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98년7월부터 시행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이 시행 4년째를 맞고 있다.
하지만 허가 받은 파견업체의 절반 가까이가 법을 위반하고 있고, 도급 등을 위장한 불법파견은 적발이 어렵다는 이유로 소관부처인 노동부에서조차 난색을 표명하고 있을 정도로 감독행정이 미비하다.
특히나 파견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목적으로 정한 ‘2년 이상자 고용의제조항’의 경우, 오히려 만 2년이 되기 전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파견법이 당초 취지와 달리 노동자들의 중간착취를 합법화하고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노사정위 비정규특위(위원장 윤성천)는 26일 오후 제10차 전체회의를 열고 ‘근로자파견사업 지도점검 현황’에 대한 노동부 보고를 받은 뒤, 이 같은 현행 파견법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대책을 논의했다.
노사정위 비정규특위 회의
파견업체 절반이 법 위반
지난 6월말 현재 허가 받은 파견업체는 모두 1,324곳이고 파견노동자는 5만327명이다. 파견법이 시행된 98년7월 당시 789곳이었던 파견업체는 99년 1,244곳, 2000년 1,357곳으로 꾸준히 늘고 있으며, 파견노동자들도 4만1,545명에서 5만3,218명, 5만3,029명 등으로 증가추세다.
그러나 이 업체들 가운데 허가요건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파견대상이 아닌 곳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등 법을 위반해 노동부로부터 허가취소, 영업정지 등을 당한 곳은 지난 6월말 현재 519곳에 달한다. 전체 파견업체의 절반 가까이가 법을 위반한 셈이다.
물론 이는 합법적으로 노동부에 신고된 파견업체들만 상대로 한 통계일 뿐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 등으로 실질적인 파견을 하고 있는 곳은 적어도 신고된 업체의 4~5배 이상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법을 준수하면서 파견업을 하고 있는 곳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김동섭 고용관리과장은 “위반건수가 많은 것은 사업자들의 법률지식이 부족하거나 법률제정 이후 양성화된 파견사업주의 경우 파견법 제정 이전의 관행이 남아있어 법규준수 의지가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매년 2번씩 파견업체와 사용업체에 대한 점검을 실시해 위반사례를 적발하지만, 현장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불법파견은 제보 없이는 적발이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했다.
근로감독관, 파견법 위반 적발 권한 없어
이처럼 불법파견에 대한 적발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근로감독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전국에 근로감독관 수는 900여명으로 근로감독관 1명당 관리업체가 300여개에 달해 실질적인 단속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근로감독관집무규정’상 파견법은 근로감독관의 관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근로감독관이 불법파견 등을 적발했더라도 곧바로 사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대신 파견법은 고용관리과 소속 행정공무원들이 관할하고 있는데, 이들은 사법경찰권이 없어 불법파견 사실을 인지하면 경고나 영업정지, 허가취소 등의 행정적 조치만 취할 뿐 사법적 조치는 경찰에 맡겨야 하는 실정이다.
실제 캐리어사내하청노조가 (주)캐리어를 상대로 낸 불법파견 진정을 접수한 광주지방노동청 관리과는 지난 5월21일 (주)캐리어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곧바로 사법처리하지 못하고 경찰에 넘겨, 경찰이 범죄사실요건을 구성하는 지 확인한 뒤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 인사담당이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노동부 고용관리과 김 과장은 “관리과에서는 파견법 준수여부만 파악할 뿐 직접고용의무 기간(2년)을 초과했거나 파견업무 대상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집무규정을 고쳐서 근로감독관이 파견법도 직접 관할하도록 하면 위반사업주 처벌과 파견노동자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 관할 법 확장에 대해서는 노동부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다.
