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 ㅅ여상을 졸업한 김아무개(19)양은 학교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착실하다고 자부해왔다. 주변에서 얼굴이 예쁘다는 칭찬도 받아왔다. 이미 유흥업소로 진출한 친구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유혹도 여러번 받았지만 뿌리쳤다. 3학년 겨울방학이 시작할 무렵 김양은 한 중소기업 비서로 채용돼 흡족해했다. 그러나 졸업식도 하기 전에 회사는 부도가 나버렸다.

김양은 한달을 집에서 보내다 고교 친구에게 연락했고 그날로 신촌의 한 룸살롱에 일자리를 구했다. 김양 스스로도 놀랐고 자신의 변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밤에 출근하는 직장은 마음 한번 고쳐먹으니 길이 너무나도 환히 열려 있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양은 손님 일행에 섞여 있던 담임선생님을 보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김양은 다음 날로 업소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작심삼일. 짭짤한 벌이에 이미 맛을 들인 유혹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현재 김양은 업소만 바꾼 채 다시 밤이면 집을 나서고 있다.

요즘 실업계 고등학교는 ‘서비스업계 고등학교’라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유흥업소에서 적발되는 미성년 종업원들을 보면 대부분 실업계 고교 출신 또는 재학생들이다.

실업계 졸업생들의 유흥업 종사비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교육부가 발표하는 취업률을 통해 어렴풋이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졸업생의 취업률은 71.2%였으나 올해 2월 졸업생의 경우는 63.6%이다. 그러나 올해는 기업에서 합격시키고도 구조조정 때문에 발령을 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유흥업소 취업은 교육부의 취업률 조사 대상에서 빠진다.

졸업생이 좋은 곳을 골라 갔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근무여건이 좋지 않아도 울며 겨자먹기로 가야 하는 게 모든 실업계 고교의 공통된 운명이다. 인천지역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인천여상의 경우 지난해 2월과 올 2월 졸업생 취업률이 각각 95.3%와 92.2%로 비슷하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졸업생 가운데 은행진출은 6명, 제2금융권이 64명, 그리고 보험회사가 53명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은행만 5명으로 예년 수준이다. 제2금융권과 보험회사는 각각 37명과 26명으로 뚝 떨어졌다. 대기업 또한 97년 331명에서 올해는 80명으로 급전직하했다 그동안에는 꺼렸던 중소기업 취직이 올해 급증한 데 힘입어(?) 겉보기에 취업률이 약간만 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취업의 질이 떨어지면서 중도에 그만두고 유흥업소로 ‘전직’하는 경우도 늘어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김양의 룸살롱 자리를 소개해 준 학교 친구인 이양은 2년 전인 고2 때부터 단란주점과 룸살롱을 전전해왔다. 이양은 “올 들어 김양처럼 학교 동기나 선·후배들로부터 일자리 좀 알아봐달라는 ‘구직 청탁’이 한달에 3∼4건은 된다. 예전에 없던 현상이다”고 설명한다. 청소년 보호위원회 위원장인 강지원 검사도 “실업계 졸업생들의 취업형태 중 유흥업소 진출 비율이 가장 많은 것은 장담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대학입시 준비생 급증

