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시위 경찰 폭력으로 진압한 각국 정부
[세계 사회주의 웹사이트] 5/3 제임스 코나치
지난 화요일에 세계 전역에서 펼쳐진 노동절 시위에서는 빈곤, 실업, 그리
고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보통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증대하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상승하는 저항의 물결에 겁먹은 많은 정부들은 경찰의
폭력으로 응대했다.
런던에서는 노동절 시위에 대규모 경찰의 주둔으로-몇몇 기사에 따르면
경찰이 시위대보다 1배 또는 2배정도 수적으로 우세했다고 한다-맞섰다. 6천
명의 경찰이 상시적으로 혹은 교대로 지키고 있었고, 30대의 경찰차가 영국
수상의 거주지인 다우닝가에 접근하기 위해 다가서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화이트홀(런던의 관청 소재 지역-옮긴이) 앞에 서있었다.
수천 명이 참여한 기업반대 시위는 ‘노동절 모노폴리(영국에서 주로 하는
게임으로 주사위를 던져서 넓은 널빤지 위의 땅을 사고 팔고 하며 재산을
증식해 가는 게임-옮긴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느슨하게 조직되었고, 작은
시위들이 그 널빤지 게임 지형 모양의 런던 여러 지역에서 벌어졌다. 무정부
주의자와 환경주의자 같은 다양한 세계화 반대 그룹에 의해 조직된 시위는
경찰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 진압케한 토니 블레어 총리에 의해 ‘사이비’라
고 비난받았다. 런던 시장 켄 리빙스톤 또한 이 마녀사냥에 함께 하면서 이
번 시위가 “런던시의 재산을 파괴하고 폭력을 조장하려는 의도적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 날 내내 평화적인 시위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진압용 장비를
동원한 경찰은 런던 최고의 쇼핑거리의 중심인 옥스퍼드 광장에서 5천 명의
군중을 봉쇄했다. 시위대는 어떠한 시설에도 접근할 수 없이 비가 오는 와중
에도 4시간 이상 광장에 빼곡히 묶여 있었다. 경찰이 곤봉으로 후려쳐서 몇
몇이 다쳤고 적어도 35명이 체포되었다.
BBC라디오의 한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않은 사람
들은 우선적으로 어느 누구도 옥스퍼드 광장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 날 도처에 광범위한 감시기계가 배치되었으며, 경찰 영상팀은 감시
카메라와 헬리콥터를 이용해 모든 시위자들을 촬영하였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경찰이 평화적인 행진을 마친 시위대가 금융가로 들
어오지 못하도록 봉쇄했고 마스크를 착용한 반세계화 무정부주의자 400명을
포위했다. 시위대가 돌과 페인트폭탄을 던지고 난 후, 경찰은 고무 총탄, 물
대포 그리고 최루가스와 같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대응했으며 마지막에는 곤
봉을 휘두르며 진압에 나섰다. 거의 200명이 체포되었다.
