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로 못 찍으면 꼬집기라도 한다?
8월 2일, 청문회에서 故김선일 씨의 모습이 담긴 AP통신 원본 테잎이 공개되었다. 김선일 씨는 이미 죽어버렸는데, 그의 목소리는 남아 열심히 고향집 주소를 말하고 있었다. 발음 하나하나에 목숨이 달려있기라도 한 듯 – 사실이 그러할 수 있었으나 테잎이 잘려질 줄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 또박또박, 또박또박하니 부산의 집주소를 말하고 있었다.
8월 3일, 새벽 4시에 경기도 광주에서 헬기로 성남의 공항까지 극비리에 이동된 자이툰 부대는 결국 아침 7시에 한국땅을 떠나 이라크로 향했다. 태극기에 덮혀 들어올 관을 이제 우리는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이라크 민중이 죽어나가야만 하는 것인가? 8월3일, 아침 10시 청와대 앞에 모인 우리들은 한국군을 이라크로 보낸 것은 큰 실수라고 소리높여 외쳤다. 그리고 청와대로 걸어가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 전경들은 우리를 막아섰다. 방패로 벽을 만들면서. 우리는 계속 걸어가려 했고 그들은 계속 막아서려 했다. 그러던 차에 옆에 있던 ○○이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으악! 어딜 만지는 거야! 야! 어딜 꼬집는 거야!!”
집회에 나가 전경들과 밀고 당기는 상황을 겪어보면 알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막아서려는 힘보다 강하면 방패벽이 무너지고 틈이 생기게 된다. 이를 소위 ‘뚫린다’라고 하는데 우리 바로 앞의 상황이 그러했다. ○○과 나의 바로 앞에 있던 전경 두엇은 뚫린 틈새를 방패로 추스르지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 위기가 닥치면 그네들은 방패로 찍어 내리기라도 하지만 우리들이 방패에 밀착해있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불가능하였다 –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뚫린 틈으로 튀어나온 손에 의해 엉덩이를 심하게 꼬집힌 것이다. 아프기도 아픈 거지만, 그 상황이 너무나도 분노스러워 ○○는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고, 나를 비롯하여 주변에 있던 이들도 함께 항의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뚫린 틈은 다시금 방패로 막히고 1078중대는 대열정비 되었다.
1078중대는 곤봉과 방패로 시위대를 진압하지 못할 시 손으로 여자 엉덩이를 꼬집으라고 교육을 받는가보다. 그렇다면 그 교육은 훌륭한 효과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8월 3일 집회 현장에서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性적으로 모멸감과 수치심, 위협감을 주어 상대를 제압하는 일)으로 인해 청와대로 걸어가려던 우리의 시도는 효과적으로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폭력’이다
폭력범에게 피해를 당한 시민이 경찰을 보았다. “저 놈 잡아요!”라고 하는 시민의 말에 경찰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①안들리는 척, 못본 척 하고 갈 길을 간다
②”저는 살인범 잡으러 왔지 폭력범 잡으러 온 거 아니에요”라며 갈 길을 간다
③”112에 신고해요”라며 갈 길을 간다
성폭력범에게 피해를 당한 우리들이 1078중대 책임자와 집회현장에 꽤나 많던 형사님들에게 목이 쉬어라 “저 놈 잡아요!”라고 외쳤지만, 재미나게도 그들은 모두 ①번과 ②번과 ③번의 태도를 취했다. (아, 도망가기도 했지. 도망가는 법이 어딨냐며 막아서는 학생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방패로 밀치면서)
경찰들은 성폭력은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성폭력범은 폭력범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1078부대 안에 용의자가 있는데 왜 1078부대 책임자는 퇴각 명령을 내렸으며, 왜 현장에 있던 형사님들은 112에 신고하라는 이야기만 반복하며 현행범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으며, 112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청운파출소 경찰들은 왜 50미터 거리를 20분도 넘어서야 도착해 놓고는 1078중대가 현장에서 물러나는 것에 그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퍽이나 궁금하다. 소싯적에 배운 바로 경찰은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하였다.
여기서 시민의 안전을 위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여자들이 변태들이 무서워 밖에 나가기가 싫어진다거나 하는 일을 바로잡기 위한 행위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되려 그런 권력을 이용해 여성의 엉덩이를 꼬집은 경찰은, 그리고 그러한 범죄자를 잡을 생각을 안 하는 경찰은 경찰인 것인가 아닌가? 헷갈려진다.
어쨌든 8월3일 청와대 앞에서의 집회현장에서 발생한 <1078중대 성폭력 사건>을 겪으며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은 경찰들은 성폭력은 범죄가 아니며 성폭력범은 범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혹은 경찰은 성폭력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시위진압을 위해 여성에게 성적으로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정도야 뭐,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기에 이제 경찰들이 보일 때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말을 크게 외치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성폭력은 ‘폭력’입니다! 성폭력범도 범죄자입니다!”
여자들도 할 말 하러 집회에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집회 현장에서 공권력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96년 한총련 소속 여학생에 대한 경찰들의 집단 성폭력, 03년 부안 반핵 투쟁 중 장기 주둔 경찰력의 일상적인 언어·신체 성폭력 등 가시화된 사건들도 한두 가지가 아닐 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은 무수하다.
이번 <1078중대 성폭력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들을 좀더 정확하게 대면한 것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의 올곧은 해결을 통해 시민이, 여성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옹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시민의,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와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어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집회현장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쾌하고 억압적인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경들과 밀고 당기는 도중 **와 내 앞이 뚫렸을 때, 전경들이 당황하는 만큼 사실 나도 내심 불안했다. 그 주변은 여학우들이 몰려있었는데 집회 현장에서 그렇게 여성들이 밀집되어있는 곳에서 발생하곤 하는 불쾌하고 폭력적인 일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빠져요 빠져! 여자들 빠지라니깐!”
힘센 남자가 더 잘 싸우니까? 집회가 전경들이랑 누가 더 주먹이 센가 겨루는 공간인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집회에서 전경들과 대치할라치면 저런 말들이 튀어나온다. “나와요 나와! 남자들 나오라니깐!” 전경과 직접 대치하는 맨 앞에 설 사람이 필요할 때 익숙하게 들려오는 말이다. 용기를 필요로 할 때 그것은 남성의 몫으로 돌려진다.
때론 여경을 향해 성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집회 참가자들도 종종 있는데, 여성 억압적인 방식으로 전경들과 맞붙는 행위는 8월 3일 우리가 분노해 마지않았던 1078부대의 그것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쪼록 이번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여성배제적이고 성폭력적인 집회 문화에 대한 각성의 계기들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여자들도 할말 하러 집회에 나올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태까지는 성폭력을 당해도 피해자가 기분 나쁘고 말면 그만이었다. 참고 싶어서 참았던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를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1078중대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현장에 있던 이들이 피해자와 함께 모두같이 항의하면서 성폭력 가해자와 그를 옹호하는 1078중대를 계속 쫓아갔다.(도망가는 경찰을 그렇게 쫓아다닌 것은 또 처음이다) 결국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당연하지만 실천되기 쉽지 않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1078중대를 비롯한 경찰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옹색한 변명을 해대면서 일말의 책임도 지려하지 않고 있다. <1078중대 성폭력사건>의 올곧은 해결을 위해, 나아가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 그날의 분노를 기억하는 이들은 끝까지 싸울 것이다. 보다 많은 이들과의 보다 힘찬 집단적인 행동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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