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법원으로부터도 따돌림
한국 사회에서 〈조선일보〉만큼 욕을 많이 먹는 신문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선일보>는 참 오래도록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 게다가 이 신문만큼 북한이 맹렬히 비난하는 한국 신문도 없다. 참으로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이 신문의 ‘장수 비결’인지도 모른다. 광주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고 전두환을 ‘세종대왕이래 최대의 성군’이라고 칭송했던 이 신문은 요즘 무덤 속의 박정희 만세를 외치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같은 보도 행태에 제동을 거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85년 광주에서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왜곡 보도했다며 상당 기간 〈조선일보〉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의 저술을 문제 삼은 〈월간 조선〉 11월호 기사가 불러일으킨 ‘색깔 시비’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급·세력들 간의 이해 갈등으로 환치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이번 사건을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른 언론 매체 사이에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게릴라 매체’인 PC 통신은 말할 것도 없고 월간지와 단행본, 그리고 다른 신문과 방송까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사상 검증)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칼부림 끝에 살인에까지 이른 ‘신문 전쟁’ 같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면, 독자에게 낯익은 풍경은 ‘<조선일보> 대 <한겨레>만의 전쟁’이었다. 특히 색깔 논쟁에 관한 한 한국 언론은 늘 ‘<한겨레> 대 기타 여러 신문’의 양자 대결 구도를 유지했다. 거기에 〈말> 같은 진보적 월간지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힘을 실었지만, 견고한 보수 언론 동업자들의‘침묵의 카르텔’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동업자’ 신문·방송들도 비판 대열 가세
그런데 한국 언론의 고질인 동업자 봐주기와 침묵의 카르텔에 금이 가는 조짐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법원마저 〈조선일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 신문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스스로 ‘ <조선일보> 죽이기’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일보〉가 시도한 ‘최장집 죽이기’가 역으로 <조선일보> 죽이기를 부른 셈이다.
신문·방송의 경우, 〈한겨레〉는 예외로 치더라도 MBC 텔레비전이 9시 뉴스데스크에서 <조선일보>측을 비판적으로 보도했으며, 특히 〈대한매일〉(옛〈서울신문〉)의 보도는 극히 비판적이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11월14일자 사설에서 ‘최장집 문제에 대한 〈대한매일〉의 그런 의도적인 한쪽 편들기는 정부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공세를 취했다. 그러자 〈대한매일〉은 ‘조선일보사에 답한다’라는 제목의 11월16일자사설에서 정부의 출자가 있었다고 정부 대변지라면 〈조선일보〉는 방씨 일가가 출자한 신문이라 해서 방씨 대변 신문이란 말인가 묻고 싶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는데, 줄기차게 언론사간의 싸움에 씨를 뿌린 사람은 강준만 교수(전북대·언론학)이다. 공정성과 형평성을 무기로 비평 또는 메타 비평을 전공으로 삼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선보인 강교수는 일찍이〈조선일보〉에 선전 포고를 한 ‘ <조선일보> 죽이기’의 창발자이다 (강교수 본인은 이를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운동’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창간한 〈인물과 사상〉 단행본 시리즈에서 ‘언론 권력도 교체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선일보> 죽이기를 끊임없이 시도해 온 강교수는 이렇게 호소한다.
‘<조선일보> 죽이기’ 소매 걷어붙인 두 논객
‘모든 시민운동 단체들에게 호소한다. 〈조선일보〉의 오만방자한 작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 달라. 입만 벙긋하면 ‘민중’이니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조선일보〉에 글을 싣지 못해 안달하는 사이비 진보적 지식 장사꾼들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양심적인 시민운동 단체들까지 이 문제에 침묵하면 정말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 언론사들간 갈등이 벌어질 때엔 제발 양비론도 좀 버려 달라.…언론사들끼리 싸움이 붙어야 언론사들의 비리가 파헤쳐진다. 그런 기회가 아니면 언론사들의 비리가 파헤쳐질 길이 없다. 그런데 왜 싸움을 말린단 말인가? 오히려 싸움을 더 하라고 부추겨야 한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편이든 KBS 편이든 그 누구 편이든 관계없다. 이 일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편향성, 아니 그 밖의 그 어떤 기준에 의해서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비판의 면책 특권을 누리는 성역으로 군림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 기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문제인 것이다.’(‘한국 국민은 <조선일보>에 속고 있다’〈인물과 사상〉 제7권)
강교수의 전공이 ‘텍스트 인용’이라면 젊은 문화 평론가 진중권씨의 주특기는‘텍스트 해체’이다. 〈인물과 사상〉에 연재하고 있는 ‘극우 멘탈리티 연구’시리즈에서 〈조선일보〉와 그 논객들이 극우 파시스트임을 논증한 바 있는 진씨는 최근 본격적으로 <조선일보> 죽이기를 위한 두 권짜리 책을 냈다. 〈월간 조선〉 조갑제 부국장의 책제목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개마고원)라는 책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이 책은 지독하게 풍자적인 글쓰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서는, 남들을 비판만 했지 자신들이 비판받는 적은 별로 없는 기자들이 주로 풍자 대상이다. 어떤 보복을 당하려고 감히 기자들을 씹어? 이 또한 한국적 현실에서는 예외적인 현상이다.
