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가 다시 입에 오른다. 1년10개월 전 복제논란이 영국에서 발원했다면 이번에는 서울발이다.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가 이 소식을 보도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의 논조는 “실험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간 배아의 복제를 시도했음이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세계에서 처음이다. 두번째는 이 기술이 이제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연구자들은 한국 실험의 과학적 가치에 의문을 표시하지만 인간복제 (연구)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믿는다”고 보도했다. 복제인간의 탄생에는 윤리적 장벽밖에 남지 않은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복제양 돌리를 만든 로슬린 연구소의 해리 그리핀 박사는 인간복제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외과수술을 통해 암양들로부터 얻은 난자는 400개였다. 이 가운데 핵이식에 성공한 난자는 277개였고 이 가운데 하나만이 온전하게 태어났다. 이런 확률이라면 한 사람의 복제인간을 탄생시키려면 여성 40명을 동원해 난자를 얻어야 한다. 게다가 사람의 임신 성공률은 양보다 3~10배나 낮다. 무사히 태어났더라도 암이나 기형 발생의 위험에 대해 아직 아는 게 없다.

물론 기술개발 속도는 빠르다. 핵이식한 난자가 배아로 자라날 확률은 돌리의 0.36%에서 미국 12%, 일본 23~49%로 높아졌다. 로슬린연구소도 5년쯤이면 복제동물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기술적 타당성과 안전성 확인은 부차적인 요건이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복제기술의 의학적·산업적 활용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맛 좋은 고기나 유용 단백질이 든 우유를 분비하는 가축을 대량 생산하고, 인체에 거부반응이 없는 이식용 콩팥이나 심장을 지닌 소나 돼지를 만들 수 있다. 그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자기 세포를 복제해 만든 간(幹)세포를 이용해 세포치료를 하면 백혈병과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고 장차는 이식용 조직과 장기도 만들 수 있다. 모두 엄청난 이익을 보장해주는 기술들이다.

기업의 강렬한 이윤추구에 맞서 어떻게 대중의 커가는 불안을 추스를 것인가. 그 타협책으로 영국 인간유전학자문위원회(HGAC)는 이달초 인간복제에 관한 대정부 권고안을 채택했다. 내용은 한 마디로 `의학용 복제는 예스, 생식용 복제는 노’이다. 우리나라 국회가 추진중인 법안이나 경희의료원 연구진의 발상도 비슷하다. 그러나 의학용과 생식용의 행복한 구분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복제기술의 아킬레스 힘줄은 배아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자라날 수도 있는 싹을 수단으로 삼는다. 수많은 배아가 치료용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죽어갈’ 것이다. 윤리학자들은 이 지점에서, 인간생명 존엄성의 한 귀퉁이가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배아를 수단으로 보기 시작하면, 유전병이나 암의 형질을 가진 배아를 솎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다면 당뇨병이나 우울증 인자를 가진 배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오직 완전한 인간만이 태어날 수 있는, 우생학이 판치는 사회는 더이상 공상과학에 머물지 않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인간복제는 너무나 당연한 `현실적’ 선택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특히 생명공학의 장기적 부작용에 대한 대중의 인식수준이 낮고 규제가 허술한 나라에서 생명공학은 쉽사리 오용되기 마련이다. 최초의 복제인간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괴짜 과학자 리처드 시드가 왜 일본에 복제 클리닉을 열겠다고 했겠는가.

지난 70년대 유전자조작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과학자들은 규제지침이 나올 때까지 연구를 중단하자는 역사적인 `아실로마 선언’을 발표했다. 각국에서 규제법이 마련중이고 대중의 불안이 높아지는 요즘, 당분간 인간복제 연구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는 과학계 일각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잠깐 숨을 돌리고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조홍섭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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