연례적인 ‘자율'(무정부주의) 시위 금지령이 시 내무장관인 에카르트 베르
테바흐에 의해 시행된 이후, 독일의 베를린에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폭동
과 거리 투쟁이 벌어졌다. 총 9천명의 경찰이 행진을 하려는 수천 명의 무정
부주의자와 반(反)극우주의자들을 저지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베를린의 크로
이츠베르크구 교차로로부터 수백 명의 시위대를 깨끗이 소탕하기 위해 경찰
이 물대포와 곤봉을 사용하면서 거리시위가 끓어올랐다. 수십 명의 시위대가
체포되었고 다수의 사람이 부상당했다. 노동절 시위 금지령에 앞서 베를린
경찰청장인 게르노트 피에스테르트는 경찰이 “일관되게 공세적인 방식”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적어도 150명의 체포가 이루어졌다. 시민권 단체
의 대표들은 전례없는 노동절 시위 금지령과 뒤따른 충돌이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제한하기 새로운 조치를 도입하기 위해 베를린 의회가 계획한 것이
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같은 시각 다른 한편에서는 베를린 경찰의 거대한 부
대가 “일자리는 독일사람에게 우선으로!”라는 중심 슬로건 아래 결집하여 도
시의 동쪽에서 시위를 벌인 독일국민당(NPD)의 신극우주의자들 수백 명을
보호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또한 도시를 지나며 벌어진 독일국민당의 행진을 다
수의 경찰이 보호한 것으로 인해 경찰과 반극우주의자 젊은이들 사이에 충
돌이 계속됐다. 언론들은 지난 10년 동안 독일에서 일어난 가장 최대의 폭력
으로 이번 노동절을 묘사했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공식 집계에 따르
면 전세계에서 약 50만의 사람들이 거의 1천여 개의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
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일자리 보장을 요구하며 십만 명의 사람들이 모
인 것으로 추산되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다른 유럽연합 국가
에서도 대규모의 군중들이 실업에 대한 우려를 담은 주요 슬로건 아래 뭉쳐
전통적 행진에 참여했다. 터어키에서는 약 2만 명이 양심수 처리와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며 이스탄불을 가로질러 행진했다.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러시아 전역의 480개 도시에서 임금인상,
사회보장 증진, 물가통제를 요구하며 노동절 시위에 참가했다. 자본주의 시
장으로의 복귀 이래 공장과 광산 폐쇄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지역인 시베리
아에서는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위를 가졌다고 보도되었다. 동유럽 전역
에서도 여러 시위가 열려 자본주의 회귀가 동반한 거대한 사회적 부패를 비
난했다.
아시아태평양
지구 반대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기마경찰과 특수작전 경찰이 시드니
증권거래소를 봉쇄한 세계화 반대 시위대와 환경주의자들 천 5백 명을 도발
하는 공격을 지휘했다. 이 공격으로 적어도 34명이 억류되었고 많은 수의 시
위대가 구타당했다. 소규모의 봉쇄가 멜버른과 다른 4개 도시의 증권거래소
에서 일어났고, 브리즈번에서는 3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멜버른의 한 독자
노조 행진에는 약 1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경찰과 군대는 반세계화 시위와 대대적으로 선전된
모든 옥외집회를 사실상 계엄령을 적용하여 사전에 봉쇄하는 계획을 세웠다.
천명 이상의 야당 당원들이 아침에 있었던 습격으로 체포되었다.
필리핀에서는 전통적 노동절 운동이 축출된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지
지자들과 경찰 사이의 격렬한 거리전으로 인해 어두운 정국을 형성했다. 글
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수도인 마닐라에 ‘폭동상태’를 선언하는 한편 야당
고위 인사들을 음모죄로 체포하는 것으로 응대했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1만 5천 명의 폭력경찰이 민주노총의 2만 조합원
에 의한 정부청사 앞의 행진을 막기 위해 진압봉과 물대포를 사용했다. 서울
에서 경찰은 인터넷을 통해 그날의 전반적인 화상뉴스를 내보내고 한편 체
포 준비를 위한 개인 신원 확인을 위해 56개의 카메라를 배치하여 거리 시
위를 비디오로 녹화했다. 민주노총이 조직한 시위와 행진은 경찰폭력의 배후
인 김대중 대통령의 퇴진과 IMF가 지휘하는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구
호를 가지고 한국의 대다수 산업도시에서 벌어졌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서자바섬의 반둥시에서 정부청사로 행진한 2천 명 노
동자들의 시위를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적어도 6명의 시위자들이 다쳤다.
자카르타에서 5천 명이 참여한 시위는 임금 100% 인상을 요구로 내걸고,
1997년 이래 IMF 지휘 하에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영향을 비난하였다. 이곳
에서는 2천 명 이상의 경찰과 전경이 목격되었다. 메단, 세마랑, 수라바야 등
세 도시에서도 3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을 요구하며 벌어졌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평화적인 시위가 진행되었다. 태국 방콕의 중심
가에서 수천 명이 지난해 미국의 경기하강에 영향받아 140만 명으로 증가된
정리해고로 인한 실업에 저항하여 시위를 벌였다. 대만에서는 약5천명의 노
동자가 실업 증가에 반대하여 타이페이를 지나 행진했다. 일본에서 136만으
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은 노조지도자들이 실업 증가를 가져올 경제개혁 제안
을 한 신임 수상 주니치로 고이즈미를 시위에 참여했다.
