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넘도록 평범한 주부가 힘들게 싸워 왔던 거제 의료성추행 사건이, 결국 대법원에서 기각되고 말았다.
96년 6월 고발장이 접수돼 형사재판으로 시작됐던 거제 의사 성추행사건이 98년 9월 22일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판결(재판장 박준서 대법관·상고인 노정환 창원지검 검사)로 만 2년이 넘는 긴 여정을 씁쓸하게 막내렸다. 97년 11월 7일 창원지법 통영지원 1심 피고 무죄판결, 98년 6월 25일 창원지법 2심 피고 무죄판결로 상고인측에서도 대법원 승소판결을 크게 기대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거제 의사 성추행사건은 96년 5월 30대 주부 최모씨가 자신의 피부 발진과 아들의 신열증세로 같은날 두차례에 걸쳐 인근 정모씨의 병원에 찾아갔다가 일어난 사건. 첫번 진료시 정씨의 진찰행위를 수상하게 여기던 최씨는 두번째 방문했을 때 아들진찰을 마친 정씨가 자신을 재진찰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확신하게 됐다. 정씨는 최씨의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움직이고 거기에 입을 갖다대기까지 했다는 것. 이후 최씨 부부의 거센 항의에도 정씨가 끝내 잘못을 시인하지 않자 고발장이 접수됐다. 최씨의 일관된 진술, 정씨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거짓말탐지기 반응결과와 녹취문 제시 등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를 비롯한 정씨측 증언에만 재판부가‘손을 들어줘’지역 여성계의 반발을 샀던 사건이다.
몇초만에 끝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추행과 관련해 재판부의 획기적 태도 변화가 필요함을 절감시켰다.
우조교 성추행사건을 승리로 이끈 주역중 한 사람인 최은순 변호사는 “우선 판결문을 세세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전제한 후 강간과 달리 가해자가 부인하면 직접적 증거를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판상 최대 난점으로 꼽았다. 녹취문 등은 직접증거 자료가 될 수 없어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증거가치가 판단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증언을 더 신빙성있게 보느냐의 문제인데, 가해자가 의사, 교수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일땐 피해자가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법관의 판단이 사람의 사회적 신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 또 강간도 아닌 성추행을 문제삼는 것에 대해 소위 ‘꽃뱀’ 비슷한 선입관도 가질 수 있다.
최 변호사는 “형사소송이 증거판단면에서 훨씬 까다로울 수 있다”며 우조교 사건에서처럼 민사소송으로 가는 것이 피해자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번 사건에서 최씨를 지원했던 경남여성회 부설 성·가족상담소측은 사건일지와 국내외 관련자료를 수집해 기록’으로 남기고, 사건을 다시 원점에서부터 면밀히 검토해 최씨와 민사소송 제기도 의논해볼 계획이다.
피해자 최씨는 의외로 담담하다.“커피 한잔 대접하지 못했는데도 헌신적으로 도와준 여러분들께 고맙고도 미안할 뿐이다. 재판도중 시아버지가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집안 사람들이‘좀 조용히 살 것이지 여자가 너무 설쳐 안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질책할 때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법원에까지 이 사건을 가져가 이의를 제기한 것이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보람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대법원 상고에서 한 여성을 증인으로 확보,정씨의 병원에서 당한 수모를 서신형식으로 제출케했는데도 이것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 못내 섭섭하다고 덧붙였다.
<박이 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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