‘<월간 조선>의 검증? 당신들이 뭔데 국민들 이마에 도장을 찍겠다는 거야? 건방지게. 그 도장 당신들 마빡에나 찍고 다녀.… 패션은 자유니까. 하지만 남한테 강요하지 마. 나도 당신들 사상 정말 맘에 안 들어. 구역질 나. 하지만 꾹 참잖아. 사상 검증하자고 얘기 안해. 그게 민주주의야. 근데 당신들은 왜 그러는 거야? 왜 뎅캉 부려. 정말 성격도 이상하네. … 최교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격이 없는 완전한 좌파? 헤이, 당나라당 의원 나리들. 아니란 거 알잖아. 왜 거짓말 해? 뭘 얻고 싶어? 그 분 자타가 공인하는 리버럴리스트야. 잡으려면 차라리 나 같은 사람을 잡아. 정말 좌파를. 엉뚱한 사람 잡지 말고. 나 죄책감 느끼잖아. 근데 좌파는 왜 잡아야 돼? 유럽연합 15개국 중 지금 10개국이 좌파 정권이야. 여기 독일도 좌파가 정권 잡았어. 아무 문제없잖아. 근데 왜 우리 나라 좌파는 캥거루야? 왜 사냥해? 조갑제. 독일 통일이 비스마르크 위인전 때문이라고? 웃기지 마.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Ostpolitik) 덕분이야.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야. 근데 그 분, 좌파야. 좌파 당수야. 통일했잖아.’
〈조선일보〉로서 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가장 보수적인 법원까지 <조선일보>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교수가 제기한 〈월간 조선〉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을 심리한 서울 지법 민사 합의 51부 (신영철 부장판사)는 11월11일 〈월간 조선〉이 최교수의 논문을 왜곡했으며 좌파라는 비판 자체가 분단 현실에서 인격권 훼손이라는 요지로 최교수의 손을 들어 준 바 있다. 그런데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조선일보〉가 법원의 결정문에 대해서조차 ‘악의적인 보도’를 계속하자 이 사건의 주심 판사(박성호 판사)가 이 신문을‘훈계’하는 글을 법원 내부 컴퓨터 통신에까지 올린 것이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에 비추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주심 판사가 의견을 밝힌 것 또한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다. 박판사는 이 예외적인 일을 저지른 이유를 PC통신에 이렇게 밝혔다.‘원래 이 사건은 〈조선일보〉가 최장집 교수의 논문 일부분만을 확대·왜곡 인용하여 비롯된 것인데, 〈조선일보〉는 이 사건 결정문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재판부의 결정을 비난하고 있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또 재판부의 결정이 ‘미래의 논쟁까지도 일절 금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며‘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이제 최장집 대 <조선일보>의 차원을 넘어 언론 자유 본질의 문제로 전환됐다’라고 주장하는 〈조선일보〉(11월13일자 사설)에 대해 박판사는 이렇게 반박하고 있다. ‘다만, 위 결정에서는 위법하다고 판단된 일부 문제된 표현이나 주장을 향후 금지시키는 것일 뿐, 〈조선일보〉의 주장과 같이 최장집과 관련된 일체의 주장을 금지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박판사는 사실상 ‘<조선일보〉 바보 아냐? 아니면 사오정인가?’ 라고 반문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조선일보〉는 박판사가 우려하듯 ‘도대체 결정문 상의 표현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 오해의 소지가 없는 데도’ 결정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나 사오정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왕따’를 자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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