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간섭, 미국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노암 촘스키와의 인터뷰-

라 레푸블리까 (La Repubblica)

지암빠올로 까다라누

1>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 당장에는 비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간

섭의 실제 이유가 유엔 결의문의 내용을 강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

까?

그것을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유엔 결의문을 존중하는지 의문

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를 살펴 볼 간단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지난 과거 30년

동안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데 있어서 단연

선두에 서 있습니다(영국이 두 번째, 프랑스가 현격한 차이로 세 번째). 유엔

총회에서 미국은 여느때 같이 광범위한 쟁점들에 대해 사실상 안보리 결의안만

따로 분리해 거부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총회 결의안 전부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러한 경향은 국제사법재판소나 인권에 관한 국제적인 조약, 그리고 그밖의

것들로 확대됩니다.

더우기 미국은 형식적으로 조인한 유엔의 결의사항들을 거리낌없이 무시하고

흔히 그러한 위반에 실제로 기여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가 유명합니다(이스라

엘로 하여금 레바논에서 즉각 철수할 것을 요청한 1978년 안전보장이사회의 결

의사항).

아주 적절한 또다른 예를 들자면 1975년 12월,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지체없이’ 군대를 철수할 것을 명령하고 “모든 국

가가 동티모르의 영토보전 뿐만 아니라 자결권에 대한 그 민중들의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존중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은 1978년 공격이 거의 집단학살 수준에 이르자 군대 파병을 다시 가속화

시키면서 그 침략국에 군함을 (비밀리에) 증가시키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유

엔 대사인 다니엘 패트릭 모이니한은 그의 회고록에서 “자신들이 하던대로 일이

진행되길 바라고 해내려 애썼던” 국무성의 지시를 따라 “그것이 어떤 정책들을

수행했던 간에 완전히 무능력한” 유엔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습

니다. 미국은 또한 국제협정의 어떠한 근거있는 해석도 반하면서 동티모르의

(미국계 회사가 관여한) 석유약탈을 기꺼히 용인합니다.

비록 차이는 있지만 이라크·쿠웨이트에 대한 유추해석도 비슷합니다. 단지

가장 분명한 것을 언급하자면 동티모르에서 미국 지원하에 행해진 잔혹 행위가

쿠웨이트의 사담 후세인에게 지우는 어떤 것보다 대단히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증거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다른 강력한 권력처럼 미국은 국제적 사안

에서 법이 아닌 힘으로 지배합니다. 유엔 결의안, 국제사법재판소, 국제협정 등

은 정책과 일치한다면 수용적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단지 말에 불과합니다.

2> 이 간섭과 부시정부의 ‘사막의 폭풍’ 작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막의 폭풍’은 이른바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를 몰아

내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주장하고 있는 목표는 후세인의 무기 계획에 대한

유엔 사찰을 수용하도록 이라크에 강요하는 것입니다. 양자 모두의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보다 복잡한 이야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 미국은 이라크가 적당한 곳에 꼭두각시 정부를 남겨두면서 “며칠 내

에 철수”하고 아랍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콜린 파웰 합참의장)것을 염려했

습니다. 간단히 말해 관심사는 미국이 (그 행동을 비난하는 두 개의 안정보장이

사회 결의 사항을 거부하면서) 파나마를 침공하기 몇 달 전에 했던 것처럼 이라

크가 행동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뒤따른 것 또한 일반적인 설명에 딱

들어맞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군사공격이 국제 사찰의 존재 자체를 훼손시키

는 반면 자신의 무기 계획을 계속 추구하면서 이라크의 잔인한 독재자가 권좌에

머무르게 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후세인의 가장 추악한 범죄는 그가 호의있는 미국의 동맹국이나 무역 파트너

였을 때 행해졌다는 것과 쿠웨이트에서 쫓겨난 직후 후세인이 이라크내 반란세

력들의 학살에 집중했을 때 미국은 포획 무기들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반란세력

들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 또한 상기할 수 있습니

다. 공식적인 이야기들은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정확한 상황을 보여주지 않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과 오늘날의 차이는 상당합니다.

3> 클린턴 대통령의 성적인 행위에 관한 ‘성추문(sexgate)’ 스캔들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 결정에 하나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것이 아주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4> 미국의 ‘신세계 질서’에 대한 대안이 보입니까?

