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과 더불어 금세기에 가장 성공한 전자통신 매체로는 단연코 전화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나 웬만한 선진국의 경우, 전화는 대부분의 가정에 보급돼 현대인의 생활 필수품이 됐다. 전화가 이렇듯 성공적으로 보급된 이면에는 ‘보편적 서비스’라는 통신 정책이 담당한 몫이 결코 적지 않다. 보편적 서비스는 말 그대로 ‘어느 지역, 어느 가정에서나 (전화)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의 결과 전통적으로 시내전화 가격은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유지돼 왔다. 손해가 나는 부분은 장거리전화(시외·국제전화) 가격을 원가보다 높게 책정해 메워 왔다.
보편적 서비스 정책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전화)네트워크의 가치는 가입자수가 늘어날수록 커지는 네트워크의 속성에서 출발한다. 즉, 기업이 비용을 보조하더라도 가입자수가 늘면 네트워크의 가치가 커질 것이므로 크게 보면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화가 갖는 생활 필수품적인 성격이다. 전화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지에 있거나 소득이 낮은 가정에서도 이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차원에서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신기술과 시장환경의 변화는 이 보조에 의한 보편적 서비스 방법을 위협해 왔다. 통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업경영과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자, 기업들이 자체 통신망을 확보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그래서 최근 미국은 기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보조에 의한 방법을 지양하고, 새로운 ‘기금’에 의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방법에 의하면 보조의 방편이 되었던 ‘접속료’를 원가 수준으로 인하하는 대신, 장거리 사업자는 전화 매출액의 약 4∼5%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편적 서비스 기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거리 사업자들은 이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별도의 항목으로 부과하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기금은 앞으로 저소득 가정의 전화 설치비용과 요금보조로 사용될 예정이다.
당초 미국 AT&T가 독점유지를 위해 고안한 보편적 서비스 정책은 몇가지 문제점이 있음에도 벽지와 저소득층에 전화를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동안 시장원리를 앞세운 통신시장의 급격한 환경변화로 지금까지 보편적 서비스 정책이 지향해 왔던 큰 원칙이 위협받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행한 조사·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전화보급률은 96%이나, 연간소득이 1만2천달러 이하로 여성이 가장인 가정의 경우는 50%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간소득이 1만2천달러 이하인 가정에서 지불할 수 있는 적절한 요금은 0.7% 정도인 월 7달러(약 9500원)이고, 전화요금이 이보다 비쌀 경우 전화를 포기하는 경우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현재 월평균 시내전화요금이 19달러(약 2만5천원)이므로 별도의 대책이 없다면 저소득층의 전화보급률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새로운 보편적 서비스 기금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내전화요금은 3분 한통화 기준으로 45원이고 가입자당 월평균 사용료가 9500원(약 7달러) 정도다. 우리의 연간소득이 7천달러에 못 미치니 약 1.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국내엔 가구당 통계가 없어 정확한 비교는 어려우나 비단 IMF가 아니라도 저소득층에 현재 수준의 전화요금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별도의 정책적인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초고속통신망과 인터넷 등 첨단 정보통신서비스가 화두가 되고 있는 이때, 역설적이게도 정작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도 같은 전화사용이 위협을 받고 있다.
유현오/ 미시간주립대학교 텔레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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