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 알바니아 반란의 뿌리
[주간녹색좌파] 4/30 마이클 카랏지스
3월 초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는 마케도니아 군대가 알바니아 민족
해방군(NLA)을 진압하는 것을 원조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 군대가 위해 세
르비아-코소보 완충지대로 들어가 자치권을 추구하는 알바니아계 반군을 박
살내도록 허용한 나토와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간의 협
약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1999년 나토의 개입이 세르비아계였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정권이 실패한 전국적인 알바니아 운동의 성장을 근절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졌다
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나토는 이 운동을 서유럽과 연결된 지역의 안정뿐만
아니라 나토 동맹국인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흑해와 중동에까지 이르는 주요한
위협요소로 보고 있다.
마케도니아 군대는 3월 6일 멀리 떨어진 코소보-마케도니아 국경의 알바니아
인 마을 타누세브치까지 진격하여 주민의 거의 대부분인 수백 명의 알바니아 난
민들을 코소보 국경의 데벨데까지 몰아냈다. “노인과 병자들만이 거기에 남아
있었죠”라고 가족과 함께 피난한 카짐 자쿠피씨는 말했다.
진격 중에 알바니아계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이가 살해당했다. 잔뜩 겁먹은
알바니아계 난민들에 따르면 그는 숲에서 나무를 베던 중 살해당했다. 언론인인
베스닉 발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민의 여론은 비슷합니다. 그들은 마케도
니아 군대의 탄압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만약 마케도니아인들이 폭력행사를 계
속한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테러리스트가 될 겁니다’라고 그들 중 하나가 말하더
군요.”
미군은 피난한 무장 알바니아계를 체포했다고 주장했고 난민들을 숨긴 집들을
수색하였다. “저는 제 집과 가축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미군은 우리
가 국경을 넘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라고 자쿠피가 말했다.
나토는 탱크를 보내서 반란자들이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데벨데 입구를 막았
고, 아파치 헬기와 전자 감시 장비를 사용하여 그들이 지상이동을 막았다. 미군
은 3월 7일 미야크 마을 부근에서 2명의 반란자들을 사살했다.
이러한 야만적인 공격이 감행되기 전에 민족해방군은 1월에 테토보 경찰서를
습격하여 마케도니아 경찰을 처형하고 목을 걸었다. 이는 모든 알바니아계 정당
에게 비난받았다. 주동자들은 고립된 극단주의 집단의 일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테토보 근처에 아무 것도 없고, 대부분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서부에
자리잡고 있음에도 타누세브치는 민족해방군의 아지트로 주목을 받았다. 이 마
을은 공식적인 국경을 넘어 코소보의 마을들과 연결되어 있다.
많은 난민들이 자신의 마을에는 무장조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결코
민족해방군을 본적이 없고 그들이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습니다”라고 데벨데 마
을의 제눈 무르셸리는 말했다. 그러나 코소보 해방군 연루설은 그들의 불확실한
지위에서 파생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지역의 주민들은 심지어 마케도니아 시민
권도 갖고 있지 못하다. 유고슬라비아와 마케도니아간의 2월 국경 조약으로 마
케도니아 안으로 편입되었을 뿐이다. 그때까지 마케도니아는 타누세브치가 존재
했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나토가 꾸민 음모
마을을 공격할 때, 마케도니아 정부는 국경을 봉쇄하고 코소보나 세르비아 남
부의 알바니아계 반군을 일소시키기 위해 나토와 유고슬라비아가 꾸민 계획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반군들은 마케도니아를 음해하려 하기 보다는, 마을
을 배후기지로 사용해왔을지도 모른다.
이번 공격은 부메랑이 되어 마케도니아로 되돌아왔다. 마케도니아 경찰의 엄
청난 과잉진압으로 소외된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대부분은 이제 반란의 길로 나
아갔다.
군대의 과잉진압은 제쳐두고, 알바니아계 야당인 민주번영당(PDP)의 당수인
나시르 지베리는 “UN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것, 나토에게 단 100가구가
있는 마을의 상황에 관해 토론하도록 하는 것, 국경을 폐쇄하고 군사를 동원하
도록 하는 것들은 상황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만들 뿐이었다”라
고 지적했다.
민족해방군의 파즐리 벨리우는 이탈리아 뉴스방송 안사(ANSA)와의 인터뷰에
서 “우리는 정치적 수단으로 목표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무장봉기를 택했다”
고 밝혔다.
