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노동조합의 역사(1)

어제의 우리가 오늘의 우리 노동자를 만들었습니다. 또 오늘 노동자 투쟁과 삶이 내일의 노동자 삶이 될 것입니다. 어느덧 노동조합의 역사가 14년을 흐르고 있습니다. 한번쯤 지나온 세월만큼 우리 노동조합의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할 것 같아 ‘현장신문’은 노동조합의 역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자료가 많이 부족합니다. 노동조합 투쟁관련 홍보물, 현장홍보물, 사진등 보관하고 계신 동지들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인물들에 대한 존칭은 생략하였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1. 87년 여름, 노동자 그 당당한 이름으로

보통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하고 보고대회를 한 날을 노조 설립 기념일로 한다. 하지만 만도의 경우 설립필증을 교부받은 날을 기념일로 하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87년 여름으로 돌아가자.

87년 7월 안양공장의 박종근, 복진길, 한성수 경주의 정성룡을 비롯한 50명의 발기인이 안양에 소재한 한국노총회관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자주적 노동조합 설립’에 뜻을 모은 50인은 박종근을 1대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관련 서류를 작성한 후 모두 노동부로 향한다.

그러나 노동부에는 이미 노진호를 대표로 하는 노동조합 설립신고서가 제출되어 있었다.

“어용노조 철회하라”

“임금인상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

안양공장 식당에서 노동조합 설립 보고대회를 마치고 총무부등 사무동이 있는 2층 복도를 향해 행진하는 노동자들, 바로 만도기계노동조합을 탄생시킨 파업투쟁은 ‘2층 복도를 향하는 행진’으로 시작된다. 변변한 노동가 하나 없었던 시절, ‘늙은 군인의 노래’등 주로 개사곡이 파업가로 애창되었다. 한편 파업투쟁은 자연스럽게 안양, 평택, 경주공장 점거농성으로 전개되었다.

가두진출을 시도하는 노동자들에게 최루탄, 지랄탄이 날아들었고 안양공장 옥상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은 쇠덩어리 따위를 던지며 저항하였다.

여름 장대비를 맞으며 안양 대동서림 뒤편, 지금은 삼성생명 빌딩이 되어 있는 만도사옥 앞에서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철회, 임금인상, 노조 인정”을 외쳤다.

이렇게 87년 7,8월 파업투쟁은 전개되었다. 폭풍처럼 일어나는 노동자 투쟁에 사측은 결국 무릎을 꿇고 ‘자주적으로 결성된 우리들의 노조를 인정’하였다.

당시를 기억하는 조합원들의 말을 들어본다.

“그 때는 관리직과 현장직의 차별이 심했지. 잠바도 생산직은 안 준다거나 심지어 점심시간도 달랐어 아마 50분이었지 싶어” “생산직은 모자를 썼는데 모자 안 쓴다고 귀때기 잡아당기거나 쪼인트 까는 높은(?) 분들이 있었지” “이런 불만들이 파업하니까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거지” “87년 파업할 때 말이야 회사가 빵, 음료수, 담배 같은 걸 군소리 없이 사다줬어 난 말이야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총무부 할 일이 그런 일인 줄 알았다니까” “83년 특례동기들이 당시 파업의 주요 활동가였던걸로 기억해” “세상 참, 난 아직도 생산직 노동자로 사는데 그때 담배 사오던 김00 기사는 지금 공장에서 중역이 되어 있고, 김00 대리는 막강한 힘을 가진 임원이 되어 있지” “14년의 세월이 따지고 보면 그렇게 먼 옛날도 아닌데 기억도 잘 안나, 노동조합 만들고 지키느라 너무 늙은건지 지친건지…”

87년 노동조합 설립과 대투쟁을 돌아보며 우리는 아스라이 먼 기억속에서 ‘강제와 감시’로 일관하던 현장통제와 뿌리깊은 관리직과의 차별, 사측의 노조 설립 방해 공작을 되살릴 수 있었다. 87년 당시 군대식의 현장통제는 좀더 세련된 모습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사측의 방해와 탄압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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