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하청노동자, 공장으로 돌아가던 날

“행님, 목마 태워줄텡게 올라타쇼” “동지들 냄겨놓고 우리만 먼저 가부러서 짠허이.(안타깝군) 안에 들어가서 잘 싸워야재”

서로 어깨를 토닥거리며, 목마를 타고, 박수를 받으며 하나둘 회사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주)캐리어에서 하청노동자로 2년 이상 일해오다 이젠 어엿한(?) 정규직 신분으로 첫 출근을 하는 사람들. 더 이상 정규직이 신다버린 작업화를 신었다고 욕먹지 않아도 되고, 잔업에다 특근까지 뛰어도 100만원이 채 안 되는 임금 때문에 속앓이 하지 않지 않아도 되며, 무엇보다 언제 짤릴 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2001년 7월30일 오전 7시30분 광주 하남공단 (주)캐리어.

표정 1.

29일 하청노동자들의 캐리어 정문 앞에 설치된 천막농성장을 찾아갔을 때에는 일요일이었음에도 저마다 분주하다. 내일이 파업 100일의 가장 소중한 성과로 따 낸 2년 이상자들이 정규직 신분으로 첫 출근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첫 출근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만들기 위해 천을 찾고 문구를 고민하느라 벌써 해는 노루꼬리만큼 짧아졌다.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의 길을 개척한 동지들의 첫 출근을 축하합니다” 이렇게 문구가 정리됐다.

넌지시 물었다. “솔직히 기분이 어떠세요?” “좋죠. 처음에는 솔직히 투쟁하지도 않은 2년 이상자도 (정규직 대상에) 다 포함이 되니까 조금 허탈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정말 소중한 성과잖아요. 이걸 발판으로 해서 저희 같이 2년이 안 된 사람들도 고용승계 될 수 있도록 해야죠.” 옆에 있던 다른 조합원이 말을 거든다. “다들 마찬가지일꺼에요. 처음에야 감정적으로 ‘그럼 우린 뭐냐’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게 모두 투쟁의 결과물이니까요. 정말 기뻐요”

내일부터 정규직으로의 첫 출근을 해야 하지만 남은 동지들 걱정에 마지막까지 농성장을 지키던 고광삼씨는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속된 동지가 7명이나 있고, 여전히 2년 미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주)캐리어가 여전히 하청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들어가서 그동안 제대로 해 내지 못했던 정규직 노조와의 연대 틀을 마련해서 캐리어 자본을 압박하는 데 애쓸 생각입니다”

일요일 오후, 찾아올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저기서 택시 한 대가 왔다. 고씨가 서둘러 뛰어나간다. “어머니 오셨어요” 고씨의 어머니가 계속 천막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아들과 동료들이 고생한다고 목포에서 온 것이다. 미역이며, 밑반찬이며 아들의 옷가지들을 들고. 천막을 한번 둘러보시구선 아들의 그동안의 고생을 짐작이라도 하듯 표정이 무겁다.

그렇게 어머니는 다시 목포로 발길을 돌리고, 한 켠에서 밥 짓는 무리들이 부산하다 했더니 또 다른 한 켠에선 “해도 졌으니 족구 한판 하자”며 서둘러 팀을 짠다.

표정 2.

늘 하던 출근선전전이지만 오늘은 더욱 마음이 새롭다. 어제 써 놓은 플래카드를 펼치고 오늘 정규직으로 첫 출근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집회를 가졌다.

“2년 이상씩 비정규직의 설움을 안고 살아왔던 87명이 이제 떳떳한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주인이 되어 캐리어 공장에 다시 들어가는 역사적 승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청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최용호씨가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어제까지 직무대행을 맡았다가 정규직으로 첫 출근을 하게 된 고광삼씨는 “동지 여러분들의 힘찬 투쟁으로 2년차 이상 되는 조합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싸우고 있는 여러분들의 투쟁을 안으로 확대시켜서 비정규직 철폐되고 정규직화 되는 그 날까지 힘껏 싸우겠습니다”

‘투쟁’을 외치며 마무리 인사를 대신한 ‘2년 미만자’와 ‘2년 이상자’들은 서로 껴안고 어깨를 토닥인다. 저기서는 한 하청조합원이 정규직으로 첫 출근하는 노동자를 목마 태워 정문 앞까지 배웅을 한다.

표정 3.

그렇게 정규직으로 공장에 들어가는 그들은 이미 하청노동자 투쟁기금으로 1인당 300만원씩 내기로 결정했다. 벌써 3달이 넘게 계속 농성을 해 온 터라 하청노조원들의 식비며 생활비며 노조활동비가 바닥이 난 상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싸워왔지만 자신들만 먼저 정규직이 된 것이 부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다가 이번에 정규직으로 채용된 장권기씨는 “당연한 일입니다. 여력이 되는 대로 투쟁기금을 더 마련해야죠. 그리고 돈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공장으로 들어가는 우리들이 내부에서 어떻게 싸워내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 같아요”라고 말한다.

(주)캐리어가 2년 이상자의 정규직화를 받아들인 것은 불법파견에 따른 사업주 구속, 하청노동자들의 취업을 막기 위해 인근 공장에 유포된 블랙리스트 파문 등이 크게 작용했지만 하청노동자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투쟁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런 하청노동자들은 이제 다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핵심 요구였던 노조 인정은 물론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원이 300명이나 있음에도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이번 파업 과정에서 7명이나 구속돼 있고, 노조원들에 대해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돼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때까지 계속 천막농성과 (주)캐리어를 상대로 한 투쟁을 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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