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누가 뭐래도 사상의 자유다. 따라서 인간의 생각을 제약하는 세력이나 집단은 자유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월간 조선』 11월호로 시작된 조선일보사 발행매체의 최장집 교수 관련 보도는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명백히 배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첫 보도인 『월간 조선』의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기사에서는 ‘역사적 결단’이라는 제목부터가 대표적인 왜곡사례로 지적 받았다. 즉 논문 속에서 ‘오판’이라는 표현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굳이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여 논문내용을 왜곡한 것이다. 이러한 왜곡기사를 토대로 쓰여진 후속기사들은 억지에 가까울 정도다.
후속기사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부필자 칼럼이나 독자투고 역시 조선일보의 왜곡 보도를 기정 사실화한 상태에서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점만 보아도 왜곡기사가 여론을 얼마나 호도할 수 있는지 그 위험성을 알 수 있다. 「’최장집 건국사관’규명해야」 (10월 26일자)라는 사설도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언련 신문모니터 팀은 이 사설을 ‘이 달의 최악사설’로 선정하였다.
이 사설은 ‘수정주의 사관’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비판으로 시작하였다. 수정주의 사관에 대한 조선일보의 해석은 “분단의 책임도 미국과 남쪽 우익에만 있으며 북쪽은 민족통일 세력이고 남쪽은 반민족적 분단세력이라고 규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수정주의 역사관을 갖고 잇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존재 이유를 근원적으로 부정”한다고 해석하였다.
수정주의사관에 대한 이 사설의 해석을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수정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 최 교수 논문에 대한 비판적 해석으로 교묘하게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물론 “최장집씨가 딱히 그런 수정주의자인지의 여부를 우리가 여기서 단정할 생각은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최 교수를 수정주의자로 판단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최장집씨의 용어 사용, 개념규정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는 현저히 배치되는 사례가 있음을 발견한다”는 부분이 그러하다. 조선일보는 그 근거로 “6.25를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한 것부터가 그러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부분은 ‘역사적 결단’과 더불어 대표적인 왜곡사례로 비판받았다. 최 교수는 논문에서 “첫 번째 시기에서의 전쟁은 전쟁을 유발한 북한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었던…”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누가 보아도 북한측에서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했다는 것을 인용한 것이지, 최 교수 스스로 그렇게 규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사설은 “수정주의와 유사한 시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대학 연구자로만 남아 있는 한에는 『월간조선』이 그토록 정면의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리라 본다”며 “그는 다름 아닌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이며…”라고 ‘사상검증’ 사유를 밝혔다.
이 주장은 모순을 안고 있다. 조선일보가 문제삼은 최 교수의 논문은 그가 대학연구자로 있을 때 작성한 것이다. 최 교수가 공직에 등용되었다고 해서 논문을 수정해야 된다는 주장이 아닌 바에야 오히려 그를 공직자로 등용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월간 조선』은 “북한의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인했던 공산세력의 움직임을 민중항쟁으로 보는 그의 시각은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관과도 정면 배치된다”며 최 교수와 김 대통령을 차별화 하였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공인 사상검증의 자유는 93년 한완상 부총리에 이은 ‘진보적 공직인사 죽이기’를 위한 궤변일 따름이다.
“학문의 자유가 있으면 언론의 자유도 똑같이 있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차라리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말은 학문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공존한다는 뜻인데, 현재 조선일보가 논문의 텍스트까지 왜곡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그것을 벗어나는 방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언론사도 ‘사실로부터 자유’를 누리면서 기사를 작성할 권리는 없다는 점을 조선일보는 각인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가 최근 부쩍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계속되는 여론의 화살을 비켜가기 위한 ‘쟁점 바꾸기’일 뿐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조선일보가 시작한 것이다. 세간의 비판은 조선일보(『월간 조선』 포함) 보도에 대한 반응이지, 언론의 자유 그 자체를 침해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마침 지난 11일 서울지법은 최장집 교수 사상시비와 관련, 조선일보사에 대해 『월간 조선』 11월호 발행, 판매, 배포 금지 판결을 내렸다. 조선일보사의 최 교수 관련 보도가 시대착오적인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해 온 민언련 신문모니터 팀은 이 판결을 환영한다. 이번 최장집 교수의 사상을 둘러싼 논란은 권력화 한 언론의 횡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이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사상검증으로 따지자면 남북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현 시국에서 냉전의식을 조장하는 조선일보야 말로 사상검증의 대상이 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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