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방송반 학생들이 만든 프로 하나. 신문.잡지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 를 그대로 추적했다. 운세대로라면 가장 운이 좋아야 하고 나빠야할 사람 한 명씩 선정해 그들의 하루를 따라갔다.
정말 운세가 들어맞는지 확인했다. 물론 결과는 부정적. 비과학적 운세에 현혹되지 말자는 캠페인 프로다.
‘백수’ 의 일상을 담은 작품도 있다. 비디오자키 (VJ) 로 일하다 실직한 조남일씨의 ‘백수 조남일의 일기’. 뜻하지 않게 백수 신세가 된 자신의 생활을 여과없이 찍어댔다.’백수는 끼니를 놓치지 않는다’ ‘일거리가 주어지면 놓치지 않는다’ 는 백수수칙도 발표했다.
일반인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방송사로 몰리고 있다. 인천방송이 지난주 시작한 ‘당신의 채널’ (금요일 밤9시30분.032 – 830 – 0482) 과 SBS가 다음달 선보일 ‘결정! 당신이 주인공’ (화요일 저녁7시15분.02 – 789 – 9873)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겨우 첫 걸음마를 뗐음에도 각각 40여편과 1백여편의 작품.기획안이 접수된 상태. 이들 프로의 특징은 일반인들이 만든 작품을 그대로 내보낸다는 점. 전문용어를 빌리면 퍼블릭 액세스 (일반인 접근) 프로다.
방송에서 소외된 시청자를 적극 끌어들인다는 뜻. 시청자 실수담이나 별난 체험 등을 편집해 방영하는 기존 프로와 달리 일반인의 대 (對) 사회발언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방송 제작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틈새를 뚫어가며 발상의 전환을 유도한다는 점도 새롭다. 물론 아직 질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 전문가들이 아닌 만큼 촬영.편집 등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진다.
하지만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각계 각층 사람들이 방송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부정할 수 없는 미덕. 장르도 다큐.애니메이션에서 단편영화.드라마까지 다양하다.
예컨대 손발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의 하루를 따라가며 장애인의 고달픈 일상을 객관적 시각에서 담은 휴먼다큐, 대졸 실업자의 구겨진 이상을 미국 대통령 케네디에 비유한 시사다큐, 짚신부터 구두까지 수제화 (手製靴) 의 변천을 짚은 교양다큐, 체험을 바탕으로 첫사랑의 설레는 마음을 5분 영상으로 재현한 만화영화, 80년대 운동권 청년의 귀향을 통해 고향의 의미를 되새긴 드라마, 전래 속담에 숨겨진 과학성을 조명하는 과학교양물 등등.
SBS 이상수 PD는 “본드흡입.폭주족 등 방송에는 적절하지 못한 내용도 많지만 일부 작품들은 프로 냄새가 날 정도로 우수하다” 고 말했다. 인천방송 최병화 PD도 “시청자들의 상상력에 깜짝깜짝 놀란다” 고 했다.
방송위원회 홍석경 선임연구원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취지를 살리려면 여러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활발하게 소개해야 한다” 고 제안했다.
[외국 사례]
시청자가 만든 프로를 방영하는 제도는 유럽보다 미국쪽이 활성화돼 있다.
영국.독일.프랑스 지상파에선 이런 프로를 찾기 어렵다.
미국쪽도 지상파보다 케이블이 왕성하다. 상업성이 앞서는 지상파보다 채널제한이 거의 없는 케이블의 운신이 자유롭기 때문. 해서 지상파에 시청자 제작 프로 편성을 의무화하려는 방송개혁위원회의 움직임은 일면 실험성이 강한 시도로 평가된다.
미국은 보통 지역마다 2~3개의 시청자 전문 케이블 채널이 있다. 내용도 극좌부터 극우까지 각종 단체.이익단체의 의견이 여과없이 방영된다. 그만큼 시청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인프라가 갖춰진 것.
예컨대 1백여개의 케이블 채널이 있는 뉴욕 맨해튼구에는 모두 4개의 시청자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 지역동향.학교행사.체육회 등의 생활정보도 빠지지 않는다. 일종의 지역사회 구심체 역할을 하는 셈. 운영비는 케이블 시청료의 일정액을 적립해서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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