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우(평화인권연대 회원, poignant@hanmail.net)

한 100년쯤 더 살았다고 치고, 우리가 1900년을 생각하듯 요즘을 돌아보자. 역사책에 무엇이 기록이 될까? 인도에서 발생한 지진이나 광우병 파동, 전세계적인 경제적 불황, 미국의 부시의 당선으로 이어지는 신 냉전의 시작, 인터넷의 등장과 확산, 인간복제의 시작등등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한국사에는 남북정상회담이라던가, 아니면 IMF(증말 지긋지긋하다)의 시작으로 말미암을 불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지 모르겠다. 어쩌면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 문제라던가 이미 100만명(공식집계라는데)을 넘어 버린 실업자들의 행렬등이 교과서 모퉁이에 실릴지도 모르겠다.(솔직히 자신은 없다) 아마도 모든 것을 ‘불황’이라는 한마디로 넘어가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00년을 살아가는 우리모두에게 있어서는 역사에 단 한줄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들조차 솔직히 버겁고 힘든 것 같다. 하긴 다 아는 이야기는 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금은 내가 얼마 전에 겪은 역사책에 결코 실리지 않을 이야기를 하나 하는 것으로 하자. 정세(?)와 무관하다는 이야기이다.

본가에 조카가 두 명 살고 있다. 한 명은 4살이고 한 명은 7살이다. 둘다 제법 까불거리고 말도 잘한다.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증말 귀엽다. 명절이었던가, 아니면 그냥 안부 방문이었던가 아무튼 본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이었다. 늘 그렇듯이 신기한 물건을 파는 아저씨가 지나가고, 멍청하게 맞은편 검은 차창을 보고 있을 때였다. 반대칸에서 문이 열리더니 어림짐작으로 보아 5살이나 6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가방을 메고 삐뚤삐둘한 글씨로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승객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솔직히 순간 흠짓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쪽지를 나눠주는 것은 본적이 있어도 이렇게 어린 아이까지 쪽지를 돌리는 모습에 방금 같이 있다온 조카들의 얼굴이 겹치는 것이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정말 좀 그랬다.

게다가 문제는 그 아이의 눈이었다. 아이의 눈이 아니였다. 정말 세상의 끝에 기대고 있는 듯한 절망한 세파에 찌들은 어른의 눈이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지하철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빌어먹을 자본의 논리겠지.

나는 생각을 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까운 파출소에 데려다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과연 아무런 문제없이 좋은 결말을 가져올지 자신이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비겁했기 때문이다. 이미 몇 주가 지난 그때 그 일이 끝내 떨어지지가 않는다.

언젠가 동아시아의 아동인권에 대한 글을 읽고 적잖이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아동의 매매, 매매된 아동의 매춘, 매매된 아동을 용병으로 만들고 또 매매된 아동을 쇠사슬로 묶어서 고무를 생산하는 고무농장에 관한 글들. 그리고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해외입양 된 아이의 장기를 떼어내서 판매하는 상인들의 이야기들.

그러나 그 아이들을 파출소로 데려간다고 해서 그들에게 보장된 미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히도 육아와 아동에 관한 사회적인 인프라가 분명 우리에겐 없다. 신문지상에 널린 짐승만도 못한 딱한 사정이 1세기도 아니고 10세기도 아닌 21세기 인간세계에 횡횡한다.

과연 세계는 지난 수백만년동안 진화하기나 한 것일까. 다윈이 살아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진다. 물론 역사에 기록될만한 질문도 꺼리도 못된다. 지하철에서 그 아이를 봤을 때 나는 도대체 어떡해야 하나.. 또 당신은 어떻게 할것인가. 도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권말살의 현장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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