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실업자운동의 문제점과 극복방안
이 글은 창간호에 실린 독일 및 프랑스 실업운동에 관한 글에 덧붙여, ‘실업
자 모임(가칭’) 준비모임에서 기고한 글입니다.
최경선 (나우ID : 정반실동)
“복지국가의 쓰레기” 독일에서 실업자 운동이 전면화되었다는 것은 ‘복지’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남한에서도 실업자 운동이 조직화될 수 있음을 확신시켜준
고무적인 사건이다. 프랑스에서의 ’35시간 주노동’ 입법화는 주 72시간 노동이
일반적인 남한 노동자로서는 꿈같은 이야기건만 단결·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고취시켜준다. 반면 서구에서 격렬했던 실업자 운동은 우리의 실업
자 운동 일반이 극복해야 될 문제점들을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무엇보다 실업자 운동과 노조운동과의 관계형성이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등 각국의 주요 노동조합이 실업자 운동에 보여준 행동은 노골적인 적대감을
또는 심정적 지지에 지나지 않았다. 공동전선을 펼칠 때조차 노조는 투쟁의 헤
게모니를 쟁탈하기 위해 분열책동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남한 실업자 운동의
깃발이 올곧게 서기 위해서는 현장 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민주주의가
명확해야 하며, 또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현재적 민주노총의 실업자 관련 대책 모색은 상층의 논의 수준에 머무
를 뿐, 안일한 감이 없지 않다. 전국적 실업자 조직을 출범하겠다는 야심찬 계
획을 추진 중인 국민승리21은 이와 관련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
다. ‘선거를 위한 정치조직’은 실업자 운동의 정치성과 전투성을 어느 수준으로
잡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처럼 정부의 엉터리 실업자 통계 수치는 노동
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부 지역 노조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한 “노조
가 조합원만 대상으로 하면 망한다.
실업자 모임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제 낯설지 않다. 실업자 운동과
노조운동과의 통일전선은 필연적인 만큼 노동조합은 이에 관한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 그것은 전투성과 개방성, 진보성으로 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남한 실업자 운동 초동주체들은 프랑스 실업자 운동의 맹아인 ‘실업
에 대항해 함께 행동하자 (Act Together against Unemploymemt, AC!)’의 행동으
로부터 실천적인 교훈을 배워야 한다. 실업자 운동의 불모지였던 1993년 AC는
노조좌파, 실업자 조직들, 여성 조직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러한 혼성적 정체
성으로 인해 AC는 보통 서로 고립되어 왔던 실업자들과 조직화된 노동운동 양자
를 결합시킬 수 있었으며 다른 조직들과 통일전선 작업을 시도, 훌륭하게 전개
할 수 있었다.
현재 실업자 운동의 주체들은 전북, 경남, 수원, 서울 등등 분할된 지역 안에
서 개별화된 채 실질적 연대의 고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확고한 운동주체를 설
정하기 위해서라면 조직적 연대를 아울러 당위성과 대의 등 기본적 인식만 동의
되어도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조직적 통합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리고 실업자 운동의 이론과 경험이 전무한 현 상황 아래에서는 뭐니 해도
명확한 이론 생산과 용기 있는 진보적 인자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서구 실업자
운동의 경험과 일반화로부터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에서는 그들의 지
난한 투쟁의 과정을 번역, 가공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단체 및 개인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
구, 산발적인 번역과 지엽적인 가공에 머무르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차
원은 전국적인 실업자 모임을 건설, 실업자 운동에 동의하는 전문인력을 조직적
역량으로 포괄하는 것이다. 용기 있는 진보적 인자의 결합도 이와 동일한 맥락
이다.
마지막으로 대안 및 정책을 설정·생산하는 문제이다. 현재 IMF의 영향은 전
국민적으로 현재의 끔찍한 상황을 숙명론적(기계적 유물론)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신을 진보적 인자로 믿고 있는 대다수 활동
가들이 이러한 숙명론으로 인해 비관주의와 패배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
다.
물론,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이데올로그들은 다름 아닌 김대중 정권
과 그들의 데마고기들이다. 자본의 신자유주의와 정리해고로 이야기되는 노동시
장 유연화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한편 활동가들이 미래의 전망을 갖고 자신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대안 및 선명한 정책이 절대적이라 할 것이다. 이것
은 음모적인 조직의 강령이 아니다. 대중 앞에 공개된 전국적 실업자 조직의 체
계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정부는 ‘어렵다. 어렵다’는 말로 실업대책을 대신하고, 실업자들의 처참한 실
정을 철저하게 은폐해왔다. 끝끝내 사회문제화되자 인심쓰듯 껍데기뿐인 시혜를
베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껍데기인 이유는 그 나마의 실업대책예산
마저 실행할 의지가 없다는 데 있다. 실업세를 받자는 의견은 사장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무산되었다. 부당노동행위를 엄단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현재
노동부의 행정력은 마비상태이다.
어디서도 등 비빌 데 없이 무능력자로 낙인찍히는 사회적 배제자들, 그들 실
업자를 위해 우리가 희망이 되어야 한다. 과감한 용기, 냉철한 이성, 과학적 이
론으로 무장하여 남한에 실업자 운동의 기치를 치켜세워야 한다. 이것이 프랑스
에서는 죠스팽 총리의 굴복을, 독일에서는 사장들의 혼쭐을 빼놓고 있는 원동력
이다. 서구의 실업자 운동이 가르쳐 주고 있는 교훈이다.
이제부터 공장의 담을 넘어, 지역의 벽을 넘어 현 남한 실업자 운동의 문제점
을 본격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업을 차근차근 개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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