인도 노동자들 또한 노동조합의 노동절 시위에 참석했다. 뉴델리에서는 노
동자들이 “WTO의 압력 하에 노동법 개정을 계획한” 재무장관의 화형식을
가졌다. 타밀 나두, 하야나, 케랄라, 펀잡, 서벵골, 아루나찰 프라데시 등에서
도 행진이 있었다. 네팔의 대규모 시위는 내각의 사임을 요구하였다.
미주지역과 아프리카
남미에서는 몇 만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빈곤, 임금 하락, 그리고 대륙의
대부분 지역에서 10%로 추정되는 실업율에 저항하여 시위를 벌였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는 약 천 5백만 명의 사람들이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비판
구호를 내건 노동절 시위에 참여했다. 이 시위는 도시의 남쪽 지역을 마비시
켰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실업노동자들이 실업에 저항하는 시
위를 위해 공장지역에 거리 바리케이드를 설치하였다. 콜롬비아에서는 공식
발표된 18.8%의 실업률과 계속되는 준군사적 폭력에 반대하며 30개 도시에
서 시위가 벌어졌다.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실업과 정
부의 임금동결 조치를 비판하였다. 구제역 소동으로 육류 포장 공장에서 다
수의 실업이 발생한 우루과이 몬테비도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요구하
며 시위를 벌였다.
메히코시티에서는 수천 명이 식료세를 늘리고 의료보장 및 사회복지를
삭감하려는 신임 대통령 빈센테 폭스의 계획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 결집하
였다. 노동자들은 폭스와 노동장관의 초상을 옮겨와 철십자(독일 나치 문양)
모양의 왕관을 씌웠다.
캘리포니아의 롱비치에서는 경찰이 이민노동자의 처우에 항의하며 교통을
방해한 100명의 무정부주의자 시위대를 향해 고무소총을 쏘고 체포했다. 오
레곤주의 포틀랜드에서 행진한 약 천 2백 명의 사람들은 기업의 탐욕을 끝
장낼 것과 지난 달 메히코 이민자를 총으로 쏜 경찰에 대한 수사를 요구했
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의 곤경에 초점을 맞춘 노동절 시위가 뉴욕, 보스
톤, 시카고에서도 열렸다. 시위는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 그리고 그 밖의
캐나다 여러 도시에서도 열렸다.
남아공에서는 대규모의 군중이 노조연맹인 남아공노조회의(COSATU)가
조직한 시위에 참석하였고, 그 자리에서 연설자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정부의 ‘일자리 대량감축’에 대한 지휘감독과 국영기업의 민영화 계획을 비
난하였다. 케냐 노동자들은 정부의 긴축정책에 합작한 노조에 저항하기 위해
서 공식적인 노동절 집회에 참가를 거부하였다.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열린
공식행사의 결말은 정부 야당 인사의 연설과 노조연맹 비판을 막기 위해 폭
력경찰이 얼마되지 않는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짐바브웨 수도인 하라레에서
도 폭력경찰은 노동자들의 시위를 공격했는데 그것은 노동자들이 로버트 무
가베 총리과 연결된 집단이 시위를 습격하려는 것을 막으려 했을 때 벌어졌
다.
전망의 위기
많은 노동절 시위에 대해 공권력에 의해 진압을 의뢰한 것은 자본주의 정
부와 자유무역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함을 입증하는 것
이다. 10년 전, 소련의 붕괴 이후에 그들은 자본주의만이 번영과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유일한 사회 형태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지구적 자본주
의 체제 작동에 의한 부와 빈곤 사이의 거대한 장벽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
과만을 낳았다.
