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대부분 세계 각국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을 지배해온 경제 패러다임이 도전받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좌파 집권은 사회주의자들이 서유럽 주요국들을 통치하는 전례없는 상황변화이다. 유럽연합(EU)내에서 보수파 정부는 스페인과 아일랜드 두 나라밖에 남지 않았다.
9.27 독일총선에서 사민당이 승리해 한달뒤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총리가 되고, 같은날 이탈리아에서 공산주의자 출신인 마시모 달레마의 새 내각이 인준받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정책흐름은 온건한 ‘제3의 길’이라고 널리 알려졌었다. 영국의 新(신)노동당 노선이 대표하는 ‘제3의 길’은 머니터리즘(통화주의)과 글로벌리즘(세계주의)을 통합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新민주당 노선’과 맥이 닿아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클린턴, 그리고 달레마의 전임자 로마노 프로디는 9월21일 뉴욕대학에 모여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에 리버럴한 사회 비전을 결합한 ‘제3의 길 정치동맹’을 기념했다. 참석하지 않은 EU의 주요 사회주의 지도자로는 스웨덴의 외란 페르손과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 그리고 이들의 맏형격인 네덜란드의 빔 콕 등이 있다.
이들 불참자때문에 ‘제3의 길’을 제창한 블레어가 유별나 보일지도 모르지만 10월23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비공식 EU정상회의를 돌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새롭게 컨센서스를 이룬 제반 정책이 성공한다면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컨센서스의 대원칙은 오스트리아 회의에서 드러났듯이 비록 수정된 형태이긴 하지만 유럽의 사회적 시장자본주의와 복지국가 모델을 지켜나가고 재정지출에 있어 정치적 사회적 고려를 앞세우자는 것이다. 이는 신설된 유럽중앙은행(ECB)을 이끌어나갈 독일의 정통적 금융관행과는 상반된다. 성장을 지속하고 汎(범)유럽차원의 고용창출 노력을 지지하기 위해 유럽의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새로운 방향의 기본적 역량은 내년 1월1일 출범할 유럽통화동맹(EMU)과 단일통화 ‘유로’에 대한 자신감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통화 전환기의 문제점들이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때문에 자신감과 불안이 교차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선 자국통화 폐지안이 일부 여론의 저항을 받기도 했다.
전세계에 걸친 금융위기는 거의 모든 사람의 생각을 바꿔놓았다.다른 지역 대부분의 통화가치가 힘없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유로 동참이 예정된 EU 각국의 통화가치는 상승했다.이제 유로화는 유럽의 안정,단결,영향력의 보증서처럼 여겨지고 있다.
큰 걱정거리는 미국 달러화의 약세에 비춰 유로화가 지나치게 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초여름부터 떨어진 달러화는 9월이래 독일 마르크화 대비 8% 폭락했다. ‘低(저)달러의 이점’을 상쇄하자면 유로의 가치를 재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유럽이 새로이 자신감을 가다듬게 된 주된 요인은 한때 실업률이 두자리수에 이르는 등 침체됐던 경제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U 전체적으로 내년 성장률이 미국보다 높을 전망이다.
80년대 들어 마거릿 대처 영국정부가 경제개혁에 성공한 뒤부터 서방세계의 정책기조는 유권자 대다수가 요구하는 세금감면을 통한 기업의욕의 자극 및 성장, 그리고 보건 및 복지서비스의 민영화를 통한 효율 극대화로 압축할 수 있다.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한 전통적인 英·美(영·미) 시각은 유럽이 공공 및 사회복지 비용을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 정권, 나아가 사회의 안정을 저해하고, 따라서 인플레이션에 직면하든지 보호주의로 경도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이제 유럽은 역내 경제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인프라 사업을 포함, 汎유럽차원의 고용창출 및 성장촉진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또 국제적으로는 금융세계화의 부정적 파장을 막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자금이동에 대한 이른바 ‘토빈稅(세)’부과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EU의 향후 정책은 산업주권 수호차원에서,또 천박한 상업주의로부터 문화·지식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다 간섭주의적인 성향을 띠게 될 것이다.요컨대 시장은 사회적 선택이나 가치의 결정주체가 아니라 오직 수단의 하나로 취급될 것이다.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의 양상은 분명하다. 미국측 분석가 대부분은 간섭의 비효율성으로 말미암아 실패하고 말 도전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유럽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10년 안팎에 어느 쪽이 옳은지 판가름날 것이다.
<윌리엄 파프(본지 객원칼럼니스트)·정리=趙庸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