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사진이 포르노입니까?”

“이승희 홈페이지가 유죄라니…. 작은 일 같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인터넷 사이트 ‘이승희 홈페이지가 유죄라니…’(210.113.6.129/~sbroh/sunghilee/main.html)에 떠올라 있는 글들이다. 이 사이트를 만든 노상범(33)씨는 이달 중순께 열릴 고등법원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96년 8월 누드스타 이승희씨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던 그는 그 후 체포, 조사, 길고 긴 재판 과정을 겪어야 했다. 결국 지난 9월29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벌금 2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지난 10월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처음에는 ‘그냥 벌금을 내고 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포르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계기로 삼고 싶었습니다.” 노씨는 패소한다면 대법원, 헌법재판소까지도 이 사건을 끌고 갈 생각이다.

마광수, 장정일씨의 출판 음란물 논쟁에 이어 노씨의 사례는 국내 인터넷사이트 음란물 논쟁의 선두주자가 될 법하다. 벌써 이 사이트에는 ‘한국웹마스터클럽’ 등의 지지 성명서가 올라와 있고, 노씨의 재판을 후원하는 성금까지 답지하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포르노 사이트의 합법성 인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최근들어 공공연하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의 음란성을 둘러싼 논쟁이 국내에서도 본격 가동된 것이다.

지난달 27일 열렸던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 ‘사이버 포르노그라피에 관한 법적 통제의 문제점’도 논쟁의 화두를 제시했다. 홍익대 법학과 황승흠 강사는 “인터넷상의 음란 사이트 처벌 조항으로 볼 수 있는 현행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 ‘전기통신역무이용 음란죄’ 규정은 지나치게 모호해, 국민의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또한 ‘음란’에 대한 개념규정이 성인과 청소년에게 다르게 적용되지 않아, 성인들이 은밀하게 즐길 권리까지 침해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민주화와 진보적 통신을 위한 연대모임’이 오는 10일 펴낼 〈98년 인터넷 검열백서〉도 인터넷 포르노 사전검열의 문제점을 집중 다룰 예정이다.

장여경 대표는 “인터넷 포르노에 대한 검열은 다양한 정치적 주장에 대한 검열과 같은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성에 대한 각종 표현은 국가 차원에서 통제할 것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터넷 포르노의 문제를 ‘표현의 자유’ 시각에서 접근하면서 ‘법적 규제보다 자율 규제’를 촉구하는 공통점을 갖는다. 외국의 인터넷 포르노 논쟁에서는 일찍부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지만, 성 논의가 자유롭지 못했던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이런 주장이 일면 설득력을 갖는 것은 포르노성 인터넷 사이트들에 대한 규제와 차단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최근 등장해 논란을 일으킨 ‘한글 섹스사이트 총집합’ 사이트는 엄연히 국내법에 저촉된다. 하지만 외국 서버에 기반을 두고 제작돼 국내법으로 처벌할 뾰족한 수가 없다. 수없이 쏟아졌던 이승희씨 관련 인터넷 사이트 제작자들 중 노씨와 강구일(97년1월)씨만 기소된 것도 대부분 국내 서버에서 제작됐다는 점 때문이었다.

국내 인터넷상의 음란물 정보 심의 기능을 맡고 있는 정보통신부에 딸린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이영규 사무국장도 “하루에 전세계적으로 수천개씩 쏟아져 나오는 포르노성 사이트들을 일일이 모니터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국내법으로 처벌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면서 사용자의 자율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개개인에게 맡겨지는 자율규제가 가능한 것일까? 살인이나 아동강간·성폭행을 미화하는 포르노 사이트까지도 인정해야 하는가? 청소년 보호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봉착하면 답변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97년 위헌판결을 받았던 미국의 정보품위법이 규제범위를 축소하면서도 ‘인터넷 포르노로부터의 어린이 보호’ 성격을 담은 법안 ‘CDA2’로 변형돼 지난 10월 하원을 통과한 것도 이런 고민의 반영이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 하더라도, 어린이·청소년 보호 차원에서의 접근 차단장치 필요성을 쉽게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 등이 주최해 6일 열린 ‘성인 정보의 법적 규제와 대책’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에 나섰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유이선 교수도 “인터넷 성인정보에 대한 자율규제와 공적인 규제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정보품위법 제정과정을 둘러싸고 통신·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청소년들을 위한 음란물 정보차단 프로그램들을 옵션으로 제공하기 시작한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황상재 교수는 “우리나라 인터넷 음란물은 성인들을 위한 ‘표현의 자유’도, 청소년들을 위한 ‘보호장치’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최근 제기되는 인터넷 포르노의 ‘표현의 자유’ 권리를 찾기 위한 길은 아직 험하다. 김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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