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월간 키노 기자)

우리는 어떻게 영화를 통하여 현실과 마주하고, 논쟁하고, 투쟁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영화가 철저히 상업적이고 부르주아적인 비평담론을 통해

서 소비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문제의식과 실천의 역사가 없다. 게다

가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좌파적 영화운동의 역사를 성취하고 있던 유럽에서조

차도 이것은 80년대 이후 철저히 기각된 화두가 되었다. 이제 영화는 환상 속

의 스펙터클이 격전하는 상업적 볼거리이거나 고고한 유미주의자들의 예술적

전유물이 그어놓은 경계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럴 때 켄 로치(Ken Loach)라는 이름은 놀라우리만치 예외적이다. 철저히 상

업적 담론과 부르주아 미학으로 치장되고 있는 영화의 존재론에 대한 지속적

인 균열을 일으키는 영국의 거장, 켄 로치는 스스로 영화작가라는 명예의 전당

에 오르기보다는 실천하는 사회주의 운동가임을 공언하는 가장 급진적인 영화

감독이다. 60년대, 영국의 TV 드라마로 자신의 이력을 시작한 그는 ‘현재의 상

황을 반영하는 드라마의 발굴’이라는 개념 속에 영국 노동계급, 빈민, 홈리스

등에 대한 관심과 영국 복지사회와 계급문제를 둘러싼 기만과 모순을 일관되

게 폭로해왔다. 켄 로치에게서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내용을 압도하지 않는

형식’이라는 원칙 속에서 미학적 욕망보다는 계급적 관점에 입각한 ‘예술의 정

치화’를 실천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영화미학은 TV 드라마적 이야기 구조

에 기초하면서 다큐멘터리적인 관찰자적 카메라 워크를 견지하고 있다.

<빵과 장미>는 켄 로치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영국 사회에 한정하지 않고 국가

의 경계를 넘어 90년대식의 인터내셔날리즘을 추동해온 그 나름의 완결편처럼

보인다. 95년, 스페인 내전에 대한 좌파 내부의 반성적 성찰을 유도하는 작품

<랜드 앤 프리덤>으로부터 96년, 제국주의 수탈에 저항하는 니카라구아의 혁명

운동을 기록한 <칼라 송>을 경유해서 그는 드디어 이 작품 <빵과 장미>를 통

해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 다다른다.

영국 글래스고의 인권 변호사 폴 라버티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시작된 <빵과 장

미>는 1985년 미국에서 벌어진 이주 노동자 캠페인 ‘용역 노동자들을 위한 정

의 Justice for Janitors’를 소재로 하고 있다. 천사들의 도시, LA. 멕시코에

서 불법으로 건너온 여성 노동자 마야는 자신의 언니와 함께 노동조합이 없는

청소 용역업체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이민 노동자들의 불법적 신분을 이용

한 자본의 이중적인 착취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날, 마야는 자신이 청소하

는 건물에 몰래 잠입해온 노조 활동가 샘을 만나게 되고 이로부터 마야와 샘

의 적극적 노동조합 운동이 시작된다.

이미 자신의 전작들에서부터 영화와 실재의 경계를 지워가던 켄 로치는 이 영

화 속에서 여전히 미국 노동운동의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주 노동자 투쟁

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을 시도한다. <랜드 앤 프리덤>에서 그러했듯 이 영화에

서도 실제 노동자들을 출연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노동조합에 대한 의제와 논쟁

을 유도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영화는 역설처럼 보인다. 미국 노동조합

(AFL-CIO)은 이미 신자유주의시대 이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을뿐더

러 자신의 계급을 배반한지 오래이다. 그렇다면 왜 다시 노동조합인가? 이민

노동자인가?

이런 물음들을 품고 있는 <빵과 장미>는 하나의 정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지금

시대, 노동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현실을 자각하고 정치세력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적 시선을 담

아낸다. 이 싸움을 현재형으로 불러들이는 켄 로치의 <빵과 장미>가 진정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성취는 내러티브의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발휘되는 놀라운

파워에 관한 부분이다.

영화의 후반부, 노동자들이 LA 시내를 점거하고 거리 투쟁을 벌이는 장면에 이

르면 이 영화의 파워는 극대화되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직면한 문제들이 단지

논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화된 실천력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것

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빵과 장미>가 켄 로치 영화에서 유독 낙관적이고 희망

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파업의 성과를 성취하는 해피엔딩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신자유주의 상황 속에서 좌파들이 돌파해 나가야하는 그 방법론

을 대안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캠페인을 벌여나가는 동안 우리는

그들이 사회적인 운동의 한 부분이 되었을 때 겪는 멋진 변화들을 보게된다.

용기와 연대의식, 그리고 서로의 동지애를 키워가는 감동은 여전히 모순된 현

실에 있는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사회주의자 행동]의 폴 킴(Paul

Kim)이 이 영화에 보내는 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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