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와 스페인정부가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3)의 신병처리문제를 둘러싸고 어제의 敵(적)이 벗이 되고, 벗은 바뀌어 적이 된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고 있다.피노체트 독재정권하에서 투옥,추방 등의 고통을 겪었던 칠레의 기민·사회당 연립정부는 그의 본국송환을 위해 뛰고 있고,칠레의 과거 군부정권과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던 스페인의 우파정부는 피노체트를 자국 법정에 세워야 하는 바뀐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에두아르도 프레이 칠레대통령은 지난 25일 영국 상원 5인 재판부가 피노체트의 면책특권 불인정 판결을 내린 직후 호세 마리아 인술사 외무장관을 영국으로 급파했다.인술사 장관은 27일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과의 면담에서 피노체트의 석방을 정식 요구했으며,곧 스페인도 방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같은 공식적인 외교노력과 달리 프레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리들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고 있다고 외국 언론들은 전했다.인술사 장관은 2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독재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의 주권을 보호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그러나 피노체트 정권 때 14년동안 망명생활을 하며 숱한 친지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는 것을 경험했던 그는 사석에서 “이런 일이 행복하지 않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94년 파트리시오 아일윈 대통령의 뒤를 이어 취임한 프레이 대통령은 70년 아옌데 정권이 군부쿠데타로 전복된 후 잠시 임시정권을 이끌었던 동명 대통령의 아들.그는 95년 마누엘 콘트레라스 전 중앙정보부장 등 군정 관계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내는 등 과거청산작업을 의욕적으로 시도했으나 군부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쳐 갈등을 겪어 왔다.영국 더 타임스지는 27일 “프레이 대통령이 피노체트 석방노력을 조건으로 과거청산작업을 위한 우파의 협력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산티아고 주재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반면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 스페인 총리는 피노체트는 물론 칠레 우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따라서 “법의 심판에 맡기겠다”는 공식적 입장과 달리 속으로는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이 피노체트를 인도적 이유로 석방하길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아즈나르 총리가 피노체트와 관련된 정치적 딜레마에서 의외로 쉽게 빠져나갈 길, 즉 인도주의의 명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단히 기뻐했다”고 전했다.
<吳愛里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