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 어떻게 볼 것인가?

1주 40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법제화 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정부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어찌됐건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나쁠 것도 없는 일이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실업자가 더 많아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악순환이 한국 사회에서도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노동계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일단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주5일제 도입 추진’에는 그동안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제출되었던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들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보태지고 있어 노동시간 단축 자체의 의의를 재삼 되짚어볼 필요성을 크게 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듯 주5일제로 이루어지든 아니면 독일 사회에서 논의되듯 주4일제로 이루어지든 실제로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만 그 의미를 실현할 수 있다. 그 의미란, 사회 구성원 전체의 1인당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발전한 사회의 생산력의 성과를 사회적인 부로 축적하는 선상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재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시기 및 적용 사업장에서의 단계론적 접근은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가 되는 실질적인 노동시간의 단축을 가져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질적 차원과 구조를 왜곡시킬 수 있다. 더욱이 자본측이 요구하고 있는 휴가제도의 전면적 재검토와 변형시간제 확대 등의 주장은 노동자계급이 제출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요구를 빌미로 해서 자신들의 평소의 탐욕을 재차 주장하는 것에 불과해서 노동시간 단축과 연계시켜서 검토할 하등의 가치도 없다. 그들은 당초,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고 거품을 물고 막으려 들 것이다.

노동시간은 무조건 단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조건의 전반적인 개악과 하향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자본측에서 중심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소위 ‘노동시간 단축 보완책’이라는 것들을 이미 10여년 이상 전에 모두 경험해서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사회적 후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부터 12년 전인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1990년부터 주당 법정노동시간이 1주 48시간제에서 1주 44시간제로 단축되었다. 그러나 실제 노동시간이 법정 수준으로 단축된 것은 아니다. 현재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1주 51시간 이상을 기록하고 있어서 세계 최장이다. 월 평균 30-40시간 이상씩 법정시간 이상의 초과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임금구조가 해소되지 못한 데 있다.

왜 그랬을까? 우선 법의 단계적 적용으로 인한 문제다. 정부는 당시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기업규모별 차등을 두어 대규모 사업장에서부터 법을 시행하였다. 그래서 3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1992년이 지나서야 겨우 법정 노동시간 44시간제를 적용 받게 되었다. 그 유예기간 동안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오히려 합법적으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감수해야 했다.

또 당시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되자 기업들은 마치 지금시기처럼 고용전략에서 갖가지 묘수들을 짜내어 법 적용을 회피하고자 했다. 인건비 증가부담을 줄이려 한 것이다. 당연히 법 적용 범위 바깥에 놓여지는 노동자가 많아졌다. 극단적인 형태는 완전실업이고,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형태는 반실업 인구이다. 이중 정규직으로 입직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법 바깥에서 기업의 저인건비 고용전략을 충족시키게 되었다.

사실 노동시간 단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실질적으로 일하는 시간의 단축 그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임금소득의 증대이다. 지금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떤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단축하자고 하겠는가? 더욱이 될 수 있는 한 많은 노동자, 나아가서는 전체 노동자와 민중이 현재의 생산력 수준이 보장하는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을 전반적으로 누려야 마땅하고,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은 임금이 그 사회의 평균적인 생활수준 이상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어야 제대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노동시간 단축운동에서는, 현행임금 수준 및 휴일휴가 제도 등의 개악이 동반되거나 법의 단계적 순차적 적용을 의도하는 방식은 전면적으로 거부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은 현행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인상하는 차원에서 단축되어야 한다. 현행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차원에서는 필연적으로 임금수준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저임금 구조가 지금의 현실이다. 기업규모를 막론하고 초과노동시간을 제외한 기본급으로는 생활이 유지될 수 없을 만큼 저임금구조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기본급 수준은 전반적으로 총 임금의 약 절반 수준이거나 그 이하이다.

노동시간 단축의 객관적 토대는 우리 사회의 생산력의 발전이며, 그 성과가 전체 사회 구성원 특히 노동자와 민중에게 돌아오기 위해서는 1인당 노동시간의 단축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와 자본측이 의도하는 노동시간 단축 혹은 주5일제는 지금으로 보아서는 노동조건의 전반적인 개악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며, 더욱이 사회 구성원의 1인당 노동시간 감소가 아니라 오히려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실업 내지는 반실업자로 만들어냄으로써 사회의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자본측 일방이 전유하는 아주 전형적인 자본의 논리와 속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최대한 그런 의도를 막아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노동자계급에게 관건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를 노동자계급이 전유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더 한층의 노동조건 개선투쟁과, 그 투쟁의 성과를 전국적으로 일반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조직된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나아가 실업한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현재의 차별과 불이익을 해소하는 것 없이 노동자계급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본이 의도하는 노동조건의 선별적인 개선으로 유도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자본측의 요구로 치환시키는 아주 전형적인 반노동자계급운동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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