어떠한 ‘大(대) 알바니아’사상도 거부하면서, 그는 “우리는 마케도니아와의 통
합을 지지하지만 동등한 권리와 우리만의 국기, 언어, 정체성을 원한다”고 말했
다. 이는 모든 알바니아계 정당들의 요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해방군의 등장은 수수께끼이다. 마케도니아 정부는 알
바니아계 소수가 발칸지역의 다른 소수민족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알바니아인들은 의회에 대표자를 가지고 있으며 주요 알바니아계 정당
이 10년 전 독립 당시부터 마케도니아 파트너와 연정을 해오고 있다.
심각한 불만
그러나 심각한 불만거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알바니아계는 자신들이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함에 따라 모든 알바니아계 정당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마케도
니아 내의 소수민족이 아니라, 이 나라가 두 개의 ‘구성민족’으로 이루어진 것으
로 승인되길 요구하고 있다. 마케도니아계 정당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왜냐하
면 알바니아 국가는 이미 존재하는 반면, 마케도니아 민족을 대표하는 국가는
한 세기에 걸친 투쟁 끝에 간신히 얻어졌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의 권리를 고려할 때,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바니아인들이 알바니아어 학교를 운영하고 내부안건에 관해 모국어를
쓸 권리를 갖는 한편, 더 나아가 알바니아어를 의회, 법정, 공공 서비스 영역에
서 사용되는 두 개의 공식언어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몇 년
간의 투쟁 끝에 정부는 결국 알바니아계가 자신들만의 대학을 여는 것을 허가했
으나 아직 정식 승인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유고슬라비아 내의 알바니아계의 억압받는 위치로부터 오는
부작용을 고려할 때, 더욱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최근의 몇몇 성과에도 불구하
고 마케도니아 군인과 경찰의 단 3%만이 알바니아계이며, 대부분의 행정관료들
은 마케도니아 슬라브인들이다. 반면 알바니아계는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직업
을 갖는 데도 차별을 당하고 있다.
타누세브치 공격은 알바니아계 대중에게 강한 소외감을 남겼던, 1992년과 94,
97년 알바니아인들의 평화적 봉기 당시 마케도니아계가 장악한 된 경찰들이 제
멋대로 행동했던 것과 유사하다. 지도자들이 의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 간에
기층에서의 분리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이는 이 지역의 다양한 다른 소수민족들이 직면한 노골적인 억압에 비하면 아
주 미약한 것이다. 정치적 공간이 상당히 열려 있을 때, 무장봉기가 일어나지 않
을 것임은 자명하다.
이는 반란군이 마케도니아-유고슬라비아 국경 조약이 파기되길 바라는 전 코
소보해방군(KLA)의 음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비난으로 귀결된다. 코소보
와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계 정당들은 이 조약이 코소보에 대한 유고슬라비아의
지배를 승인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민족해방군은 이어 벌어진 3월 14일 알바니아계 집단 거주지인 테토보
에서의 시위로 더 이상 하나의 극단주의 집단으로 치부될 수 없게 되었다. 집회
는 테토보 인근에서 전투가 발발하기 한 시간 전에 시작되었다. 마케도니아 경
찰부대는 게릴라가 위치하고 있는 인근 산등성이에 사격을 퍼부었고, 민족해방
군은 테토보를 향해 사격으로 응전했다.
민족해방군의 박격포가 마을로 발사될 때마다 군중들은 민족해방군을 연호하
며 ‘알바니아계에 대한 마케도니아의 테러’를 종식시킬 것을 요구했으며 이는 알
바니아계의 놀랄 만한 각성의 수준을 보여준다. 집회는 야당인 민중민주당과 신
민족민주당(NDP)과 연계된있는 그룹에 의해 조직되었다. 이들은 최근 극우 마케
도니아 민족주의자 그룹인 국내마케도니아 혁명조직(IMRO)의 파트너로 현재 집
권연합을 이루고 있는 알바니아계 민주당(DPA)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에 이어
산발적인 박격포 난사와 기관총 사격이 대부분 알바니아계가 밀집된 북서부 지
역에서 며칠간 이어졌다.
뼈에 사무치는 가난
타누세브치 공격 외에도,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더욱 급진적으로 만드는 다른
요소는 자본주의의 복귀로 나라가 겪게 된 뼈에 사무치는 가난이다. 알바니아인
계가 마케도니아계보다 더 가난함에도 전인구의 경제적 황폐화는 민족간의 경제
적 평등을 도모하기 어렵게 했다.
