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오늘로 끝내고 갈 길 갑시다”
한통계약직노조, 교섭 결렬 선언… 주요시설 점거 등 강도 높은 투쟁
“또 전화국 박살나게 생겼군요. 그래요, 한 번 붙어봅시다. 이미 준비는 돼 있고, 결단만 남았습니다”(노조 교섭위원 이운재), “전과범 되는 거 두렵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무런 안도 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도 교섭 석상에 앉아있을 필요가 없습니다”(노조 교섭위원 최봉준)
25일 오전 10시,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공공연맹·한국통신계약직노조와 경총·한국통신과의 교섭은 별다른 쟁점도 끌어내지 못한 채 40분여만에 노조쪽 교섭위원들의 교섭결렬 선언으로 끝이 났다.
“이런 무책임한 교섭이 어딨습니까?”
노조 교섭위원 고철윤씨(노조 상황실장)는 “지금 회사는 우리더러 도급으로 일단 넘어가면 나중에 정규직 채용 때 (우선 채용을) 고려하겠다고만 하는데, 그걸 확인할 수 있도록 문서로 정리해 달라”며 현재까지 확인된 회사 입장을 공식화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용자쪽 위원들이 확답이 없자 노조 교섭위원 이상훈씨(공공연맹 조직부장)는 “그런 문서 정리될 때까지 교섭을 중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고철윤씨는 “(교섭권을 위임 받은) 경총이 해결할 자신이 없으면 손 털어라. 교섭과 관련된 책임과 권리를 위임 받았음에도 회사 안을 관철시키지도, 노조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교섭에 나오면서 자신의 안 조차 밝히지 않는 게 어딨냐”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쪽 교섭위원인 심종두씨(경총 법제팀장)가 “해결당사자는 노·사이고, 우린 지원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안과 관련해서는 내부 조율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며 책임을 축소시키자 고철윤씨는 “경총이 교섭에 참여한 지 3달이 넘었는데, 안 조차 공개하지 않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위”라며 “경총과의 교섭은 더 이상 참가할 의미가 없다”고 사실상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노조 교섭위원들의 결렬선언에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사용자쪽 교섭위원들은 “대안 마련이 정말 힘들다” “그래도 교섭의 여지는 열어두자”고 말했으나, 오히려 노조쪽 교섭위원들은 “권한도 없이 교섭에 나온 경총과는 더 할 말이 없다. 교섭에서 못 끌어내면 정해진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며 단호한 어조로 이후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일 방침임을 밝혔다.
실제 노조는 지난 24일까지 지역거점투쟁을 벌인 뒤 25일 저녁에 다시 서울로 모여 본사 집중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27일에는 을지전화국 앞에서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집회를 가졌고, 이춘하 위원장 직무대행 등은 삭발을 하면서 결의를 다졌다.
노조 최봉준 대협국장은 “그 추운 겨울 천막농성에, 한강철교 위 농성, 광케이블 위 농성, 3월29일 목동전화국 점거 등 한국통신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며 안 해 본 투쟁이 없다”며 “벌써 파업은 220여일을 넘어가는데 교섭마저 이렇게 진척이 없으니 이제 대대적인 점거투쟁을 벌여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철윤 상황실장은 “7천명의 계약직이 짤려 나간 뒤 한국통신은 도급업체와의 계약을 맺는데 서울지역만도 계약직들 임금의 4~5배 수준인 208억원을 투입했다”며 “이는 비용증가만 초래한 엉터리 구조조정일 따름”이라고 비난했다.
업무실적평가서엔 A등급, 임금은 D등급
이날 교섭에서는 최근 확인된 ‘계약직 종합 업무실적 평가서’에서 정한 등급에 해당되는 임금보다 많게는 60만원 가량 낮게 지급된 임금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다.
노조쪽 교섭위원들은 “평가서에는 A등급(월 148만4,250원)으로 되어 있음에도 그동안 C등급(월 103만원) 또는 D등급의 임금(월 85만9천원)을 받은 조합원이 대부분”이라며 이에 대한 해명과 평가서를 개인별로 공개하고 차액분 만큼의 임금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쪽 교섭위원 백종득씨는 “업무실적 평가는 업무기량과 질 등을 평가하는 회사 내부 기밀자료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고, 평가서에 따라 임금이 지급된 것으로 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노조쪽 교섭위원 고철윤씨는 “96년에 145만원을 받고 계약직으로 일했던 내가 IMF 이후 줄곧 D등급 수준인 85만9천원을 받았다”며 “통털어 17년을 선로유지보수 업무를 해왔던 내가 IMF라고 기량이 D등급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노조쪽 다른 교섭위원들도 “평가서대로만 했다면 계약직 7천여명이 대부분 D등급분의 임금을 받았을 리 없다” “A등급과 D등급간 월 60만원 가량 차이가 나는 데, 결국 한국통신이 중간에서 횡령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재계약을 할 때마다 개인에게 평가등급을 통보하라고 돼 있음에도 회사는 통보하지도 않고 확인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며 평가서 공개할 것을 계속 요구했다.
결국 사용자쪽 교섭위원 백씨가 “통보의무 여부를 확인해 보겠다”고 함으로써 논란은 일단락됐다. 노조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후라도 사용기간, 업무종류, 지위와 임금 기타 필요한 사항에 관한 증명서를 청구한 때에는 사실대로 기입하여 즉시 교부하여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38조(사용증명서)를 근거로 업무실적 평가서 발급을 요청할 방침이다.
또한 개별 조합원들의 ‘평가서’와 임금명세서와 비교해 낮게 지급된 금액과 잘못 책정된 퇴직금 차액을 체불임금으로 산정, 노동부에 고발할 계획이다.
이와는 별도로 노조는 지난해 말 서울지법에 한국통신을 상대로 동일노동동일임금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노조는 현장에서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1/3, 1/2 수준의 임금을 받은 것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된다며, 소송 제기자 35명의 차액임금분 14억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고, 다음달 17일 2차 심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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