취업하지 못한 실업계 출신들이 유흥업소라는 극단적인 탈출구만을 찾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학을 늘 선망해왔던 졸업생들이 마땅한 일자리가 없자 아예 대학을 목표로 삼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대학 진학률은 96년에는 22.0%였으나 97년 29.2%에 이어 올해는 35%로 상승했다. 서울 정진학원의 김태웅(33) 상담실장은 “학원생 중 실업계 졸업생의 비율 또한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취업이 됐음에도 학원 야간반을 다니는 재수생도 많아졌다”고 설명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회 실업분과장인 하인호(44)씨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실업계로 진출한 아이들은 2등국민으로 전락한다. 적성 등이 아니라 오로지 성적이 기준이 되어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뉘기 때문이다. 취업이라도 잘된다면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사무자동화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이들이 차지해왔던 자리가 지속적으로 잠식돼왔다. 남은 것은 대부분 3D업종뿐이다”고 한탄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중적인 성문화와 비뚤어진 교육문화는 유흥업소와 입시학원이라는 양 극단을 실업계 졸업생의 ‘마지막 비상구’로 만들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는 취업률이 예년은 물론 지난해보다 훨씬 떨어진 데서 감지된다. 인천여상의 경우 학기말이 두달도 안 남았는데 보험회사 합격자가 아직 1명도 없다. 은행도 보훈대상자 1명이 한국은행에 합격한 1건에 그치고 있다. 제2금융권도 17명으로 올해 2월 졸업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1년 전의 3분의 1 수준이다. 교육부의 백종면 산업교육정책과장은 “예년 이맘 때 같으면 실업계의 취업 전단계인 현장실습률이 70∼80%는 됐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10월 말 현재 46%에 그치고 있다”고 말한다.

전교조 하인호 실업분과장은 “실업계 출신은 대학생과 달리 완충장치가 없기 때문에 같은 충격에도 훨씬 피해가 크다”고 설명한다. 대학생은 전망이 흐릿하면 휴학이라는 임시방편을 쓸 수도 있다. 휴학생도 실업계 출신들이 보기에는 ‘떳떳한 백수’이다. 하지만 같은 또래 실업계 출신들의 사전엔 휴학이란 단어가 없다. 실직 또는 미취업만이 있을 뿐이다. 군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학 신입생이야 나이가 안 되면 1∼2년간 학교 다니다 입대하면 된다. 그러나 18∼19살의 실업계 졸업생들은 입대 연령(20살)이 될 때까지 취업하지 않으면 딱히 갈 데도 없다. 재수를 한다 해도 실업계 공부한 해온 상태에서는 쉽지 않다. 그동안 입시 준비 위주로 공부해온 인문계 출신과는 출발조건부터 다른 것이다. 명색이 진학은 해도 애초 원했던 곳으로 진학하기는 어렵다.

삐끼 들어가기도 바늘구멍

유흥업소도 예년에 비해 돈벌이는 물론 일자리가 줄어 타락 정도도 심해지고 있다. 룸살롱의 이양은 “지난해만 해도 벌이가 한달에 300만∼400만원이었는데 올 들어 150만원 꼴이다. 때문에 예전에는 10명중 2∼3명만 2차를 나갔는데 지금은 5∼6명이 자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양도 2차는 절대 안 한다는 원칙을 올 들어 접어버렸다. 비교적 건전한 일반 카페의 경우 대학 휴학생들이 몰려들면서 실업계 출신을 쫓아내고 있다. 남자들의 경우도 최근 몇년간 ‘삐끼’라는 직업이 확산 일로를 걸으며 실업계 출신의 든든한 밥줄 구실을 했으나 지금은 더이상 아니다.

‘공고괴담’도 있다.

올해 서울 ㅇ공고를 졸업한 최아무개(19)군은 지난 3월 자동차 정비공장을 때려치우고 서비스업종으로 ‘전직’했다. 힘이 부치고 욕을 들어먹는 상황에서도 버티려 했지만 월급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일할 맛이 영 안 났다. 최군은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소주방에 웨이터로 취직했다. 그러나 주인은 장사가 안 된다는 핑계로 최군을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로 내몰았다. 삐끼는 웨이터보다 벌이가 시원치 않고 위험부담도 크다. 이미 호객행위로 경찰에 3차례나 붙잡혔고 5일간 구류를 산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직업마저도 이제는 더 이상 못하고 있다. 지난 9월15일부터 심야영업이 풀리면서 삐끼가 더이상 필요없게 됐다. 말하자면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것이다.

아직도 심야영업 단속대상인 룸살롱과 단란주점은 아직도 삐끼를 두고 있지만 들어가기가 바늘구멍이다. 소주방 삐끼들의 대량해고로 삐끼 공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군은 그러던 차에 학교선배를 만났고 이제는 자동차 문을 따 훔쳐 파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최군은 지난달 절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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