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피노체트 쿠데타 배후 확인… 경제위기 부추켜 여론 조작도. 지난 10월 6일 전세계의 양심세력에겐 매우 반가운 긴급기사가 영국발로 타전됐다. 런던의 한 병원에서 디스크치료를 받던 칠레의 전 대통령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2)가 영국경찰에 체포됐다는 것이다. 독재자의 대명사 격이었던 그는 대통령 퇴임 뒤엔 종신 상원의원으로 자리를 옮겨앉아, 자신의 죄과에 대한 응징을 성공적으로 피하는 듯 했다. 영국의 피노체트 체포가 적법한가를 둘러싸고 국제적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번 체포로 그는 어딜 가든지 역사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아옌데 정권 수립 전부터 치밀한 공작

그러나 전세계 양심세력의 심판에서 아직도 자유로운 자가 남아 있다. 바로 73년 피노체트가 일으킨 군부쿠데타의 배후인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자유로움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73년 칠레 쿠데타에 개입해 비밀공작을 벌인 내용을 담은 문건이 최근 공개됐기 때문이다.

73년 피노체트 군 참모총장이 이끄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다음날 닉슨 미 행정부는 국무성 논평을 통해 “미국 정부와 미국 정부 내 어떤 기관도 연루되지-거듭 강조하거니와-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절차로 수립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킨 배후가 미국이라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70년대 중반께 아옌데 정권 전복공작 의혹에 대한 미 상원의 조사가 진행되기도 했으나, 비밀공작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미국정부의 주요 문서가 모두 ‘일급비밀’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체포된 이후에도 미국은 이상하리만치 침묵을 지켰다. 그간 중국 등의 인권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해온 점에 비춰보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국은 오히려 영국이 피노체트 집권기간중의 인권침해 범죄를 단죄하려는 스페인에 그의 신병을 넘기는 데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이 피노체트의 최대 후견인이자 쿠데타의 배후세력이었다는 전력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런 분석은 옳았다. 최근 ‘일급비밀’(TOP SECRET)에서 일반 문서로 재분류된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회의·국무부·국방부 등의 관련 극비문서는, 미국이 아옌데 정권 전복을 위한 비밀공작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비밀해제된 문서는 모두 20건 200여쪽으로, 73년 쿠데타를 전후해 6년간 집중적으로 행해진 미 정보기관의 비밀공작 실상이 낱낱이 적혀 있다. 한 기밀문서엔 미국이 아옌데 정권 수립(1970년) 이전부터 아옌데의 대통령직 취임을 막기 위해 군부쿠데타를 부추겼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공작은 70년 9월15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다. 리처드 헬름스 CIA 국장이 닉슨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적은 친필 메모에는 “가능성은 10분의 1이지만 칠레를 구하라” “뒷일을 걱정 말고 48시간 내 끝낼 수 있는 쿠데타 계획을 세워라” “쿠데타 전문가를 총동원하라” “칠레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고 공작금은 1천만달러로 하되 필요할 경우 더 사용해도 좋다” “칠레대사관은 개입시키지 말라” 등의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키신저 “아옌데 정권 전복은 우리의 정책”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칠레군부의 쿠데타를 기획한 또다른 핵심 추동자는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다. 기밀문건들에는 키신저가 칠레 쿠데타를 꾸미기 위해 미 정보기관 책임자들에게 수시로 지시를 내리고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70년 10월16일 키신저의 지시를 담은 비밀전문이 칠레 CIA지부장에 전달됐다. 이 전문은 “아옌데가 쿠데타에 의해 전복돼야 한다는 것은 확고하고 지속적인 우리의 정책”이라고 못박고 있다. 또 ‘미국의 손’을 감출 수 있도록 공작을 수행하고, 쿠데타 공작내용을 모르는 코리 칠레 주재 미국대사의 명령은 무시하라고 구체적 공작지침을 내리고 있다.

70년 키신저가 직접 쓴 국가안보회의 결정 문건은 닉슨 대통령의 특별지시사항을 담고 있다. 닉슨은 이 문건에서 국무부·국방부·CIA·비상대책반 등의 책임자들에게 “아옌데 정권의 반미정책 수행 능력을 제한하고 권력의 공고화를 막기 위해 미국의 칠레에 대한 각종 원조와 투자를 줄이라”고 지시하고 있다. 나아가 아옌데 정권의 외교·군사적 고립을 촉진하기 위해 남미 전역의 군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라고 지시했다.

