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시절에 입사했는데 회사에 충성할 각오는 돼 있겠지?” “예. 뭐든 하겠습니다.” “자, 그럼 속옷만 남기고 다 벗어봐.” “그건….” “못 벗겠다 이건가? 프로 정신이 부족하군. 그것도 못하겠다면 회사 나가도 돼. 하지만 이만한 월급 주는 직장 구하긴 힘들껄….”.

최근 서울 여성의전화에 접수된 김모(21·전 영업판매직원)씨의 피해 사례. 당시 어쩔 줄 몰라하다 웃옷을 벗었던 김씨는, 사장이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자 방을 뛰쳐나왔다.그것으로 1주일도 채 안된 회사 생활은 끝이 났다.

IMF 한파를 맞아 여성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싸늘하기만 하다. 정리해고 순위에서 밀리고, 최근에는 여사원 들의 불안한 고용 상태를 악용한 성폭력도 직장 내에 확대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올 상반기 직장 내 성폭력 상담 건수 는 144건. 지난해 동기의 106건에 비해 35.8%나 늘어났다. 직장 내 성폭력·폭언·구타 상담과 관련해 서울 여성의 전화에 접수된 사례 도 올 들어 92건으로, 예년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고용주, 상사, 남자 동료에 의한 성희롱의 피해자는 비서, 사무 경리직, 영업판매직 등이 대부분이다. 박사급 연구직 여성과 대학교 교직원, 대기업여사원들의 피해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여성의 전화 상담부 최미경씨는 “직장내 성폭행은 거의가 해고나 감원 등의 위협을 하면서 일어난다”며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취업 전선에 뛰 어든 여성들 가슴에 피멍만 생긴다”고 했다.

이전 같으면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직장을 옮겨볼 생각을 했겠지만 이제는 속수무책.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을 자칫 나왔다간 ‘평생실업자’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들의 불안 심리를 틈타 직장 내 성폭력이 최근 악랄함을 더해가는 것이다.

두달전 한 무역업체 사무실에 경리로 들어가게 된 이모(26)씨.

실직한 아버지와 중학생인 두 동생, 그리고 어머니에게 그녀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하지만 60만원이 채 안되는 월급을 이번 달부 턴 못받게 됐다. “너라도 벌어야 하지 않냐”는 어머니 앞에, 이씨는 눈물방울만 떨어뜨렸다.

이유인 즉, 그간 사장이 결재 서류만 들고 가면 “뽀뽀를 해달라”, “아버지로 생각하고 어깨를 주물러달라”고 추근댔던 것. 당황스러웠 지만 회사를 다녀 집안을 책임져야 했기에 몇 번은 참고 응했다. 한 데 “나랑 여행 다니면 용돈 두둑히 줄께” 하는 사장 말에 더이상 참 을 수없었다.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결국 사표를 내는 것 밖 에 없었다.

성적 접근을 거부한 여직원에겐 ‘업무태도 불량’, ‘상사 불복종’, ‘인간 관계 좋지 않음’을 들어 업무상 불이익을 주거나 해고나 사직 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보다 한술 더 떠 성폭력 문제를 공식 거론한 여성에게 “살아남으려고 육체적으로 먼저 접근하더니 이제 와 덮어 씌운다”며 ‘꽃뱀’으로 모는 사람들까지 있다.

여기에는 외부인들까지 가세하는 상황.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한 주부는 ‘가입서를 들고 오라’는 고객 전화를 밤10시 넘어 받았다.내 키지 않았지만 실적 올릴 생각에 사무실로 갔다가 결국 성추행을 당 했다. 실직한 남편에게 얘기도 못하고 끙끙 앓다 상담소를 찾은 것 이다.

‘업무상 위계에 의한 강제추행’은 성폭력 특별법에 근거해 처벌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처벌 사항도 없고 피해자들도 거의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인권기구 등이 생기면 피해 여성들이 보호받을 영역이 넓 어질 것”이라며 “일단 증거물이나 주변 증언을 확보하고 일지로 써,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IMF시대 직장 성폭력 예방 및 위기 상담 전 화'(02-573-1888)를 개설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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