근로기준과 김도형 사무관은 “파견법은 노사관계에 국한되기보다는 파견업 허가 및 취소, 불법파견 적발 등 고용관계를 포괄하는 영역도 있기 때문에 사법경찰권의 범위가 너무 넓어져 곤란”하다며 “하지만 파견업체 관리와 별개로 근로감독관이 파견업체 노사관계를 관할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근로감독을 강화해서 파견노동자들의 불이익을 방지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성천 특위 위원장은 “파견법을 관할하는 부서에서 근로감독까지 함께 하면 좋겠지만, 노동부 직제상 어렵다면 근로감독관과 관리과 소속 공무원이 2인1조로 근로감독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며 중재안을 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 수가 부족해 단위 사업장 방문 시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을 면담하고 위반사례들을 적발해 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전체적인 근로감독 행정 강화와 연계시켜 재논의키로 했다.
파견법 때문에 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또한 파견법에서 문제시되는 것이 바로 제6조3항, 즉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 기간이 만료된 날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고용의제조항이 오히려 파견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자초한다는 점이다.
방송사에서 차량 운전 등을 담당하는 파견노동자들 경우, 파견법이 시행된 98년7월 이후부터 만 2년이 되는 2000년7월 이전에 대부분 해고됐고, 이들 중 다수는 사용업체만 KBS에서 MBC로, 또는 SBS에서 YTN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파견노동을 계속하고 있다. 설사 업체를 바꾸지 않았더라도, 2년을 넘겨서도 직접 고용되지 않고 파견노동자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행 파견법에서는 제6조3항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노동부 고용관리과 김 과장은 “2년 이상 고용한 자를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하지 않았을 때 ‘부당해고’로 본다는 식으로 행정해석을 내릴 수도 있지만 이는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특위 윤성천 위원장은 “제6조3항의 경우, 처벌규정도 없을 뿐더러 직접 고용할 경우 고용형태를 정규직으로 해야 하는지, 계약·단시간근로와 같은 비정규직으로 해도 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다”며 “이 같은 입법적 흠결은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 위원장은 “상용형 이외에 모집형이나 등록형 파견을 인정할 경우 이를 유료직업소개사업보다 더 악의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중간 착취하는 셈이 된다”며 “이 역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파견법을 없애라?
전국여성노조 최상림 위원장을 대신해 참석한 이주환 사무처장이 “파견기간 2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 같은 자리에서 파견으로 일을 하거나 직접 고용이 되더라도 계약직 또는 원거리로 발령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자 전경련 최정기 사회본부 부본부장은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는 것은) 해고의 유연성 때문이다”며 “해고비용이 많이 드니까 파견이나 계약직 등을 사용하는 거 아니냐”고 노골적인 재계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현행 파견법 시행과정에서 불법·탈법적 요소들이 너무 많으니 이를 손질하고 근로감독행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노동계 입장과 파견업체에 대한 규제가 너무 강해서 불법을 하지 않고서는 파견업을 할 수가 없다는 재계 입장이 대립되면서 파견노동자 보호를 위한 근로감독 강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한국산업인력공단 어수봉 중앙고용정보원장이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너무 크다면 폐기하는 게 낫겠다”고 농담을 던지자 최정기 부본부장은 “이럴려면 폐기가 낫다”고 받아쳐 어 원장이 “그럼 노동계도 파견법 없애자고 하니 노사가 합의한 것이다”고 말해 회의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특위는 28일 오전 8시 노민기 노동부 고용총괄심의관, 노진귀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이동응 경총 정책본부장, 강순희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구성된 간사회의를 열어 이날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근로감독 강화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정리할 계획이다. 또한 다음달 10일로 예정된 11차 회의에서 근로감독 강화 방안과 함께 사회보험 적용확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특위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한편 기간제, 파견 및 단시간 근로를 다루는 제1분과위는 현재 기간, 사유제한, 반복갱신 등 쟁점안에 대한 복수의 공익안을 제출한 상태이며, 다음달 2일 각각 노·사를 따로 만나 공익안에 대한 입장을 들을 계획이다.
특수고용형태를 다루는 제2분과위는 이미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등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실태와 관련 판(정)례, 행정해석을 검토했으며, 다음주에 노동관계법이 아닌 경제관련법에서의 이들에 대한 보호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와 금융감독위 관계자들을 불러 의견수렴을 할 예정이다. 이 같은 분과위 활동들은 내년 1월7일 특위 전체회의에서 최종 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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