칠레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림으로써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다각도로 진행됐다. 70년 12월4일자 국무부 보고서는 그런 내용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보고서엔 당시 키신저 지시로 짜여진 여러 기관이 참여하는 특별대책반이 구성됐다고 쓰여 있다. 이 대책반에선 아옌데 정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세계은행·국제개발은행·수출입은행 등을 통한 모든 대출 및 여신 제공을 막아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방안을 수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해 10월16일 CIA 칠레지국이 워싱턴본부에 보낸 비밀전문에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레느 슈나이더 칠레 장군을 납치·살해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세자루의 45구경 기관권총과 500발의 실탄을 48시간 내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대목도 나온다. 슈나이더 장군은 실제로 며칠 뒤 칠레의 한 극우집단에 납치됐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밖에 11월18일자 CIA 전문에는 아옌데 정부 내에 비밀공작팀을 침투하려는 계획이 상세히 적혀 있다.

이런 미국의 3년간에 걸친 집요한 비밀공작 끝에 마침내 군부쿠데타의 총성이 73년 9월13일 울린다. 그리고 아옌데 정권은 피노체트 군부가 퍼붓는 폭탄과 기관총 세례에 짧은 운명을 마쳤다. 쿠데타가 성공하자 73년 10월1일 칠레 주재 미 대사관의 해군 무관은 국방부에 이런 보고서를 보낸다. “칠레 쿠데타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리고 쿠데타가 일어난 9월11일을 “우리의 디데이(D-Day)”라고 표현했다.

피노체트의 학살 정책에도 미국 눈감아

미국은 피노체트 집권 이후에도 중남미의 도미노 현상을 막기 위해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고 각종 기밀문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73년 11월16일자 국무부 기밀문건은 쿠데타 발생 뒤 19일 동안 320명의 칠레 국민이 처형된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닉슨 행정부가 피노체트 정권에 새로운 경제원조를 승인한 사실도 적고 있다. 피노체트는 이후 ‘개발독재’라는 경제재건 방식으로 한때 국민의 추앙을 받기도 했다. 인플레 억제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칠레를 오랜 가난의 질곡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했다. 피노체트는 이를 바탕으로 의회 해산과 정치행위 금지, 민주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다. 야당지도자나 반체제인사를 좌파지도자들과 함께 구속 협박 고문하고 처형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반공’이었다. 그것으로 피노체트는 미국의 ‘인권 공세’를 비켜갈 수 있었다.

아옌데 집권 당시 미 행정부는 칠레에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을까. 왜 민주적 선거절차로 탄생한 아옌데 정권을 굳이 불법적인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내몰았을까. 1970년 11월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의회제도의 바탕에서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삼아 국제적인 주목을 끌었다. 마침 60년대 말부터 싹트기 시작한 새로운 반미주의는 칠레·페루·볼리비아를 선두로 남미를 점차 뒤덮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특히 아옌데 정권은 아무런 보상 없이 칠레 내 미국기업을 국유화시킴으로써, 미국을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이 국유화 조처 이후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아옌데 정권 와해공작에 본격 나서게 된다.

당시 미 행정부의 아옌데 정권 와해공작은 두가지 측면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나는 칠레경제를 위기에 빠뜨리려는 간접적인 작전이고, 다른 하나는 군부 개입의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칠레 내 반(反)인민연합 세력을 지원하고 부추기는 것이었다. 윌리엄 콜비 미 CIA 국장은 70년대 중반 미 상원 증언에서 “1969년부터 73년 사이에 CIA는 칠레 좌익을 넘어뜨리려는 비밀활동에 800만달러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아옌데도 미국의 집요한 와해공작의 손길을 감지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는 72년 12월4일 유엔총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1970년 9월4일 총선에서 승리한 바로 그날부터 우리는 우리를 노리는 막강한 외부세력의 영향력을 피부로 느껴왔다. 그 세력들은 민중이 선거를 통해 자유롭게 선택한 정부 출범을 저지하고 또 그 새로운 정부를 호시탐탐 넘어뜨리려고 시도했다. 또 우리는 우리를 이 세계로부터 몰아내려고 시도하는 조치들을 보아왔다. 그 조치는 우리 경제를 질식시키고 우리의 주요 수출품인 구리 무역을 마비시키고자 했으며 우리 정부가 국제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게 봉쇄해버렸다.”

중산층 파업에도 막대한 자금지원

미국은 경제봉쇄 정책과 함께, 중산층을 중심으로 아옌데 인민연합 정권을 반대하는 대중 캠페인을 부추기는 데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데다 우익의 교묘한 선전에 이끌린 중산층은 아옌데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트럭 소유주와 전문 직업가, 가게주인들의 파업에 대한 재정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피노체트 체포의 적법성을 판결할 영국 대법원에 세계적인 눈길이 쏠리고 있는 지금, ‘공범자’ 미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임을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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