세계의 현상황과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미친 영향에 대해 널리 퍼진 우려
와 불안이 반영된 시위와 저항의 한편에서 시위를 제기하고 조직했던 정당,
노조, 그리고 환경 단체의 지도자들조차 해법을 갖지 못했다. 그들의 슬로건
과 연설은 민족주의에 대한 호소와 그들 “자신의” 민족국가의 방어로 특징
지어졌다.
맑스주의 운동이 처음으로 1889년 5월 1일에 국제적 시위를 벌이자고 호
소한 사실을 상기해내는 것은 중요하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에 이어, 노동
절은 전지구적 경제계획과 협력에 기초한 선진 사회주의 사회로 자본주의와
민족국가를 대체한다는 공통된 대의 속에서 노동계급의 단결을 보여주는 날
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약탈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노동자들의 단결을 호소하
기는커녕 운동 지도부들은 다른 곳의 노동자를 희생시켜 자국 노동자들을
보호할 것을 자국 정부에 호소했다. 과거에 오스트레일리아 노조들은 국제자
유노련(ICFTU)이 내놓은 “자유무역이 아닌 공정한 무역”이라는 슬로건으로
선동하며 노동절을 보내곤 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무역협정의 서명으로
국가를 약회시킨 정부에 대한 비판과 외국 경쟁자로부터 국내산업을 보호하
려는 요구로 변화되었다.
노조 위원장인 리 허바드는 “우리는 공장폐쇄와 해외이전을 진절머리나게
보아왔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정부의 판에 박힌 미안하다는 말에
지쳤다. 우리는 WTO와 IMF와 같은 대표성 없는 기구가 국민경제를 규제하
도록 우리의 권리를 인도한 국민정부를 보는 것에 죽도록 지쳤다. 그것은 변
화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러시아에서 시위대는 스탈린의 초상화를 치켜들고 푸틴 정부의 “반민족적
정책”을 비난하며 엄청난 규제와 독재로 상징되는 스탈린주의 국가로 돌아
가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남한과 인도에서는 WTO와 IMF를 비난하며 분명
한 반미의 어조로 외국기업의 축출을 요구하였다.
독일에서는 신나치주의자들이 “일자리는 독일인에게”라는 인종주의적 슬
로건을 내걸고 행진했고 동시에 대만, 말레이시아 그리고 이란의 공식 노조
연맹도 실업의 해결책으로서 외국인 노동자의 배제를 요구했다. 프랑스에서
는 노조가 영국 슈퍼마켓 체인인 막스 & 스펜서, 맥도날드 그 밖의 외국계
회사들을 포함한 긴 공격 리스트를 발표했다.
18년 동안 내란으로 인해 고통당해 온 스리랑카는 민족주의의 반동적 논
리의 가장 생생한 실례의 하나를 제공했다. 이 국가에서 노동절 시위는 정당
과 민족 집단의 경향에 의해 갈라졌다. 집권 민족연합(PA)을 구성하는 정당
들이 벌인 시위는 별로 지지를 얻지 못한 반면, 수도인 콜롬보에서는 약 2만
명이 참석한 가장 대규모의 시위가 실론 극단주의 세력인 민중해방전선(JVP)
에 의해 조직되었다. 연설자들은 스리랑카를 습격하려는 외국의 음모로서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정부의 인종차별주의 전쟁을 재촉하는 선동을 결합시
켰다. 다른 지역에서는 임금삭감과 탄압에 직면한 1만 명의 압도적인 타밀족
노동자들이 노조가 조직한 시위에 참석했다.
인종, 민족, 종교 그리고 언어에 기초하여 노동자 대 노동자를 대립시키는
민족주의라는 막다른 골목에 반대하여 노동절 창시의 생기를 불어넣은 사회
주의적 국제주의의 위대한 원칙은 시대착오적인 이윤체계를 반대하며 진정
단결된 투쟁의 근본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