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옛날 로마제국의 위세를 간결하면서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정보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가는 오늘날, 정보의 길에 해당되는 통신 네트워크는 어디로 통할까. 특히 국경을 뛰어 넘는 전지구적(글로벌) 매체로 칭송받는 인터넷은 어디로 통하는 것일까.

70년대와 80년대에 유엔 산하기구인 유네스코를 기반으로 제3세계 국가들이 ‘신정보질서운동’을 활발하게 주도한 일이 있다. ‘균형잡힌 정보의 흐름’을 표어로 내건 이 운동은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의 일방적인 정보흐름에 대한 개선을 시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제국주의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한 국가들이 진정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립이나 경제적 독립 이외에도 정보를 위주로 한 문화적 독립이 꼭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 <로이터> 등 서구의 통신사들의 잣대로 일방적으로 선택되고 유포되는 뉴스, 미국에 대한 환상이 담긴 할리우드 영화, 상업적으로 하향 평준화된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팝 음악 등이 비판의 주요 대상이었다.
그 이론적 근거로 제기되던 것이 ‘문화제국주의’라는 것이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정보 등 문화상품은 일반상품과는 달리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은 그 상품에 담겨 있는 가치들(주로 서구 백인우월주의, 소비주의, 쾌락주의 등)에 의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신정보질서운동’은 새로운 정보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의 능력 부재와 선진국들의 방해로 힘을 잃었다. 그러나 ‘문화제국주의’는 이론적인 결함에도, 대중매체의 통제를 바라는 권위주의 정권과 시장확보를 원하는 민족자본가들에 의해 국내 문화상품시장을 방어하는 이론적 도구로 쓰여왔다.
최근에 인터넷을 둘러싸고 다시 문화제국주의 논쟁이 불붙고 있다. 한편에선 인터넷이 지금까지 문제로 지적되던 불균형적인 정보의 흐름과 그에 따른 ‘문화종속’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방의 테크놀로지’로 치켜세워지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인터넷은 탈중심적이다. 영화·텔레비전/라디오 프로그램·뉴스 등 기존 대중문화상품 생산지가 ‘중심부’(선진국)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사이버공간인 인터넷은 그런 지리적 한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은 정보와 문화상품의 생산을 쉽게 한다고 말한다. 소수의 대자본에 의해 통제되게 마련인 기존 대중매체의 한계를 극복해 누구라도 적은 비용으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의 사용자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므로, 정보의 내용에 의해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꼽는다.
다른 한편에선 인터넷이야말로 새로운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인터넷은 전혀 ‘전지구적’ 매체가 아니라 지극히 ‘미국 중심적인’ 매체이다. 모든 웹사이트의 80% 이상이 영어로 씌여 있으며, 약 90%의 통신량이 미국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 정보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속기간(백본)망의 대부분이 미국에 있어 어느 나라든지 이웃 나라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려 해도 미국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경제, 문화적 이해를 넘어 정치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를 제재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관련 소프트웨어산업 또한 미국 회사들이 지배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떠오르는 매체 인터넷이 불균형적인 정보흐름과 그에 따른 문화종속을 해결할 수 있는 ‘해방의 테크놀로지’가 될지, 아니면 정보화사회에서 새로운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인터넷과 관련한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하며 이 현상은 단시일 내에 해소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유현오/ 미시간주립대학교 텔레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 yoo@tc.ms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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