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후진국 카타르와 WTO

이수강

‘WTO, 시위 없는 나라를 찾았노라?’

이제 세계경제 관련 대규모 행사 유치는 천덕꾸러기 같은 기피의 대상이 된 것

일까. 지난달 30일, 올해 말로 예정된 WTO(세계무역기구) 제4차 각료회의를 카타

르 수도 도하에서 개최키로 발표한 WTO는 그 동안 개최지 선정을 놓고 고심을 거

듭해야 했다고 한다.

140개 회원국 중 유치 신청국은 단 한 곳

그 동안 각료회의 유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나라는 카타르 단 한 곳 뿐. 그

러나 애초 WTO 회의 개최후보지로서 카타르는 ‘주요’ 회원국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지 못했었다.

개최지 선정 얼마 전의 한 국내 신문 보도에 따르면, “5천여 명의 각국 주요인

사들이 참가하는 WTO 각료회의를 개최하기에는 카타르의 국내 제반시설과 운영 및

보안능력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 WTO 회원국들의 대체적인 입장”이며, “특히 미

국은 지난 해 예멘에서 미 해군 구축함을 상대로 폭탄 테러사건이 발생했다는 점

을 들어 중동지역에서의 WTO 각료회의 개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하면서

만일 카타르가 개최지로 선정될 경우 각료회담에 불참하겠다고 위협”했는가 하면,

“유럽연합(EU) 역시 시설미비 등을 문제삼아 반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

이다. ([매일경제 신문] 1월 16일자)

카타르 외에 칠레 정부가 유치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밝혔었지만, 개최지 선정

전 “개최 비용과 총선 등 국내 사정”을 들어 개최 의사를 철회했다고 한다. 그러

는 와중에 카타르 정부는 “(1월) 26일까지 각료회의 개최지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

유치신청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하기도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결국 WTO

일반이사회는 30일, 카타르의 각료회의 개최 희망을 수용한 것이다.

WTO 조직체계에서 각료회의는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설정돼있다. 140개 회원국을

자랑하는 WTO가, 자주도 아닌 2년만에 여는 각료회의 개최지 결정에 왜 이처럼 어

려움을 겪고 있는 걸까.

시애틀 후속타자 있습니까?

그 의문의 해결은 2년 전 3차 각료회의 개최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99년 11월 3차 각료회의가 열린 곳은 바로 미국 시

애틀. 다 아시다시피 당시 시애틀에서는 전세계로부터 달려온 반세계화 시위대와

치안당국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벌어진 바 있다.

시애틀 뿐만인가. 작년 IMF·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렸던 프라하, ASEM 회의가

열린 서울, 그리고 최근 전세계 경제계 명사들의 파티가 열린 다보스까지, 세계경

제 관련 행사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시위대에 의해 ‘몸살

을 앓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느 나라가 선뜻 시애틀의 후속 개최지가 되겠

다고 나서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보면, WTO의 이번 카타르 개최 결정은, 단지 마지 못해서가 아

니라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내린 선택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동에 있는 인구

60만의 작은 왕국 카타르는 평화적 시위마저도 제한되는 ‘초강력 질서의 나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ASEM회의가 끝나고 정부의 한 고위인사는 “각국

장관들이 한국은 확실히 질서가 잡힌 나라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때 ‘질서’란 무슨 의미겠는가.)

그렇다면 도하 회의는 과연 ‘조용하게’ 넘어갈까? WTO는 ‘인권 후진국’ 카타르

의 상황을 이용해서, 반WTO 세력과의 마찰을 감당하는 비용을 거기로 떠넘기는 꼴

이 아니냐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문득, 서울시내 모 기업들이 자신의 건물에 외

국 대사관을 입주시켜 반대세력의 시위를 방지하는 ‘묘책’을 쓴다는 게(집시법상

대사관 주변에서는 시위 금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다음 회의는 버마에서 하시지”

미국의 진보적 월간지 [프로그레시브(Progessive)] 사이트

(www.progressive.org)에서 본 이에 대한 짤막한 촌평을 소개할까 한다. 이 저널

의 편집장 매튜 로스차일드(Matthew Rothschild)가 쓴 “카타르로 숨어버린 WTO”*

라는 제목의 글인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구적 기준의 인권관’을 유의해서

보긴 해야겠지만.

“2000년 (미국) 국무부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카타르는 헌법도 정당도

없는 군주국이다. 안보관련 사건에서의 자의적 구금, 언론·출판·집회·결사·신

앙의 자유 및 노동자 권리의 제한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국내

인권단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 카타르 국왕은 WTO 회의가 열릴 동안 반대시위를 허용하겠다고 말은 하지

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이런 억압적인 정부가 ‘제2의 시애틀’을 피

할 수 있는 이상형이 되는 것이라면, 이는 WTO가 인권, 노동권 및 시민의 최소한

의 기본적 권리에 얼마나 무감각한가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그

러나 이 같은 사실은 WTO (회의개최지) 입안자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력적인 사실이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WTO의 최대 고민 거리는 대표단 숙소의 확보 문제

였다. 그러나 카타르는, 대표단을 페르시아만 항구의 유람선에 투숙시키겠다고 제

안함으로써 이를 해결했다.

카타르의 유람선이라.–아, 세계화의 영광이로다. 다음 번엔 어디서 할 텐가?

혹시 버마에서?”

카타르로 숨어버린 WTO

[프로그레시브] 2/1 매튜 로스차일드

이번 주에 세계무역기구(WTO)는 다음 총회 장소를 발표했다. 당신은 아마도 WTO를

기억할 것이다.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이 도시를 스타벅스나 그런지록 밴드들이

나 마이크로소프트(이전까지 시애틀은 이러한 것들로 유명했다-옮긴이)가 아니라

저항 활동과 동의어로 만든 대규모 거리 시위가 일어나게 했던 바로 그 무역 그룹

이다. 아마 WTO의 보스들은 그런 일이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카타르의 수도인 도하를 올 11월 회의 개최지로 선택했다. 세계지도를 꺼

내 보라.

카타르는 사우디 아라비아 동쪽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이다. 접근 불가능이라는 말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게 상황을 드러내지 못한다. 여행사에 문의를 해봤더니 시카

고 왕복 비행기 요금이 2123달러였다. 이 비행기들이 이 회의에 몰려가는 시위대

들을 가득 태우고 갈 것 같지는 않다. 거기에 가는 것만도 이미 반은 투쟁이다.

시위는 완전히 또 다른 것이 될 것이다.

2000년 2월 25일 카타르에 대한 미국무성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카

타르는 …헌법과 정당이 없는 왕정 국가이다.” “보안 사건에 있어서 임의 감금과

표현, 언론, 집회, 결사, 종교의 자유,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탄압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국내에 인권그룹이 존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 카타르의 왕은 WTO회의 때 시위를 허가하겠다고 말했으나 아무래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게 억압적인 정부가 제2의 시애틀을 막는 데는 이상적이겠지만, 그

것은 WTO가 인권과 노동권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참여를 잊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카타르에 대한 이러한 사실이 WTO 운영자들을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것이 바로 카타르를 매력적으로 만든 이유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처음에는 도하에 대표들을 위한 호텔방이 충분히 없다

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카타르는 페르시아만 항구에 유람선을 띄우겠다고 제안함

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다. 카타르의 유람선이라– 아, 세계화의 영광이여! WTO

다음 개최지는 어디일까? 버마?

*이수강은 하니리포터로 이 글은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 2월 7일자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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