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 미국에 재접근하고 있는 북한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2001/9/28 제임스 코나키
미국이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남북한은 6개월동안 진행될 장관급회담의 첫 번째 회의를 지난 9월 16 ∼ 18일까지 개최했다. 이 회담의 특징은 북한이 보다 밀착된 관계를 공고히하려는 열망을 보였다는 것이다. 거의 한 해동안이나 지속된 남북관계 냉각 이후, 남한의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전반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언급했다.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던 여러 경제 사업에 관한 작업을 재개하고, 오는 10월에 추가 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확신 속에서,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서 “전세계가 전쟁에 빠져들기 시작한 이 시기에… 우리는 평화를 유지해왔으며 한반도에서 협력과 교류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 회담이 미국 9·11 테러 이전에 기획되었지만, 그 회담에 대한 북한의 (신속한) 반응이 테러리즘을 지지하고 있다고 규정된 모든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전쟁 위협에 의해 촉진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설에 의해, 현재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가”로 규정받고 있다. 1990년대에는 “깡패 국가”로 선언되었고, 미국은 핵무기와 미사일 계획에 관련하여 평양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해왔다. 남한의 어느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 외무부는 테러공격이 발생한지 몇 시간도 안돼 평양은 이 사건에 관련없다고 강조한 비공개 전문을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늑장대응으로 유명한 북한의 관료주의가 하루만에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공격을 공식적으로 비난했던 것이다. 이번주, 북한은 심지어 테러리스트라 추정되는 목표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암시까지 했다. 북한의 의도는 미국의 잠재적 공격에 대항하여 선수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평양 체제는 부시 행정부의 출범이래 지속적으로 냉각되어 왔던 미국과 남한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의 여지를 포착한 것이다. 1990년대, 북한 경제는 과거 소비에트 연합으로부터 제공되던 보조금이 없어지고 일련의 파괴적인 자연재해에 의해 거의 붕괴직전에 이르렀다. 2천3백만명의 인구를 가진 이 국가는 지금 국민을 먹여살리기 위해 국제식량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고립이 강화됨에 따라, 북한은 중국이 20년전에 했던 것과 같이 자본 투자에 기꺼이 개방하겠다는 암시를 해왔다. 단 권력장악력이 도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북한 체제가 내건 주요 조건이었다.
12개월 전, 남한은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 및 국제 거대기업 부문을 대변하고 또한 특히 중국의 지지를 받으며, 북한과의 화해라는 “햇볕정책”을 추구해왔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일을 만났을 때, 양쪽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개방하는 대신 한반도의 정치적 분할 체제는 무기한 유지하는데 동의했다. 남북한은 지난 1950-53년 한국전쟁 때 끊긴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고, 남한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개성에 자유무역지대 산업 지구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만약 이러한 계획들이 완전히 실행된다면, 이는 북한과 중국 북동지역의 싼 노동력과 자원에 대한 착취를 촉진할 것이고, 동북아와 유럽간의 새로운 무역 루트를 만들 것이다. 북한의 개방은 또한 에너지가 풍부한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 남한까지 가스 및 석유 파이프라인의 건설을 가능케할 것이다. 뒤이은 몇 달동안 남한 및 유럽 기업가들과 외교 대표단들이 북한을 앞다퉈 방문했다. 클린턴 행정부 또한 이 결과들에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듯 보였다.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특징중 하나는 북한이 그들의 전통적 요구인 주한미군철수-워싱턴의 최대 관심사-를 고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군의 장기적인 주둔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다는 북한의 암시에 대한 화답으로, 클린턴 행정부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보다 긴밀한 회담을 개시하기 위해 12월에 평양을 방문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출범은 이와 같은 움직임을 끝장내버렸다. 부시의 핵심 지지세력을 구성하는 우익 공화주의자들은 북한의 무조건적인 복종과 완전한 붕괴를 야기시키기 위해 냉전적인 군사압력과 경제 봉쇄 유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부시행정부의 국무부 차관인 리차드 아미티지와 같은 인물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을 “유화정책”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정권을 인수하자마자, 부시 행정부는 장시간을 요하는 정책 평가를 수행하기 위해 평양과의 모든 대화를 취소시켜버렸다.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 이행을 유보했다. 정책 평가 이후 6월에,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다시 시작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지만, 북한의 재래식 무기 감축 등을 포함한 새로운 이슈가 협상의제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제시했다. 평양은 그 제안을 거부했는데, 이후 워싱턴은 어떠한 추가적인 제안도 하지 않아, 남북한 정부 모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번달 초순, 북한 체제는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하게 됐다. 워싱턴의 호전적인 정책뿐만 아니라 남한 내부에서 “햇볕 정책” 반대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남한은 평양에 대한 재정 및 식량지원을 확대시켜오는 중, 북한의 퉁명한 대화 거절은 김대중의 (유화적) 제안을 국가안보에 대한 실패이자 위협으로 공격하려는 한나라당에 의해 악용되었다. 8월 내내, 우익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 장관인 임동원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캠페인을 진행했다. 정부 정책 입안자의 핵심인 임장관은 남한 대표단의 광복절 북한 기념식 참가를 허가했다. 친북적 노래를 부르는 남한 대표단의 모습은 국회에서 임장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정당화하고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데 이용되었다. 남북한 장관급 회담에 대한 북한의 갑작스러운 9월 2일의 요구는 중국의 압력과 임장관 및 김대중 정부를 지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기되었지만, 이미 때늦은 노력이었다. 그러나 9월 3일,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과 연합한 소수정당인 자민련이 편을 바꿔 임장관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이후 자민련은 정부에서 빠져나와, 한나라당과 반정부연합을 구성했다. 연합의 붕괴는 김대중 내각이 더 이상 국회를 통과한 법률 제정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당연합은 이미 남한이 북한에 대해 추가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의회 승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체제는 현재의 국제정세 속에서 부시 행정부가 마치 이란이나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들에 대한 정책을 전환했듯이, 평양에 대한 강경 자세를 완화시킬 것을 의심할 바 없이 희망하고 있다. 이런 일이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긴 한다. 최근의 남북 대화 이후,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미국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평양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대사관 대변인 에반스 리비어는 서울의 한 포럼에서 “테러리스트의 공격은 북한에게 테러리즘에 반대한 국제 사회와 협력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테러전쟁”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어떤 거부를 빌미로 삼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리반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강경노선과 같은 정책을 북한에 적용시킴으로써,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호전적인 개입을 합리화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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