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도록 촉구하는데 대단한 정치력을 보였다. 그는 미국의 대북정책을 무작정 따라하는 게 아니라, 북한과 대결이 아닌 포용을 확대하는 새로운 공조정책에 미국이 동참할 것을 요구해왔다.
지금은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또 하나의 민감한 문제에서 김 대통령이 미국의 정책에 도전할 때이다. 즉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공격에 핵무기를 선제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독일 정부와 캐나다 의회를 지지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 문제는 북한 동포에게 핵무기를 사용해야 하는가하는 도덕적 딜레마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북한과의 협상교착을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냉전기간 사회주의권은 유럽지역에서 병력과 재래식전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인해전술’을 우려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어떠한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공격에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핵무기 선제사용은 한반도에서도 미국의 전략적 방침이 됐고, 그에 따라 전술핵무기가 남한에 배치됐다.
91년 부시 행정부는 노태우 당시 한국 대통령에게 미국이 지상과 공중발사 전술핵무기를 남한과 태평양의 해군함대에서 모두 철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위기발생때 전술핵 무기를 다시 들여올 권리를 갖고 있고, 공격 사정권 안에 핵미사일 장착 잠수함을 배치해 어떤 경우에도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그러나 독일에선 집권 사민당과 녹색당이 오랫동안 핵 선제사용 방침은 더이상 필요없다고 주장해왔다. 두당은 총선전 연정합의에서도 새로 구성되는 연립정부가 핵 선제사용의 포기를 주창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 바 있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취임 이후 나토가 핵정책을 재검토해야 하는 두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그는 “우리국경엔 48시간 안에 영국해협까지 진출할 수 있는 소련의 탱크사단들이 더이상 배치돼 있지 않다. 핵 선제사용 정책을 낳은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화해왔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그는 “만약 우리가 핵확산 방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기존의 핵강국들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무장으로 나아가려는 다른 나라들의 유혹을 줄일 수 있도록 군비축소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미국 국방부는 독일 국방부에 압력을 넣어 지난해 1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이사회에서 피셔 외무가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시도했다. 그러나 피셔는 문제를 제기했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정책 재검토는 불필요하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로이드 액스워시 캐나다 외무장관이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감축을 더 서두르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캐나다 의회의 외교위원회가 나토는 재래식무기 공격에 대응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나토가 전쟁 억지정책을 유지하면서도 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필요성을 지지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피셔의 핵비확산 주장과 합치한다.
봉쇄정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전직외교관 조지 케넌은 이런 독일의 태도에 대해 새 독일 정부가 통찰력과 용기를 보였다며 찬사를 보냈다. 윌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은 핵선제사용 정책의 유지는 모호함을 증대시킴으로써 화학 또는 생물학 무기를 사용할지 모르는 잠재적인 적에 대한 억지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 은 허울좋은 주장일 뿐이다. 화학 또는 생물학 무기를 이용한 공격을 받을 때를 예외로 하면 재래식무기 공격에 대해선 핵무기 선제사용을 배제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경우, 미국이 북한을 분쇄할 수 있는 2차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잠수함의 핵미사일로 보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래식 분쟁에서 핵선제사용을 위협하는 것은 필요없이 북한과의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노력을 약화시키는 과잉대응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은 핵전쟁에만 적용하도록 재정의돼야 한다. 현재 정책은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기를 원하는 북한 매파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때문에 남한의 안보를 실제로 위태롭게 한다. 또 북한에게 91년 남북한이 맺은 한반도 비핵지대화 합의를 실행에 옮기지 않는 데 대한 명분도 준다.
지난해 5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당시 외교부 장)을 만났을 때 나는 북한이 포괄핵실험금지조약에 서명해 핵무기를 만들 의사가 없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미국이 핵 선제공격 권한과 핵우산 제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처럼 손발을 묶어놓을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우리도 비핵화된 한반도를 바라지만 그것은 강대국의 특권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평등과 상호주의의 바탕에서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와 다른 북한관리들은 미국이 94년 제네바 핵동결 합의를 계속 준수하지 않으면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경제제재 해제를 않는 것은 물론 핵무기 사용이나 그 위협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북한에 제공하도록 규정한 합의문 1절 3항을 무시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미국은 또다시 핵무기 선제사용 금지협정에 대한 중국의 제안도 거부했다. 이것은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긴장완화를 가로막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핵무기 사용과 배치, 제조를 막는 6개국(남북한과 미중일러)의 비핵지대 협상을 불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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