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근처의 우울한 산책
김 정 헌 (화가·공주대 교수)
일요일 아침부터 우리는 경복궁 주위를 한바퀴 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실은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의 ‘서울 대탐험’ 10번째의 답사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다. 이번 답사는 그간 여러 번 문제가 되었고, 이 공간의 차후 활용에 대하여 이미 문화연대가 공청회를 연 바 있는 기무사(현재의 간판은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되어 있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문화연대 사무실 옆에 인접한 정독도서관(옛날 경기고등학교)부터 답사를 시작했다. 이 자리는 이 답사를 이끌고 있는 건축가 정기용의 모교이기도 해서 그의 학창 시절의 경험담까지 곁들인 설명으로 재미가 더했다. 마당의 한쪽에는 기무사에서 이전해 온 종친부 건물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고 일제시대에 건립된 본관 건물은 아직도 제국주의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담 밖을 통해서 아직도 고즈녁하게 남아있는 한옥들과 그런대로 살아있는 북촌 일대의 스카이라인과 겸재가 그린 인왕산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감탄하기에 바빴다.
우리는 정독도서관을 나와 기무사로 발길을 옮겼다. 경복궁 쪽으로 뻗은 길은 약간 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은 인왕산을 마주 보면서 걷기 때문에 마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의 화폭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정말 기분 좋은 길인데 기무사의 정문에 다 달으면 우리는 빨리 꿈을 깨고 현실공간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헌병들, 살벌한 감시카메라, 안테나가 덕지를 이룬 기무사 건물들이 우리를 맞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일행이 정문에 도달해서 이 건물들의 역사적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우리를 수상히 여긴 기무사의 헌병이 밖으로 나와 이것저것을 묻는다. 기분이 나빠질 때쯤 재빨리 우리 일행 중 재치있는 건축학도 최김재연이 그 헌병에게 묻는다. 저 건물이 누가 설계했는지 아세요? 기무사 헌병이 그것을 어떻게 알랴. 당황스러워하는 그 헌병과 씁쓰레한 웃음을 남긴 채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기무사가 이전하기로 확정되었지만, 그동안 기무사가 이전하면 이 공간을 무슨 용도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이 땅은 의도적으로 일제가 태조 때부터 있던 소격서와 사간원, 종친부를 없애고 총독부의 총독과 고관의 가족들을 치료하는 경성의대 부속병원으로 출발하여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그는 김재규에게 총을 맞은 뒤 이 곳으로 실려왔다)을 거쳐 지금은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국군서울지구병원과 권력을 보위하기 위한 배려에서 정보기관인 기무사까지 이 터로 이전해와 명실상부한 권력의 보조공간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 공간의 활용에 대해 각계의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지금까지의 살벌한 권력공간으로부터 문화시설로의 활용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일단 기무사의 이전이 확정되었으니 앞으로 이 공간의 활용에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건축가 김진애가 설계한 경복궁 돌담길과 불란서 문화원의 이전 등을 화제로 삼으며 6.25의 총탄 자국이 남아있는 동십자각을 돌아 아직도 유신독재 박정희의 글씨로 현판을 달고 어색하게 서있는 광화문 앞에서 멈춰 섰다. 오른쪽은 국내 건축가를 믿지 못하여 몰래 외국 건축가에 설계를 맡겨 지었다는, 개발독재 시대의 성장지표를 연상시키는, 막대 그라프 모양의 종합청사 건물과 좀 떨어져서는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돌 옷을 입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등이 줄을 지어 서있고, 왼쪽으로는 부총리를 지낸 힘으로 자신의 한국일보사를 앞으로 내지어 안국동까지 꾸부러진 도로가 보인다. 바로 건너편에는 일제시대에 지은 건축물로는 꽤 아름다웠던 치안국 건물을 없애고 만든, 대로 모퉁이의 육조공원과 역시 5.16 군사 쿠테타 이후에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건물로 지은 지금의 문화관광부와 주한 미국대사관, 한국통신, 교보빌딩 등이 우리의 근 현대사의 왜곡된 공간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경복궁을 돌아 옛날 전차가 다니던 효자로를 따라 청와대 쪽을 향하고 있었다. 거의 인적이 끊긴 길에 입구에서부터 전경과 사복 경찰들만 계속 마주쳤다. 그들도 외국 관광객이 아닌 같은 동족들이 여기에 왜 왔는가 의아스러워 하며 계속 신분과 인원을 확인했다. 도대체가 이런 감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문화 탐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분위기는 길 건너편의 청와대에서 경호상 구입하여 그대로 방치해 놓은듯한 을씨년스러운 일제시대의 가옥들과 더불어 청와대 쪽으로 갈수록 더 썰렁하고 삭막했다. 우리는 그래도 기죽지 않기 위하여 왁자지껄 떠들며 그 길의 마지막 가옥인 효자동 사랑방(문민정부 초기에 청와대 개방으로 몰려든 관광객들의 편의시설로 기존의 가옥을 구입하여 새로이 개수 및 증축하여 내부는 서울시 정도 600주년 기념전시관으로 쓰임)에서 이 건물의 설계에 관여했던 정기용의 설명을 들으며 한숨을 돌렸다.
오전의 마지막 코스로 우리는 기괴한 봉황새 조각이 중앙에 놓여 있는 이상한 원형 분수대를 시작으로 청와대 앞으로 접근했다. 옛날에 전차 종점이었던 이곳은 4.19 혁명시 이승만 정권의 발포로 수십 명의 젊음이 희생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풍수지리학의 권위자인 최창조가 이 청와대 터를 사람이 살기 힘든 귀신들의 땅이라고 했다는데, 그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이날 따라 풍경이 더 살벌하고 음습해 보였다. 드문드문 서있는 시커먼 복장의 경호원들, 삼각산 밑의 이상한 푸른색의 청와대 지붕, 금칠을 한 봉황새가 새겨진 하얀 철문, 부조화스러운 영빈관과 부속건물들이 함께 어울려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 정부를 자처하는 우리의 권력은 저 안에 성을 쌓고 스스로 유폐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밖에서 보자면 감시함으로서 스스로 감시당하는 권력의 감옥이 아닌가.
우리는 거기서부터는 약속이나 한 듯이 삼청동 수제비 집으로 걸음을 빨리 했다. 청와대를 벗어나자마자 나는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발견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가 있었다. 맛있는 수제비와 막걸리 한 사발로 잠시 기분을 바꿀 수 있었지만 우리의 공간이 아직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소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불란서의 엘리제궁처럼 청와대가 명동 한복판에 있을 수는 없겠지만 권력의 공간은 작을수록 국민들의 문화적 권리가 확대됨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모처럼 참가한 답사가 청와대의 권력공간 때문에 우울한 산책이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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