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뉴스매체들이, 1월 15일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주에서 학살이 벌어졌다고 보도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 대부분은 미국 대사 윌리엄 워커의 성명을 그 정보원으로 삼고 있었다.
워커가 말한 바에 따라 미국과 나토의 전투기들이 최근 몇 년동안 갈기갈기 찢겨져 버린 이 작은 나라에 폭격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는 워커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다. 워커는 미국무부의 중견 외교관으로서 1980년대 엘 살바도르와 니카라과에서의 더러운 전쟁을 지도했고, 거기에 관해 그가 말한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다.
지금 워커는 나토에 의해 구성된 코소보 조사단을 이끌고 있으며, 학살의 현장이라고 주장되는 곳을 방문해 그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자신 판사이고, 배심원이며 검사이다.
미국 어느 도시의 지방 검사도 이처럼 대담한 주장을 할 수는 없다. 유죄 선고 먼저, 증거는 나중이라는유고슬라비아 정부는 워커의 추방을 명했다. 미국의 미디어들은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진상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뒤바뀐 진실일 뿐이다. 진상이 채 밝혀지기도 전에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워커였다. 그렇게 그는 워싱텅의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공식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진짜 은폐인 것이다.
워커는 도대체 누구인가?
워커 대사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이제 발칸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듯이 코소보의 리처드 버틀러인가?
버틀러는 이라크의 유엔 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서, 비밀리에 미국의 정보기관과 군을 위해 일해왔다. 유엔 안보리의 회원국들은 심지어 그가 미 국방성의 12월 이라크 폭격을 위해 워싱턴의 필요에 맞춰 그의 마지막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워커는 코소보의 나토 조사팀을 이끌고 있다. 어떤 사
람들이 그 팀을 구성하고 있는가?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군출신이며, 그보다는 적지만 역시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경찰 출신” 이라고 워커는 1월 8일의 국무부 뉴스 회견에서 밝혔다. (미국 공보원 공식문건)
그의 코소보 팀이 이라크의 유엔 무기 사찰단과 같은 역할을 하는지 물었을 때, 워커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우리 임무중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들을 수집하려 하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그 정보들을 워싱턴으로 보고합니까”라고 다시 질문했을 때, 워커는 또한 이렇게 대답했다, “그 정보의 많은 부분들이 워싱턴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토 가맹국들의 모든 수도로도 역시 보고될 것이다.”
이라크에서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워커는 과연 코소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그런 믿을만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의 과거 경력이 보여주듯이 정치적 거짓말과 은폐의 명수일 뿐인가?
워커는 보통 미국의 미디어들에서는 국무성의 중견 외교관으로 현재 발칸에서 곤경에 빠져있다고 표현된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는 다르다.
워커는 틀림없이 미 국무성에서 상당한 경력을 가진 외교관이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실마리를 주는 것도 바로 이 경력이다.
엘리엇 아브람스와 올리버 노스의 보좌역
워커는 그의 외교관 경력을 1961년 페루에서 시작해서 1985년에는 중앙 아메리카 담당 국무부 차관보에 임명되었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 전복 음모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 작전은 올리버 노스 중령과 국무차관 엘리엇 아브람스에 의해 추진되었고, 로렌스 월쉬 특별 검사가 미국 법원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워커는 아브람스의 특별 보좌역이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법원 기록은 또한 워커가 엘 살바도르의 일로팡고 공군기지에서의 가짜 인도주의 작전 수립에 책임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작전은 니카라과 정부 전복을 기도하는 콘트라 용병들에게 비밀리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월쉬 특별 검사는, 법원 기록에 따르면 워커가 올리버 노스의 작전에서 핵심적인 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믿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후 1988년에서 1992년까지 워커는 엘 살바도르 주재 미국 대사였다. 당시는 군인들에 의한 살인이 횡행하던 시기였으며, 이 군인들의 많은 수가 조지아주의 컬럼버스 근처 포트 베닝에 위치한 미국의 아메리카 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말없는 개입자’, 예수회 신부 살해 사건
지난해 11월 16일 아메리카 군사학교 밖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 반전 할동가가 쓴 문건은 그 중의 한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있다:
“1989년 11월 16일, 일단의 무장 괴한들이 새벽 2시 반에서 3시 사이에 중앙 아메리카의 호세 시미욘 까나스 대학 기숙사에 난입했다-그들은 미국에 의해 훈련받은 엘 살바도르군의의 아틀락틀 대대 소속이었으며, 대부분은 아메리카 군사학교 출신이었다. 그들은 여섯명의 신부들을 침대에서 끌어내고 그들 머리에 총을 쐈다. 그리고 나서 신부들의 요리사와 그의 15살 난 딸을 살해했다.”
그 신부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에 대항하여 싸우는 해방군들에 동조적이었다고 믿어지며, 예수회에서는 워커를 이 학살의 “침묵의 개입자”라고 명했다.
수년 후, 1996년 5월 6일, 워커는 엘 살바도르에서 비밀리에 싸운 5천명의 미국 군인들을 환영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워커가 엘 살바도르 주재 대사였던 당시 공식적인 설명은 엘 살바도르에는 단지 50명의 미국 군사 “고문단”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워싱턴 포스트, 1996년 5월 6일)
숙련된 거짓말쟁이
이렇게 워커는 진실을 말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결코 독립적인 감시관이나 인권의 옹호자로 불릴 수는 없는 사람인 것이다.
아마도 그는 코소보에서 그의 오래된 속임수에 의존할 것이다. 이번에는 “코소보 해방군”이라 불리는 또다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
몇몇 유럽 신문들은 나토 전폭기들을 코소보 해방군의 공군이라 부르기 시작하고 있다.
워커의 행동은 분명히 유고슬라비아 정부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의 성명들은, 만약 미국 정부가 나토의 군사적 개입을 결정하게 된다면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용될 수 있을 것이다.
1월 12일,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정부의 중량급 반대자를 포함한 세명의 유고슬라비아 고위직 인사들은 기자 회견을 열어 밀로세비치를 축출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관한 미 중앙정보국 일급비밀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3천 5백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유고슬라비아내의 반대그룹에 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상원은 밀로세비치 축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고슬라비아 정부를 타도하기 위한 전쟁이 획책되고 있다. 소위 코소보 해방군은 2차대전중 그 지역을 점령했던 파시스트들의 제복을 채택했으며,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우파인사인 아리앨 샤론은, 학살이라 주장되는 그 사건에 관해 성명서를 작성했고, 의회는 유고슬라비아 정부를 비난하고, 그 축출을 요구하며 그것을 통과시켰다.
결코 당시 상황에 관한 미디어의 발작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코소보의 라챠크 마을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진실은 그 전모가 다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유고슬라비아 검시팀은 코소보 해방군의 방해로 인해 워커가 그의 성명들을 발표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할 수도, 시신들을 조사할 수도 없었다. 워커와 그의 팀의 군사 “전문가들”을 통해 그 이야기들은 세상에 공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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