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공무원들 은행·산하기관서 ‘로비 실력발휘’ 준비중 … “관치금융 강화” 비난
금융계가 낙하산에 뒤덥혔다. 경제부처 퇴직 임원들이 합병·퇴출 등 구조조정 바람을 타고 시중은행은 물론 정부 산하기관 요직에 속속 안착하고 있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人士) 대부분이 금융기관 부실과 외환위기에 적잖이 책임 있는 사람이란 점을 떠올리면 정말‘아찔한 일’. 그러나 정부는 관치금융 부활이라는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뭐가 잘못됐냐”는 엉뚱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낙하산‘투하’는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 등 경제부처에서 골고루 진행되고 있다. 재경부에선 정재룡 차관보가 성업공사 사장, 남궁훈 세제실장이 예금보험공사 사장, 윤증현 세무대학장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행시 10회 동기생으로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용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직에서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이규성 재경부 장관 ‘배려’에 따라 다행히 실업자 신세를 면하게 된 것. 국세심판소 이인원 심판관이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호군 상임심판관이 BC카드 사장으로 영전하는 것도 이같은 배려 때문이다.
시중은행장과 간부 자리도 여전히 퇴직관료들의 단골 코스. 정부·여당은 김진만 전 한미은행장을 상업·한일 합병은행인 한빛은행 초대행장에, 한미은행 후임행장으로 신동혁 한일은행장 대행을 사실상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은행은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어 신광철 상무를 행장대행으로 선임했으나, 정부가 호남출신인 신 대행을 행장으로 내정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한미은행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국민회의-재경부-금감위로 이어지는 관치금융의 끈이 아직 남아있다는 증거”라며 행장 내정 취소, 인사자율권 확보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경부의 뜻을 알아채고 ‘알아서 기는’ 곳도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22일 이사회를 열어 국세심판소 이종민 상임심판관을 신임감사로 뽑았다. 상업·한일이 합친 한빛은행은 이보다 앞선 19일 은행감독원 이촉엽 부원장보를 감사로 추대했다.
1월 1일 금융감독원 출범으로 퇴직하게 된 은행·보험·증권 감독원 임원들도 상당수 시중 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보인다. 올해만 해도 제일(이준근)·외환(허고광)·평화(박덕문) 등 시중은행들은 신임 감사를 은감원 출신으로 채운 전례가 있다.
해당 금융기관과 시민단체들이 관치금융 부활이라며 반발하자 이규성 재경부 장관이 진화에 나섰지만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이 장관은 지난달 말 “25년이상 공직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은 우수한 사람들이 산하기관에 내려가는 게 낙하산 인사냐?”며 “법적으로 보장된 정년보다 앞서 물러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이 뭐가 잘못됐느냐”고 말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이 장관의 말대로 금융감독 업무를 맡던 사람들이 시중은행 임원 업무에 적격일 수 있다. 감독기관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속셈으로 은행쪽에서 먼저 영입에 나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치금융의 폐해를 없애고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며 회계사·변호사 등 각계 전문가를 시중은행 감사로 영입하겠다던 정부 약속은 분명 어긋나 버렸다.
더욱이 재경부·은감원 등은 모두 금융기관 부실과 외환위기에 큰 책임이 있는 곳이다. 시중은행 임직원들이 금융부실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마당에 관료라고 해서 자리를 보전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경실련 김승보 부실장은 “개혁대상에 오른 사람들이 금융기관 요직을 다시 독차지 하는 한 금융개혁은 요원하다”며 “정부는 관치금융 청산과 경제개혁을 위해 낙하산 인사를 철회하고, 참신한 인사를 적극 발굴하고 금융기관 인사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배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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