인구의 5분의 1인 약 42만 명의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있으며
그 수치는 지난 2년간 10%나 올랐다. 지난 20년간 마케도니아의 사회적 총생산
은 연평균 1.7% 떨어졌다. 민영화와 ‘구조조정’은 총인구 2백만에서 파산한 회사
로부터 나온 34만의 해고노동자 부대를 만들어냈다. 지난 4월 부가가치세 도입
으로 물가가 평균 20% 상승하여 주민들은 더욱 더 고통을 겪게 됐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실업수당을 삭
감하고 사회복지에 지출되는 예산을 반감하는 조건으로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
로 결정했다. 이러한 약탈적인 기구들은 이러한 조치가 실업자들이 정부예산으
로 살아가는 ‘습관’을 깨고, 그들을 ‘독립적으로’, ‘자영업’이나 작은 기업을 열게
하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대부분의 보고서가 민족해방군에 대한 다양한 지지 수위에 대해 설명하
고 있는데, 많은 알바니아계가 그 목적에는 동의함에도 무장투쟁을 지지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반면 모든 알바니아계 정당들, 마케도니아, 코소보, 알바니아의
정부와 야당들은 민족해방군의 무장행동을 공식적으로 비난했으며 마케도니아
영토보전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
3월 15일 알바니아의 외무장관 파스칼 밀로는 “우리는 알바니아계의 지위와
권리 증진을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했든간에 폭력은 비
난한다”고 말했다. 베리샤가 이끄는 야당도 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3월 12일 알바니아계 민주당과 민주번영당 지도자들과 알바니아 수상 일리르
메타는 “어떠한 폭력도 알바니아계의 이익과 정치적 대표자들에 의해 얻어진 위
치를 거스르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코소보 민주당 대표이자
전 코소보 해방군 지도자인 하심 타치는 “정치적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한 폭력
의 사용은 받아들여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도자들은 또한 코소보 국경 폐쇄와 나토가 유고군을
완충지역으로 끌어들인 것을 비판하는 한편, 마케도니아가 알바니아계 정당들과
널리 확산된 불만요소에 대해 대화를 개시하고 군사공격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
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와 불가리아 정부의 마케도니아에 대한 군사 원조와 지지
를 비난했다. 두 국가 중 어느 쪽도 마케도니아 단일민족국가를 승인하지 않았
으며 그들의 관심은 이에 관해 가능한 한 적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3월 7일 마케도니아와 불가리아 정상이 군사협정을 조인함으로써 알바니아
대통령은 티라나(알바니아의 수도-옮긴이)를 방문한 불가리아 국방장관과의 회동
을 거부하였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에게 헬기 3대를 제공하고 알바니아 영공을
통과해 수송해도 될지 허락을 구했으나 티라나 당국의 비난을 받았을 뿐이다.
나토 지도자들은 일제히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 남부의 알바니아계 반란군을
비난했다. 나토 코소보 평화유지군(KFOR) 사령관인 카를로 카비지오수 중장은
프리슈티나(코소보의 수도-옮긴이)에서 국경폐쇄를 발표하면서 “알바니아 극단주
의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전 지역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
다”고 경고했다.
3월 17일 4대의 독일 탱크가 코소보에서 약 3천의 나토군이 주둔하고 있는 테
토보의 독일 병참기지로 옮겨졌다. 독일의 외무장관 요시카 피셔는 주둔군을 방
문하여 서방은 발칸 국경이 무력에 의해 변경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것은 아무 도움도 안된다는 것을 모두
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3월 10일 프랑스의 외무장관인
위베르 베르딘은 마케도니아에 와서 “우리는 몇몇 작은 테러리스트 그룹이 국가
의 안정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반군이 국경을 넘도록 허락한 코소보를 비난한 프리슈티나의 미파병대 사령관
인 크리스토퍼 델은 “강도와 살인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치의 희망을 영원히
버리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러한 모든 호전적인 수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정부의 연정 파트너를 비롯
한 알바니아계 정당들의 충고에 반대하며 테토보로부터의 대규모 군사공격을 부
추겼다. 역설적으로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그 서방의 지도자들은 갑작스레 ‘자제’
를 호소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그 이면에 깔려있는 긴장감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부추긴 노골적인 군
사공격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것이 최근의 민족연합정부-1998년까지 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였던 두 공동체의 집단들간의 거의 잘 안될 것 같은 연합-
를 날려버릴 것 같다. 점차 기층의 분위기는 최근 깨달은 중용보다는 이러한 정
당들의 정치적 연원을 닮아가고 있다.
알바니아계 야당들은 군대가 테토보에서 민족해방군을 몰아낼 것을 주장하며
반군이 퍼져있는 북쪽 국경을 따라 3월 28일 공격을 개시했을 때, 의회출석을
거부했다. 주민의 95%가 알바니아계인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격은 엄청난 저항
에 부딪쳤고, 여당 알바니아계 민주당의 지방의원인 히스니 샤키리는 즉각 사직
하고 민족해방군에 참여했다. “나는 알바니아계 민주당의 고위간부와 의회의원
들이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도록 요청했다”고 그는 말했다.
나토에 의해 부추겨진, 민족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군사적 해결을 강제하는
정권의 시도는 실패하였고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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