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의문사 시비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 사건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은 무엇보다 모든 군내 의문사 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뤄지게 됐다는 점이다. 어쩌면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진실을 지키기 위해, 혹은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기까지 하는 것,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한 행동이다. 진실을 향한 이런 투쟁은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진실을 짓밟고 덮으려는 다른 동료 인간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빈번히 방해받는다. 인간은 스스로 진실의 적이기도 한 것이다. 그 틈새에서 실존적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 보통사람의 삶이 아닐까.

서울 충정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성태전'(24일까지, 02-721-7772)은 바로 이 진실과 폭력 사이에 끼인 삶, 그리고 그만큼 큰 진폭으로 흔들리는 우리의 양심을 조명하고 있다. 커다란 도자기 그릇에 물을 담고 밑으로부터 공기방울이 올라오도록 만든 <정지된 시간―해빙기>. 그 그릇들 안에는 해외입양아들의 사진 기록이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물을 담은 반구형 아크릴 통에 사람 얼굴 모양의 테라코타를 넣어 벽에 십자가 꼴로 설치한 <정지된 시간―교차점> 역시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죽은 이의 얼굴 같은 그 테라코타들의 코에서 규칙적으로 공기방울이 올라오는 것이다. 무언가 호흡이 이뤄지고 있는 듯하나 표정과 시간, 공간은 얼어붙어 있는 형상들. 그것은 하나의 사물처럼 마구 던져지고 다뤄지고 폐기된 인간의 실존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출품작 가운데는 <푸른 강―깊은 잠>처럼 실제 산 사람의 몸을 이용해 거푸집을 만들어(라이프 캐스팅) 흙으로 그 형태를 떠낸 작품도 있다. 흙이 말라가는 과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대로 드러나는 이 작품은 그만큼 영혼이 떠났을 때 인간이 얼마나 차가운 사물에 불과한 것인지 냉정하게 돌아본다. 이런 몸뚱아리들을 흙을 깐 2층 전시장 바닥에 놓고, 2천개가 넘는 사람의 얼굴―함부로 다뤄져 찌그러진―을 사면 벽에 둘러 함께 전시하고 있는 작품이 <일식>이다. 집단적인 희생제를 드리는 듯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진실과 관련된 실존적 고뇌가 개인 차원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구조로 확장되는 모습을 본다. 진실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 것인가를 새삼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실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야 하는 것은 저 차가워진 시신들을 더 이상 욕되게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을 위해 내가 투쟁하는 것은 저 천국의 면류관이 탐나서가 아니라, 저렇듯 버려진 동료 인간의 차가운 몸뚱아리들을 더 이상 앉아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와 80년대를 나름의 고통 속에서 겪은 작가의 한 시대를 위한 진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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