‘국내 질서’처럼 ‘세계 질서’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반영하는 기관들 내에서

만들어진 결정들에 기반합니다. 그 결정들은 바뀔 수 있습니다. 기관들이 개조

되고 대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사적 권력 조직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그 희생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여기게 하기 위해 그 결정들을 필연적

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렇게 믿을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특히 세계적 사안

들을 장악하고 있는 부유한 나라에서 시민들은 현존하는 형식적인 협정들 내에

서 조차도 과거의 어느 경우보다 쉽게 대안을 창출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협정들

은 완전히 명문화된 것은 아닙니다.

5> 이라크에서의 사담 후세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991년 3월에 있었던 반란세력들이 하나의 대안이었지만 미국은 후세인을 오

히려 더 좋아합니다. 망명자들 중에 이라크 재야 세력이 있었습니다. 워싱턴은

걸프 전쟁 전이나, 기간, 혹은 이후에도 그들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길 거부했고

그들은 소수의 반체제 저널은 별문제로 한다면, 미국 언론으로부터 실제로 배제

당했습니다. 후세인이 ‘폭풍'(애칭-역주) 슈바츠코프가 감시하고 있는 와중에도

반대 세력들을 죽이고 있을 때 “그들과의 정치적 모임은 이 시기 우리의 정책에

적절하지 않다”고 1991년 3월 14일 국무성 대변인 리차드 바우처는 발표했습니

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들의 계획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으며, 미국이 가능하다면 사담 후세인 없는 ‘냉혹한 이라크 군사정권’과

후세인의 “군사정권이 워싱턴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동맹국들인 터키와 사우

디아라비아를 더욱 만족”시키면서 이라크를 손에 넣었던 시절로 돌아가길 바랬

던 부시정권의 정책에-명확히 그대로인 채로- 여전히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991년 7월 뉴욕타임즈 국제부 수석특파원 토마스

프리드만).

6> 바그다드가 갑자기 유엔 결정에 복종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까요?

나는 그 가능성이 아주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렇게 한

다 할지라도 유엔의 결정사항을 회피할 방법들을 곧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 왜 후세인에 대한 통상 정지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 제재의 결과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후세인의 지위를 강화시키고

살아남아 투쟁하는 민중들 내에서 그에 대한 잠재적인 저항을 저하시켰던 것입

니다. 새로운 폭격도 유사한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8> 당신은 이 시기에 ‘엑손(Exxon)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까?

나는 1991년이나 지금이나 하다못해 협소한 지점에서도 그것이 ‘엑손 전쟁’이

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이, 국무성이 표현한대로

‘거대한 전략적 힘의 원천이자 세계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물질적 횡재 중의 하

나인’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를 확고히 유지시켜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

나 1990년에서 91년까지 미국이 이 통제를 위해 이라크를 위협하는데 관계했다

는 설득렸있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이 자신의 지배를 확대하기 위한

-조지 부시가 미사일과 폭탄이 투하되고 있는 동안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던 ‘우

리가 말한대로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기회로서 이라크 침공을 바라봤

다는 것은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미국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25년간 사실상 국제적 고립 속에서 유지되어 왔지만 이제 실행 가능한 이스라엘

과 아랍간의 ‘평화협상’에 대한 거부자들의 입장을 제기했습니다.

앞서, 미국은 외교적 결정을 요구하면서 안정보장이사회의 결의안들과 그와

유사한 유엔총회 결의안(1990년 12월 마지막 날, 144 : 2로 통과, 미국과 이스

라엘 반대)을 거부하고 유럽, 아랍세계,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외교적 발의권을

훼손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걸프 전쟁 이후에나 미국은 마침내 반대세력 없이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주요 에너지 보존의 통제에 관한 배경의 쟁점은 남

아있지만 그와 별개로 미국 에너지 회사의 특수한 문제는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정책들에 직접적인 동기가 되지 못합니다.

9> 공격에 대한 결정에서 군대는 어떠한 역할을 수행합니까? 그리고 산업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작습니다.

10> 유엔 결의안의 내용을 가지고 가자(Gaza)와 요르단강이 연결될 수 있을까

요?

현재 상황으로 보자면 거의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는 언제나 그 사안들

을 연결시키지만 그러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스라엘 점령지구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현재 강요되고 있는(이스라엘 양대 정치세력간에는 이에 대해 이

견이 없다) 반투스탄(Bantustan) 식의 협정입니다. 이 쟁점에 관한 유엔 결의안

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미국의 기간 거부권 행사 기록과, 미국만의 외로운 반대

투표, 그리고 계속된 위반의 무시들을 회고해 봄으로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1> 전쟁을 피하기 (혹은 중지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혹은 했을 수) 있습

니까?

평범한 답변이지만, 이 경우 무엇보다도 미국과 유럽 내로부터의 실질적인 대

중적 압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에는 그럴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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