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그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장…개혁입법 가로막으며 ‘21세기 신오적’으로 떠오른다

지난 70년대 김지하 시인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가리켜 ‘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질기기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이라고 썼다. 부패한 권력과 자본을 상징하는 ‘다섯 도둑’은 세상을 호령하며 20년이 넘도록 질긴 목숨을 이어갔다. 오적은 90년대 들어 새로운 버전을 얻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뒤 김태동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당시 성균관대 교수)이 발표한 ‘신오적’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언도(言盜, 언론), 법도(法盜, 판·검·변호사), 지도(地盜, 땅투기꾼), 환도(環盜, 공해범), 공도(公盜, 공무원)가 추가됐다.

오적은 이웃의 삶이야 어찌되든 자기 이익만 챙기면 된다고 여기는 양심없는 기득권층의 다른 이름이다. 사회적 본분을 잊은 기득권층의 행태는 지금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우선 법조계와 교육계, 의약계가 두드러진다. 법조인 수 증원에 대한 ‘법조3륜’의 조직적 반대 움직임, 전교조 합법화를 막으려는 사립학교 재단의 반발, 의약분업을 연기하려는 의약계의 시도 등은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 이익집단의 의도가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전 변호사 등 전문직종에 대한 부가세법 처리 지연파동으로 물의를 빚은 법사위는 15명의 위원 가운데 법조인 출신이 12명이다. 이들 법조인 출신 의원 가운데 2명만이 법안처리에 찬성했다. 법조인수 증원에 찬성하는 의원은 단 1명이다. 법사위 자체의 여건으로는 사실상 개혁입법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의약분업을 내년에 시행할 지 여부를 다루고 있는 보건복지위도 마찬가지다. 의약분업은 한국이 세계 1위의 약물 오남용국으로 국민들도 약에 찌들고 있다는 점에서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10명이나 되는 의약사 출신 의원들에겐 여전히 먼나라 얘기다. 이들 의원들은 “아직 여유가 있다”며 “의약분업의 실시를 미루자”고 또다시 주장하고 있다. 교육개혁을 추진해야할 교육위도 가관이다. 몇명 안되는 사학재단 관련 의원들이 교육개혁입법에 반발해 배수진을 치고 있는 탓이다. 더욱이 사학재단과 무관한 의원들의 상당수가 이익집단을 의식한 듯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씁쓸한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소관 상임위가 이익집단의 대변자들로 채워져 국민의 의사와는 동떨어진 입법활동을 펴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을 심의하지 못하도록 한 국회법 규정은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 상임위원 3∼4명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이 본회의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되기 일쑤다. 이런 파행적인 국회의 모습은 때로 개혁이 아닌 개악 입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뜻있는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사회개혁을 위해서는 국회 상임위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가능하면 이해 당사자를 배제하고 논의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당분야 출신 의원을 상임위원으로 배정할 수밖에 없는 면도 있지만, 국회는 전문가 집단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대변하는 기관이라는 대전제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집중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는 일부 기득권층의 반 개혁문제를 집중적으로 짚어보았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개혁을 희생해서라도 잇속을 챙기려는 세력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을 방치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21세기판 오적’을 다시 쓰게 될 것이다.

박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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