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빠띠스따 협상 테이블로 복귀

인터프레스 서비스 11/17

메히꼬 남부에서 사빠띠스따는 봉기 15주년을 맞아 기꺼이 정부 그리고 시민

사회와 함께 평화회담에 다시 참여할 것을 발표하였다.

평화회담이 깨진 후 약 2년만에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 Zapatista

National Liberation Army)의 지도자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일간지 ‘호르나다(La

Jornada)’지에 인터뷰를 허락했다. 이것은 2년만의 첫 독점인터뷰였다.

인터뷰는 치아파스 남부의 정글에서 있었다. 그곳은 사빠띠스따 반군이 94년

12일간의 첫 봉기 이후 휴전에 동의한 이후부터 군대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곳

이다.

마르코스는 이번 인터뷰에서 여전히 대화의 기회는 존재하며 사빠띠스따 반군

내에서 과거에 특정한 정치세력을 잘못 판단했음을 인정했다.

반면 여당인 제도혁명당 엔리끄 헤레라(Enrique Herrera, Parliamentary

Deputy)는 호르나다지를 ‘명백한 친-사빠띠스따 신문’이라고 비난했다.

민족해방군의 대표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의

치아빤(Chiapan)시에서 정부의 평화위원회 그리고 정부에 반대하는 민간단체들

과 함께 만남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대화와 공간, 조율, 협상의 타결, 정치적 제안을 위한 공간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진실하지 않다면, 우리는 총격을 받을 것이

다”라고 마르코스는 말했다.

반군 지도자 마르코스는 원주민들의 대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투쟁에 대해서

도 미묘한 문제일 것 같은 “제도혁명당”의 “분파들”을 포함하여 특정 정치세력

과 행동가들에 대해 과거에 “경솔하게” 판단했음을 인정했다.

“정치적 선언에 있어서 사람들은 미묘한 차이나 정도를 구분하지 못하고, 환

원주의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는 쉽게 볼 수 있으며 모든 사

람들이 그런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쉽다”고 그는 말한다.

독특한 이미지로 세계 각국에서 공감을 불러일으켜온 반군 지도자는 민족해방

군이 83년 11월 17일에 만들어 졌다고 말한다. 몇몇 사학자들이 정확한 날짜에

대해 동의하지 않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즈음의 시기에 그룹의 지도자가

원주민들을 규합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마르코스는 정부에 의해 철학을 전공하고 니카라과, 쿠바에서 군사훈련을 받

은 것으로 예상되는 41세의 메히꼬인인 라파엘 길렌(Rafael Guillen, 41세)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는 사빠띠스따 그룹이 지난 15년간 중요하게 깨달은 것은

현재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의 9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원주민들에게 귀를 기

울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을 선언한 94년 1월, 12일 동안 몇차례의 소규모 접전만이 있었고 사빠띠

스따민족해방군은 무장휴전에 동의했다. 정글에서 그들은 1929년 이후 제도혁명

당에 의해 통치되어온 메히꼬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되었고, 메히꼬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회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사면법에 의해 보호받으며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은 94년부터 96년까지 정부와

비정기적인 회담을 가졌다.

일치로 인해 협상은 결렬되었고 사빠띠스따는 치아파스주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군사주둔과 준군사조직에 의한 지원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원주민

의 권리에 대한 법조항에 대한 불일치로 인해 협상은 결렬되었고 사빠띠스따는

치아파스주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군사주둔과 준군사조직에 의한 지원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의 주도하에 – 그들의 대중적 지지는 최근

몇달동안 급격하게 떨어졌다 – 의회의 평화위원회와 20개 이상의 사회단체들은

각각 적십자의 지지와 보호아래 주말에 사빠띠스따반군과 만나게 될 것이다.

정부가 회담을 지지하며 전적으로 보장해줄 것이라고 말했던 첫 회담에서 국

회의원들은 평화회담의 갱신을 용이하게 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시민사회와

의 회합에서, 게릴라들은 그들의 지지자들을 재조직화하고자 할 것이다.

마르코스에 의하면, 시민사회가 제출한 제안에 기초하면서 정부에 의해 옹호

되고 있는 것과는 차별적인, 발전과 ‘민주적 이행’을 향한 경로의 구축을 위한

여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한다.

변화의 과정은 “정부와 함께 하는 것도 아니며 정부에 의해 진행되는 것도 아

닌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어떠한 정치적 희생을 치루더라도 경제적 모델을

유지하고자 하는 결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들의 무력사용을 중지한 이후, 사빠띠스따 반군은 사회적 변화를 강제하기

위해 정당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적 반대전선을 구축하는데 전력투구해 왔다. 지

금까지 운동진영은 그들이 저항의 능력을 보여주음에도 의미있는 현실을 획득하

는데 실패해 왔다.

1994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권력의 장악을 외쳤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러한 구호를 내던져버렸고 존엄성과 함께 정의를 추구할 뿐이며 권력의 행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던 그룹의 지도자는, 오늘날 게릴라 투쟁의 목표는 “평

화적인 사회적, 시민적 반란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사회적 비순응주의가 반란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말

했다.

“혁명은 여러 측면에 열려 있으며, 끊임없이 또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곳에서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은 또 다른 사회 단체들을 만날 것이다”라

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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