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1/4분기, 늦어도 2/4분기에는 경기가 살아난다.”(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 “1/4분기에 35만명의 추가 실업자가 발생해 실업자 수가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이기호 노동부 장관)

경기는 회복되는데 실업자수는 되레 늘어난다? 정부 안에서 이런 모순된 진단이 나오고 있다. 성숙기에 접어든 선진국 경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났던 ‘고용없는 성장’도 아닌 ‘고용이 줄어드는 성장’인 셈이다. 경제원론을 뒤흔드는 이런 역설의 원인으로 정부는 ‘구조조정’을 든다. 구조조정 때문에 실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경기회복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대량실업에 따라 내수시장 회복이 지연되고 노사관계가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이 두가지 요소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실망실업자까지 합치면 실업자 300만명

정부의 올해 1/4분기 실업자 예상치는 200만명(실업률 10%). 지난해 11월 155만1천명(7.3%)을 기록하면서 다시 늘기 시작한 실업자가 1/4분기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적인 인식이 확산될 경우 실업률이 12∼13%대로 치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하는 바람에 실업통계에 안 잡혔던 ‘실망실업자’들이 노동시장에 다시 참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들을 실업자에 포함시킬 경우 실제 실업자는 300만명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11월에 비해 늘어나는 실업자 45만명 중 20만명은 대학졸업생 등 신규 실업자일 것으로 보고 있다. 25만여명에 이르는 신규 노동력 가운데 5만명 가량을 인턴사원으로 흡수하거나 직업훈련 등을 통해 노동시장 참가를 늦춘다 해도 나머지는 실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25만여명은 기존의 직장에서 떨어져나오는 전직(前職) 실업자인 셈이다. 노동부는 전직 실업자 중 15만여명은 농·림·어업과 건설업 등 겨울철이 비수기인 업종의 계절적인 요인에 따른 실업자로 분류하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 1월6일 내놓은 ‘99 실업대책 방향’에서 공곤근로사업 투입 인원을 29만명에서 42만명으로 늘린 것도 이런 계절적인 요인에 따른 실업 때문에서다.

단순 계산대로 하면 나머지 10만여명이 정부가 말하는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에 해당한다. 대부분은 2월 이후 빅딜(재벌그룹간 대규모 사업교환)로 대표되는 구조조정의 높은 파고 속에서 일자리를 잃는 재벌그룹 대규모 제조업체 및 공공부문의 정규직 노동자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한해 동안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줄어든 조합원 숫자와 비슷한 셈이다. 일부는 서울·제일은행 해외매각에 따라 추가 해고되는 금융기관 노동자들도 포함된다.

대량실업에 경기부양책 무용지물 될 수도

대규모 제조업체의 고용불안은 지난 1월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50대 그룹 인사·노무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78.1%가 임금을 동결·삭감하고 63.4%가 인원 감축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휴·폐업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 몰락을 통해 2∼3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하는 것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5대 그룹 빅딜과 관련된 사업장은 19개 사업장, 16만명이나 된다. 이중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은 한국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중공업 등 11곳, 한국노총은 대우전자 등 3곳이다. 빅딜에 따라 예정대로 감원이 추진될 경우 이들 사업장에서 최소한 2만∼3만명의 실업자가 나올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는 빅딜대상기업에 딸린 하청기업을 고려에 넣지 않은 수치다. 노동부의 예상실업 전망치에도 빅딜에 따른 하청기업 실업자는 정확히 반영돼 있지 않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빅딜에 따른 모기업 인원감축폭이 20∼30%에 이를 경우 하청기업에 미치는 고용감소 효과는 20만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공공부문 역시 상당한 인원 감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동안 계획에 머물던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인원감축 폭은 올해에 적어도 3만∼4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통신 한곳만 해도 2000년까지 1만5천명을 줄여야 할 판이다.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대량실업과 이에 따른 노사관계 불안이 내수시장 위축의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98년 경험에 비춰 노동계의 반발이 국가신뢰도를 손상시킬 만큼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1/4분기 별다른 여과정치 없이 실업발생이 몰리면 노사관계 불안과 맞물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재정경제부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뜻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정부의 우려는 금리가 떨어지고 주가가 오르는 등 경제지표들의 호전에도 내수 전망이 여전히 어둡게 나오는 데서도 확인된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1993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업체의 40%가 내수부진을 1/4분기 최대 경영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내수부진 전망치는 지난해 1/4분기 16.1%에서 출발해 2/4분기 24.6%, 3/4분기 39.4%, 4/4분기 42.1% 등 꾸준히 높아져왔다.

