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감시소홀로 투자자 손해 부른 삼일·산동 회계법인 감시운동 시동
재벌총수·은행장·경제관료들의 공통점은? IMF 환난과 경제위기를 몰고온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란 점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체질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대열에 공인회계사가 빠져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업들은 그동안 부실을 감춰왔고, 은행들은 이들에게 천문학적 돈을 꿔 줬으며, 경제관료들은 이를 방관했다. 기업의 재무상태를 꾀고 있는 공인회계사라면 이처럼 ‘부적절한 관계’가 유지되선 안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을 터. 그러나 한보·기아로 이어진 연쇄부도와 최근 5대 재벌들의 부실이 드러날 때까지도 공인회계사 가운데 누구도 부실한 곳을 ‘부실하다’고 말한 이가 없었고, 기업들의 치부인 회계장부를 감사해온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들도 입을 다물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만약 기업 부실의 1차 발견자가 될 이들 외부감사인(회계법인)들이 기아나 한보의 부실을 제대로 발견하고, ‘귀사는 곧 망할 운명이니 퇴출을 준비하라’고 직언만 했던들, 지금같은 위기가 왔을까.
시민단체가 기업들의 장부조작을 눈감아 주고, 회계감사를 소홀히 해온 회계법인들의 책임을 묻기로 한 것은 이같은 가설이 앞으로 유효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위원장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최근 5대재벌 계열사에 대한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면서 삼성전자·LG반도체의 외부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과 (주)대우를 맡은 산동회계법인의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회계법인들은 해당 기업들이 무리한 상호채무보증(내부출자)과 부실한 투자를 일삼아 왔는데도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묵인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외부감사인은 감사대상 기업이 회계장부를 바로 쓰고 있는지, 재무상태가 위험한 수준은 아닌지 경영진과 주주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하지만 회계법인들은 하나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삼일·산동회계법인이 국내 1백대기업 가운데 28개, 16개사의 회계감사를 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삼성전자(삼일)=삼성전자는 지난 97년 삼성전관·삼성전기와 함께 아일랜드 소재 투자회사인 ‘팬퍼시픽’사와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 삼성자동차주식 5천만주를 ‘옵션거래’(일정기간 안에 특정상품을 지정가격으로 매매하는 권리를 거래하는 것)하기로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같은 거래를 회계장부에 기록하지 않았다. 유령회사인 팬퍼시픽을 이용해 삼성자동차에 내부출자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97사업연도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삼일회계법인은 당시 4천5백억원에 달하는 이같은 거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내부출자를 숨기기 위해 팬퍼시픽과의 거래로 생긴 외화자산(1조2천억원)·외화부채(1조6천억원)·외화환산손실(2천8백억원) 등 3조3천억원의 수입·지출내역을 회계장부에 기재하지 않았고, 삼일은 이 역시 파악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 주주들은 자신의 투자가 부실덩어리 삼성차 쪽으로 흘러간 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증감원은 지난해 8월 뒤늦게 이를 적발하고 삼성전자에 주의, 삼일쪽엔 경고조치를 내렸으나 삼성자동차에 대한 내부출자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삼성차는 계열사들의 이같은 집중지원에도 불구, 결국 3조원이 넘는 빚만 안고 대우로 합병되고 말았다.
△LG반도체(삼일)=LG반도체는 97년부터 그동안 써왔던 회계기준을 대폭 조정했고 삼일도 이를 인정했다. 96년까지 ‘투자유가증권’으로 취급했던 데이콤·LG텔레콤·LG금속 주식값이 97년에 크게 떨어지자 ‘관계회사유가증권’ 항목으로 바꿔 주식평가손실이 자산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데이콤이 LG반도체의 관계회사라는 근거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결국 포괄적으로 확대된 관계회사 항목을 악용해 8백33억원에 달하는 주식평가손을 자본항목에 올려 순자산이 감소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LG반도체는 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연구활동과 관련해 발생하는 거액의 장기 연구개발비를 수익이 보장되는 회계연도까지 감가상각을 미뤘다. 또 발생연도에 바로 감가상각하던 단기연구개발비도 수익·비용의 적절한 대응을 위해 발생연도부터 5년동안 같은 액수로 상각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삼일은 이에 대해 ‘타당성이 인정된다’는 의견을 보냈다. 그러나 이는 수익·비용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어떻게든 손실을 줄여보려는 의도가 깔린 처리방식이다. 실제로 LG반도체는 이같은 처리로 전년대비 당기순손실을 1천4백억여원이나 줄일 수 있었다. 삼일이 낸 감사보고서엔 대차대조표 유형자산 항목에 있는 ‘건설중인 자산’(1조7백억원)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을 명시하지 않아 내용을 전혀 알수가 없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회계정보를 원하는 주주들은 LG반도체의 실상을 제대로 알수 없었다는 얘기다.
△(주)대우(산동)=‘세계경영’을 모토로 삼은 재벌답게 현찰을 끌어들이는 (주)대우는 국내 계열사는 물론 해외현지법인에도 뭉칫돈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그저 ‘그렇다더라’는 식으로 알려져 있을 뿐 회계장부엔 명시되지 않는다.
97년사업연도에 (주)대우는 관계계열사에 모두 11조원의 엄청난 채무보증을 섰는데, 이 가운데 해외현지법인(총 2백18개)과 관련된 것이 전체의 70%인 7조8천7백억여원이나 된다. 또 해외현지법인 중 30개사엔 직접출자(1조3천6백억원)까지 했으나 현재 대부분 부실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정확한 근거를 갖고 장부에 오르지 않기 때문에 주주들은 물론, 관련업계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 부도가 나고 국내로 악영향이 끼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외부감사인인 산동회계법인은 이같은 내역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적정의견’은 꼬박꼬박 보내주고 있다.
(주)대우는 지난해 계열사에 1백85억원 정도의 부당내부지원을 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적발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삼일)=현대중공업은 아직 참여연대로부터 외부감사인 교체를 요구받지는 않았지만, 상습적인 ‘부당내부거래자’로 찍힌 상태여서 기아·아시아차를 인수한 현대차에 대해 또다시 내부지원을 할 가능성이 높아 감시를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2천3백억원을 들여 기아·아시아차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에 휩싸였고, 이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부당내부지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참여연대는 삼일이 과거에 이같은 부당행위를 눈감아 준 사례가 적발되면 바로 교체를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배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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