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총력상경투쟁과 2만의 총력투쟁 사이에서
애초 6월 22일 민주노총 임시중앙위의 7월 5일 총파업 투쟁 결정은 김대중 정부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총력적인 탄압에 정면으로 맞서는 공세적인 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였다. 또 김대중 정부가 민주노총 지도부 검거 철회와 구조조정 중단을 비롯한 5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 투쟁을 7월 22일 민주노총 조합원 10만명 상경투쟁으로 이어나가겠다는 결의는, 결국 7월 22일 민주노총 총력상경투쟁으로 이름을 바꾸어 2만여명이 모인 집회가 진행되었다.
아침부터 쏟아진 굵은 빗방울을 뚫고서 종묘공원에는 우려와는 달리 조합원들이 비좁은 집회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12시 ‘비정규직 정규직화·차별철폐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 비정규노동자대회’가 시작되었다. 방송사 비정규직, 인사이트코리아, 한통계약직, 건설운송노조, 캐리어, 린나이 등 그동안 사안별로 투쟁해왔던 장기투쟁 사업장 투쟁 대오들과, 파견철폐공대위, 비정규공대위, 한통계약직공투위 등이 ‘비정규직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강력한 연대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포했다. 이 사전집회의 마지막 순서였던 비정규직 투쟁대오들이 손도장을 찍고 투쟁요구를 달은 풍선을 날리는 상징의식은 2001년 상반기 투쟁의 주축이였던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했다.
2시가 지나 본 대회가 시작되었다. 대회사에서 허영구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오늘의 투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밖에 없으며,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바꾸기 위한 하반기 투쟁을 전개하자”고 강조했다. 이날의 집회에서는 철도민주노조, 발전산업노조, 금융노조 등이 결합한 것은 구조조정에 맞선 그 동안의 투쟁의 성과가 공공부분 노조들의 민주화로 이어져나간다는 점이 확인시켜 주었다. 집회에 참석한 대오들의 결의를 높이는 위한 문화프로그램 특히 힙합그룹 잰의 공연은 대오의 눈길을 끌었다.
본집회가 끝나 종로길을 따라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날 대회에 참여한 대오는 종각에서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3개의 큰 대오로 나뉘어서 시청광장으로 집결하였다. 5월 1일 메이데이 투쟁에 이어 두 번째로 시청광장에 모인 투쟁대오는 ‘구조조정 분쇄투쟁! 노동운동탄압분쇄투쟁!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을 지속적으로 완강하게 전개하기 위한 결의를 다지면서 마무리 집회를 갖고 해산하였다. 해산과정에서 인도를 막는 경찰과의 몸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경찰 폴리스라인을 뚫을 수 있는 투쟁선봉대 구성과 힘있는 가두 투쟁을 위한 가두지도부 건설은 총력상경투쟁의 가두전술적인 측면에서 핵심적인 과제이었다. 이러한 과제는 집회 사수를 위한 실질적인 학생선봉대의 역할과 노동자 선봉대 구성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가두지도부의 구성과 대오의 일사불란함은 일정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보다 힘있는 가두전술을 구사하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시청광장의 집회투쟁 성사 자체는 유의미한 상징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두투쟁전선의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8월 30일 경으로 예정되어 있는 2001년 상반기 투쟁을 점검하고 하반기 민주노총의 투쟁기조를 논의 확정할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7월 22일의 신자유주의 분쇄와 김대중정권 퇴진 민주노총 총력상경투쟁 결의를 재확인하고 실질적인 총파업투쟁을 결의하는 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총력상경투쟁의 의미를 현장에서 받아안아 일상적인 현장투쟁에 복무하면서 하반기 구조조정을 완전 끝장내기 위한 총파업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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