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실패하면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아니)실패한다면, 나는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3월 취임하며 한 친구와 나눈 말이다. 대공황이 미국사회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해는 대공황의 절정기에 해당한다. 전체 미국 노동력의 24.9%에 이르는 1280여만명이 실업상태였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에게 돌아갈 일자리는 없었다. 청년들은 <형제여, 10센트를 적선해줄 수 있오?>라는 노래를 불렀다. 미국 전역에서 17살 이상의 청년 7천여명이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상류층 자녀들을 빼곤 청년들의 처지는 비슷했다. 일부는 세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면서 집주인에 대한 분노를 삭였고, 일부는 떼를 지어 기차 화물칸에 몸을 싣고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이들의 어린 동생들은 5명 중 1명꼴로 영양부족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들의 분노와 좌절이 급격한 사회적 폭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달 만에 ‘민간자연보호사단’(CCC)을 만들어 산림보호, 산불·홍수 예방, 전염병 예방 등에 청년 실업자 25만명을 투입했다.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 때까지 계속된 이 프로그램은 청년들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막는 데 주효했다고 평가받는다.
청년들의 또하나의 탈출구는 라디오와 영화였다. 30년대는 라디오 방송의 절정기였다. 1920년 50만대에 불과하던 라디오 보급대수는 30년 140만대로 늘었다. 1930년 한햇동안 212개의 상업 라디오 방송사가 만들어졌다. 1주 영화 관람객수도 1억1500만명에 이르렀다. 이중 상당수가 청년층이었음은 물론이다. 70∼80년대 입시에 찌들어 지내면서도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영화관을 찾던 우리나라 청년들의 모습과 비슷한 셈이다. 하지만 결정적 탈출구는 역시 전쟁이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 수백만명이 군 입대와 군수산업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그 결과 그 시대 미국 청년층은 대공황에도 종교적 믿음, 공동체 정신, 조국애 등 유대·기독교적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게 미국 학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그리고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의 ‘축복’ 속에 대량생산·대량소비 자본주의의 주역이자 향유자가 됐다. 미국에서 ‘잃어버린 세대’는 이들의 아버지 세대격인 1880년∼1910년 출생자들이다. 2차례 세계대전, 대공황을 겪으며 검소한 생활방식이 몸에 뱄고, 늘그막까지 높은 세금이 이들을 따라다녔다. 후세대에 오로지 베풀기만한 셈이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 선진국 청년층은 더이상 자본주의의 주역도 향유자도 아니다. 미국 청년층은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 유럽의 24살 이하 청년층 실업률은 20%를 웃돌고, 프랑스의 경우 28%에 이른다.
프랑스의 청년층은 정부가 청년 고용 증진에 미흡한 태도를 보이자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직접 나서고 있다. 노동시장에 나가보지도 못한 프랑스 실업청년들이 올해 초 정부를 상대로 최저생계비 지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결국 프랑스 실업청년들은 정부로부터 최대 3년간 매달 2천프랑씩 취업교육용 장학금을, 일부 지역은 기업들에 20% 의무고용을 강제한다는 약속도 얻어냈다.
재정적자를 보는 새로운 시각
청년 실업자운동이 태동중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프랑스의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의 일부 노동조합 등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단체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해 실업자운동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사회보장제도를 둘러싼 세대간 갈등을 실감나게 드러낸 것이다. 우리나라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아직까지는 실업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 감추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이런 상황이 곧 가시면 세대간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보장제도를 ‘세대간 고통분담의 정치’라고 부른다. 사회보장 확대를 위해 재정적자를 늘린다면, 이는 결국 기성세대가 후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효과를 갖는다는 뜻에서다. 게다가 지금은 급속한 경제성장의 축복도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결국 ‘세대간 고통분담’은 정치의 몫이 된다. “급속히 늘어나는 정부 재정적자를 이런 차원에서 바라보는 정치인들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사회진출 자체를 거부당하는 실업청년들에게 어떻게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정태인 연구위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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