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을 다녀와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을 다녀와서

주 현 숙(서울여성노조 조합원)

얼마 전 일본에서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편집했다.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 다녀온 지 열흘이 지난 뒤였다. 일일이 장면 장면을 확인하면서 시간을 적고 그 장면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를 기록했다. 하루하고 반나절을 꼬박 앉아서 테이프를 돌리고 정지하고 적고 다시 돌리고 정지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보낸 10일을 다시 겪었다.

일본에 가기 전부터 여러 고민을 했다. 내가 위안부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했나?,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가? 등,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여러 질문들이 생기는 데 그게 정리가 잘 안 돼서 자료를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난 취재를 하러 가는 거다. 그 다음은 그때 생각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좀 무책임한 결론이긴 했지만 그 후로 맘이 좀 편해졌다.

일본으로 떠나던 날, 잠을 눈에 주렁주렁 달고는 비행기에 앉았는데 앞좌석에 할머니가 앉으시는 게 아닌가. 참 난감했다. 그 할머니는 위안부였던 분이었다. 이 분을 당장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 이전 고민들보다 더 절박하고 급박한 것이었다. 난 마치 돌덩이가 된 듯이 그냥 앉아 있었다. 멍하니 창 밖을 보면서 말이다.

일본에 도착하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내 대상이며 취재원이었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물꼬가 터진 듯 난 숨쉬기도 힘들만큼 즐겁고 또 즐거웠다. 내 몸이 카메라가 되고 트라이포드가 되고, 보이는 모든 것을 느끼고 반응하며 촬영했다.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 덕에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그렇게 나를 둘러싼 상황의 힘이 느껴질 때면 난 너무 즐거웠다.

그 와중에 할머니랑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그 분이 참 여리고 얘기도 조근조근 잘 하시는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처음의 그 당혹스러움은 자취를 감추고 난 할머니의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마치 어릴적 외할머니와 살았을 때처럼 말이다.

남북이 함께 일본 천황과 기타 관련 사람들을 기소하는 날이 왔다. 그 할머니는 증언석에 앉아 당신이 겪었던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평범한 할머닌데, 난 마치 그 할머니를 이전부터 알고 있다 이제서야 그 할머니의 과거 일을 듣게 된 사람 마냥 당황스럽고 가슴 아팠다. 각국에서 온 일본 성노예 피해자들이 증언 할 때마다 난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 집중했지만, 법정 막바지에는 문화행사를 촬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날 발견했다. 한 여성이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떤 일을 겪을 수 있는지, 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강요당한 이야기를 들으며 난 너무 억울했다.

난 이번 일본방문에서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그렇게 방황하던 나란 인간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어떤 이슈에도 사람이 먼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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