실업대책 실효성 기대 어려워

만약 정부의 계획대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노동부가 지난 1월6일 내놓은 실업대책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만큼 정부의 99년 실업대책 중심축은 ‘경기부양’에 놓여 있다. 경기 회복만이 최선의 실업대책이라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실업예산을 지난해(10조9천억원)보다 2조7천억원 가량 줄어든 8조2200억원을 책정한 것도 경기 회복과 관련이 있다. 1/4분기 실업자 수를 170만∼180만명 수준으로 묶고, 하반기에 150만명 수준에서 안정시킨다는 게 정부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 하반기 50만개를 비롯해 2002년까지 일자리 200만개를 만들어 8%에 이르는 실업률을 5%로 끌어내리겠다는 전망을 세웠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사업 예산 12조2천억원의 70%를 1/4분기부터 조기 집행한다거나, 중소기업 구매예산 30조의 70%를 1/4분기부터 조기 집행한다는 정도가 새로운 내용이다. 게다가 그나마 이 정도 액수의 SOC투자가 경기부양에 충분할지는 불투명하다. 올해 책정된 예산은 지난해(11조5천억원)보다 6.0% 증가하는 데 그친 수준이고, 대부분 기존 사업 위주로 진행되는 탓에 신규 건설물량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세수 부족에 허덕이는 지방자치단체가 공사를 발주한다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 4월1일부터 모든 노동자가 실업급여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나, 전국적 고용안정정보망 구축, 지식·정보사회를 겨냥한 교육·훈련 확대 등은 이전부터 계속 추진해오던 사업이다. 공공근로사업 투입 인원을 29만명에서 42만명으로 큰 폭으로 늘린 것만이 눈에 뛴다. 이에 따라 올해 공공근로사업 예산(2조원)은 더욱 늘어나는 게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해 3월 완성되는, 각종 구인·구직 정보을 담을 노동부의 전국 고용안정정보망에는 상당한 기대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의 실업대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지역단위로 실업자들의 특성이 파악돼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지역 실정에 맞는 실업대책이 나오기 힘들다. 공공근로사업이 지역에서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노임살포용’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노대명 인하대 강사의 지적이다. 이런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국건설노련 등 노동계와 시민단체에서 개통하고 있는 민간 고용안정정보망과의 연계가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실업대책에서는 실업을 둘러싼 정책 혼선과 부처간 사전조율이 안 된 것도 엿보인다. 올해 하반기 50만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실업대책의 경우 공기업 민영화 및 구조조정과의 관계가 애매하기까지 하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정보통신, 전력, 환경처리시설 등 공기업의 투자활성화 방안을 강구한다”는 내용이 여기에 속한다. 한국통신·한국전력 등에 대한 인원 감축을 꾀하면서 투자를 확대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원보 소장은 “관료적인 발상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공기업의 고용 창출·유지 기능을 무시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 모순”이라는 것이다.

고용안정 없는 내수시장 활황 기대는 무리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조합원 설문조사나 민간연구기관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햇동안 도시근로자 가계의 소비지출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고용불안과 실질임금 감소가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의 어려운 사태에 대비한’ 저축이 많았던 것이다. 인하대 윤진호 교수(경제학)는 이렇게 지적한다. “여전히 10만∼20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해고의 불안에 떨고 임금 삭감이 예상되는 속에서 내수시장이 살아나리라는 기대는 성급하다.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방안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실업최소화 방안이 추진된다는 사실 자체가 노동자계층에게 주는 심리적인 안정의 효과는 아마 몇조원 이상의 재정지출에 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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