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점(평화인권연대 갈등중재모임 ‘봄길이 되는 사람들’)
‘봄길이 되는 사람’을 통해 여러 가지 중재의 마인드를 배우고 기술들을 익혀가면서 가장 난감하고 어려웠던 부분은 바로 사람의 문제였다. 사람과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그 사람과 협상을 한다는 것은 목소리 높이기 아니면 침묵하기가 될 것이지만 나는 여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는 비열하고 의식없는 사람인데 내가 그의 감정까지 살피면서 조심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에 있어서 감정은 매우 중요하고 실익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잘 처리를 해야하는 문제이다. 우리 아버지와 같은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사람과 문제를 분리시키는 과제는 이루어져야만 했다.
지난 겨울방학은 나에게 혹독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 날 동생이 술먹고 계단에 얼굴을 찧어 병원에 입원하였다. 엄마와 나, 아버지는 비상에 걸렸다. 각자 하는 일이 많고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가 동생이 퇴원하는 날까지 병원도 지키고 가사일도 해야했지만 그런 일을 책임 질만큼 여유 있는 사람은 없고… 결국 나와 엄마가 가게와 병원을 오가는 수밖에 없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난 동생 옆에 짧은 의자에서 몇 일씩 지내다 집에 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힘들게 수발을 들고 있는데 엄마가 와서 집에 설거지 안 해 놓았다고 신경질을 있는 대로 부렸다. 옆에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방청소도 안 한다고 떠들었다. 나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고 짜증이 났다. 집에 와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시고 설거지는 잔뜩 쌓여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짜증을 부렸다. 피곤해 있었는 데다가 엄마의 꾸중을 들은 데다가 집에 와도 쉴 수가 없다고 느껴지니 더욱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며 “니가 피곤한 건 알지만 나도 일 해! 아버지는 늘고 먹는 사람인 줄 알아!”하셨다. 나는 울면서 방에 들어왔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 했단 말인가? 아버지께 어떻게 했어야 할까?
문제는 일단 사람과 분리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소에 아버지에게 택택거리는 태도로 설거지이야기를 했다. 그것도 아버지는 아무 일도 안하면서 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사실이 그렇지 않았는데다가 나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물론 나는 아버지에게 조금도 잘 해 줄 이유가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평소에 쌓여 왔으므로 그날따라 특별히 갈군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피곤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폭발의 여지는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평소에 왜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느냐이다. 일단 내가 아버지에게 갖는 생각은,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독단적, 독선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하고 잘난 체를 한다는 것이다. 그 세대의 남성이 으레 그러하듯 큭별히 잘 하는 것은 없어도 가부장적이고 허풍도 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살아왔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협상법에서는 일단 사람과 문제를 분리시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우리 가족이 위와 같은 상황인데도 아버지가 자신의 밥그릇도 씻지 않는다면 나와 엄마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이럴 때 일단 아버지에게 설거지 하라는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이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도 일을 하고 피곤하다는 것, 그리고 동생 때문에 아버지 나름대로 많이 신경을 쓰신다는 점을 내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 문제로 상대방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비난은 정당화 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효과적이지 못하고 감정의 골을 더 깊게 한다. 나도 아버지께 “아빤 설거지도 안 해 놓고, 도대체 집에서 놀구만 있는거야? 난 피곤해 죽겠는데…”라고 이야기 함으로써 결국엔 설거지는 쌓이고 혼자 울어야 했다. 문제를 이야기 할 때에는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과 문제를 분리시키라는 원칙을 지켜 말하면, “아버지, 저 지금 3일동안 병원에서 잤더니 온몸이 피곤한데 어머니도 설거지 하기는 너무 피곤하시지 않을까요? 아버지께서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는데…”처럼 부드럽고 완곡하지만 할 말은 하는 것이 되고 결과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좋은 해결 방식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결정 과정에 동참했다는 확신을 갖게 하고 협상 결과에 그의 몫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한가지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반자로 파악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설거지를 하게 만들 대상, 정복되어야 할 적이 아니라 당장의 설거지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대책위원회이다. 이런 과정에서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는 제스쳐를 취하면 금상첨화이다. 그러면 아버지와 좀 더 많은 부분에서, 설거지뿐 아니라 빨래와 청소, 반찬하기 등의 일을 함께 분담해보자고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 스스로 그 전에 기대할 수 없었을 만큼 도와주셨을지도 모른다. 만약 감정적으로 이미 상해있다면 그것을 숨기지 말고 전달하라. 하지만 “아버지가…하니까 나빠요!”식이 아니라 “제가 느끼기에는 …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식의 ‘나’를 주어로 하는 문장으로 이야기해보자.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는 동의를 구하는 효과적인 의사 전달법이다. 그리고 만약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폭발한다면 그냥 놓아주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잘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처음엔 힘들겠지만 스스로 무한한 인내심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참는 것이 낫다.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한 번에 한 사람만 화를 낼 수 있는 원칙을 정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서로 의사소통에서 원활하기 위해서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그가 이야기 한 것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다시 말해주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의 적극적 태도를 알려줌과 동시에 정확한 의사소통을 더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매일 저녁 설거지를 하시겠다는 것이죠?”라고. “아니, 그러니까 저녁에 식사한 것만 설거지를 하겠다는 것이지.”라는 반문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잘못된 의사소통으로 인한 치열한 신경전은 되묻는 그 한마디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이렇게 이야기만 했어도…무엇보다도 아버지와 나 사이에 이렇게 깊은 감정의 골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 상관없는 듯해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깨닫게 되는 것이 협상법의 묘미인 것 같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빙판길에 넘어지셔서 입원하셨다. 지금은 어머니는 절에 가셨고 나는 가게를 보고 있고 동생은 밥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가사일을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신다.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느끼고 있지만 이렇게 배운 협상법은 아직 써먹지 못했다. 봄길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갈수록 느끼는 것은 말은 쉬워도 행동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과의 감정적인 문제는 서로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기술들과 사람과의 문제들을 배우고 서로 연구하면서 이미 한 걸음 내딛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논의, 삶에의 적용을 통해 내가 꿈꾸는 공동체의 상에 가까워지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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