여성문제에 대해 참으로 전투적인 위원회가 조직 내부에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여성 조직원들에 의해 이끌어져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좌파적-여성주의적 활동의 모델이 정말로 요구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백 번의 논쟁보다 이러한 활동의 모델이 천 배나 중요하다. 누가 과연 그것을 할 수 있는가. 바로 좌파다. 여성들의 주체적 활동을 전제로 그것을 조직 전체가 마음과 몸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범례! 그것은 좌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앞서 말한 넓고 근원적인 시야를 확보하고 당장의 현실에서 가장 구체적인 사안들을 실제적으로 처리하고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첫 걸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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