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습이 종료됐다. 나흘에 걸쳐 공습이 계속되는 동안 러시아가 보여준 모습은 종이호랑이였다.
공습이 시작되자 러시아는 중국, 프랑스 등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영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이나 사전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공습을 감행했다며 전례없이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이번 공습에 분노를 표시했으며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 역시 앨 고어 미국 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를 강력히 비난했다.
공습에 대한 항의 표시로 18일에는 러시아 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영국 주재대사도 소환했으며 전 해군과 공군의 전투태세도격상됐다. 국방부와 참모본부는 전략 핵무기들에도 이같은 조치가 발효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날로 예정됐던 이고르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러시아 상설위원회 참석이 취소됐으며 러시아-나토 협력관계 자체를 재고할 수도 있다는 국방부 공식자료가 배포됐다.
레오니드 이바쇼프 국방부 대외군사협력국장(육군 대장)은
러시아의 의견이 또다시 무시당한다면 러시아는 “군사정책을 변경할 수밖에 없으며 약소국 강압정책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선봉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습 중단이 러시아의 이같은 항의 때문에 결정된 것은 아니다.
프리마코프 총리가 유엔무기사찰단장의 보고서가 잘못됐기
때문에 버틀러 단장이 자격을 상실했다고 비난하자 매들린 울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이 “버틀러를 옹호하기 위해서라도 싸울 것”이라고 응수한 것만 봐도 그렇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와 대통령 행정실까지 나서 이번 공습으로 하원의 제2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 비준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울브라이트 장관은 이 협정이 오히려 러시아에 득이 될 것이므로 러시아가 이같은 방침을 재고해야할 것이라고 은근히 위협하기도 했다.
결국 러시아는 무력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셈이지만 결과적으로 무시당했다.
러시아가 이처럼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무엇보다 러시아가 현재 미국으로 대표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며 미국 또한 이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러시아는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99년 IMF로부터 최소 50억달러의 지원을 얻어내야 할 형편이며 이 액수는 이미 99년 예산안에도 편성돼 있을 정도로 급박한 부분이다.
IMF 대표단은 다음달 차관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따라서 러시아와 미국 양측의 입장차가 노골적으로 대립된
이번 공습 이후 양국간 화해작업도 IMF를 매개로 이뤄질 것이란 점도 분명해 보인다.
러시아 경제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도 바로 공습을 전후한 러시아 군부의 상황이다.
공습을 전후해 러시아 국방부에 공습 사실을 예보할 수 있는옛소련 시절의 긴급위성운용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은 데다, 유사시 발사할 수 있는 추가 위성이나 위성발사체도 없었다고 <코메르산트 데일리>지는 전하고 있다.
과거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주변의 다른 첩보위성들이 해당 지역에 정보력을 집결하던 긴급위성운용시스템의 가동이 재정난으로 중단됐으며 급할 경우 발사할 수 있는 국방부 소유의 대기 첩보위성 역시 재정난으로 고갈됐다는 얘기다.
신문은 이와 함께 만성 예산부족으로 미사일 부대나 전투기, 함정 등이 단 며칠밖에 전시태세를 유지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만일 이번 사태가 오랫동안 지속됐다면 그마나 남아 있던 예산마저 바닥이 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스크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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