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프랑스의 실업자 운동

프랑스의 실업자 운동 / 김신양 편역 / 두리 / 1만원

우리에게 실업자 문제는 8∼9명이 살기 위해 1∼2명을 희생시키자는 논리이다. 아니면 모두가 죽기 때문이다. 서울역 등지에 넘치던 노숙자 대책도 보호소에 수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하다. 현 정부가 노숙자를 대하는 시각은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이들은 보호받기보다 격리돼야 한다는 의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과연 그런가

민주노총과 한국협동조합연구소 부설 노동자기업인수센터가 기획한 이 책은 자료집이다. 지난해 말부터 프랑스에서 폭발한 실업자운동의 자료를 모아 민주노총 김신양 객원정책연구원이 편역한 것으로, 체계적인 저작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체제 이전까지만 해도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지구 반대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대량실업문제가 오늘 우리의 절박한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실업자운동이 해고반대법안 제정, 긴급사회기금 확충, 노동시간단축법 제정 등을 촉진시킨 경험은 우리의 실업문제 대책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책에 나타난 프랑스 실업운동의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다.

“나에게는 세 아이가 있는데 그 중에는 강한 아이도, 보통인 아이도, 또 약한 아이도 있다. 나는 약한 아이가 보호받길 원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불가능한 요구인가.” 요컨대 대량실업시대의 실업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기인한 것이므로, 이제 더 이상 부끄러운 개인사가 아니며, 당당하게 자신을 알려 일할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실업운동은 이미 그 자리를 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최저생계비와 일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여러나라로 확산돼 노조운동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자료집답게 책에서는 우선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업자단체인 ‘실업대책단체행동(AC!)’의 크리스토프 아기통 대변인 및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잡지 기고문 등을 통해 프랑스 실업자운동의 역사와 전개상황, 그리고 그 맥락을 짚는다. 그러나 편역자는 ‘실업대책단체행동’과 ‘실업자 및 불완전 취업자 국민운동(MNCP)’등의 대표를 만나 인터뷰하고 각종 자료로 이들 단체의 현황과 활동을 소개, 단순한 자료집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실업대책단체행동’의 클로드 슈아르 공동대표에 따르면 프랑스 실업자운동의 처음은 이렇다.

“실업자들은 종종 교통비없이 몰래 교통시설을 이용하다 벌금을 물거나 형사재판을 받는다. 우리는 이들의 문제를 떠맡아 공동대응한다. 사람들은 또 전기세, 집세 등을 낼 돈이 없을 때 우리의 개입을 요청한다.” 이런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경험이 알려지면서 실업자들이 조직됐고, 공공건물 점거투쟁단계를 지나 ‘유럽행진’이라는 국제연대운동으로 발전해갔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97년12월 일단의 실업자들이 3천프랑의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마르세유 실업보험기금관리사무소를 점거할 때만 해도 ‘황당하고 뻔뻔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시위가 루브르박물관 점거시위 등으로 이어지면서 논리와 당위성을 갖추고, ‘르 몽드’, ‘리베라시옹’ 같은 대신문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양상이 변하게 된다. 프랑스 정부가 유럽 단일통화를 앞두고 재정적자폭과 이자율, 인플레이션 등의 기준을 맞추어야 하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실업자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책에서는 이와함께 노동시간 단축을 축으로 하는, 프랑스등 유럽각국의 고용창출 움직임을 알리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제3부문’의 창출에도 관심을 나타낸다. 신자유주의하의 산업구조조정으로 90년대 이후 증가하고 있는 미국 고용창출의 본질을 살피는 것도 우리에게 적잖은 것을 암시한다. 75∼95년 사이 미국은 4천3백만명의 일자리를 없애는 대신, 7천만명의 일자리를 새로 창출해냈으나, 임시직의 확대 등으로 고용불안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는 것이다.

부록으로 실은 이학수(파리 4대학 역사학과 박사과정)씨의 글도 짧지만 프랑스 실업자운동을 알기쉽게 정리한 자료다. 97년 12월∼98년 2월 발생한 프랑스 실업자 소요를 중심으로 프랑스 실업자운동을 분석한 이씨에 따르면 실업자 시위는 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진행된 구조조정 기간에 생겨난 사회문제를 드러낸 일대 사건으로 평가된다. 경제성장으로 국가 전체의 부는 증대되는데도 실업자는 전혀 감소하지 않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자, 피해자인 실업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책 말미의 프랑스 실업자 시위일지, 사회불안 여론조사 결과, 프랑스 실업자의 가계부, 실업과 자살과의 상관관계 도표와 그래프 등도 프랑스 실업운동의 배경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은 것을 담고 있음에도 전반적으로 정리가 미진해 읽기가 다소 산만하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것은 이 책이 제시한 문제의 적실성과 시의성 때문이다. 여기서 첫 제기한 실업운동 관련 논의를 보다 활성화하고 이를 분석, 정리해 나가야 하는 것은 관련 학계와 정부 당국자는 물론, 언제 실업자가 될 지 모르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金鍾洛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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