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경제청문회 부담덜자” 대국민 사과와 빅딜 시도… YS도 갈등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일 것인가.
IMF 환란 규명을 위한 경제청문회 개최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문제가 돌출하고 있는 것이다.
“입장 밝혀달라” 건의 말없이 경청
지난 12월17일 상도동을 찾았던 신상우 국회부의장은 경제청문회 문제와 관련한 김 전 대통령의 최근 심경을 전했다. 신 부의장은 이날 김 전 대통령에게 청문회를 앞두고 IMF 환란 책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다고 한다. 평소라면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했을 YS는 심각한 표정으로 신 부의장의 건의를 경청했다는 것이다.
신 부의장은 “경제청문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김 전 대통령의 생각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 같다”면서도 “지금까지 검찰 수사에 대한 서면사과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국민 입장표명 건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이 신 부의장과의 만남에서 대국민사과 건의를 수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상도동이 이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는 정황은 감지된다.
사실 김 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문제는 이미 여권 일각에서도 제기됐던 터다. 국민회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경제청문회를 개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익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 여권은 연말연초까지 경제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실업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경제청문회를 통해 현 정권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는 예상 밖의 빠른 회복세로 돌아섰다. 또 삼성자동차 빅딜 문제 등으로 부산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김 전 대통령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괜히 벌집을 쑤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국민회의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경제청문회를 ‘빅딜’함으로써 청문회 개최에 따른 부담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텔레비전 앞에 나와 국민들 앞에 IMF 환란 책임을 진솔하게 사과하면서 청문회 개최를 재고할 것을 요청하고, 여야 수뇌부가 자연스레 이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청문회를 아예 없던 일로 하기 어렵다면 김 전 대통령의 사과에 이어 정치권이 경제연구기관 등에 의뢰해 조사특위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회 차원의 공개적인 청문회는 자칫 정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만큼 경제전문가들이 비공식으로 조사를 진행해 보고서를 제출토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회의로선 이런 방안들을 드러내놓고 얘기할 처지가 못된다. 환란 책임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언론과 시민단체 등의 원칙론 공세에 시달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시나리오들은 최소한 김 전 대통령이 총대를 메고 대국민사과를 함으로써 기존의 ‘환경’을 바꿔놓을 때만 가능하다.
아들 때문에… 대국민 사과 택할 수도
청와대와 상도동쪽은 최근 이런 방안들을 놓고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절충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대국민사과를 해놓고도 또다시 증언대에 끌려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대국민사과가 청문회 문제의 매듭이 아니라 또다른 꼬투리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YS로서는 차남 현철씨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현철씨가 아직 사면복권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그가 다시 청문회 증언대에 서는 것은 아버지로서는 용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이 대국민사과 문제를 내심 검토하는 것도 현철씨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민회의로서도 여론의 원칙론 공세와 자민련의 강경기류를 누그러뜨리면서 YS를 효과적으로 압박해 청문회 정국을 탈출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연말연초 동교동과 상도동의 청문회 줄다리기는 앞으로의 정계 추이를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 같다.
백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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