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다보스, 세계민중포럼
강 상 구(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이른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열린다. 일명 ‘다보스 포럼’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회의는 1971년 창설되었고, 애초에 유럽의 경제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데서, 참석대상을 넓혀 73년경부터는 이른바 ‘전세계 지도자들’의 사교 모임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사교클럽’에 불과한 다보스 포럼이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 포럼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과 포럼 자체가 갖는 영향력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인의 경우 다보스 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업이 연간 7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7,700억원 정도의 매출액을 기록해야 한다. 현재 다보스 포럼에 회원기업으로 있는 회사들은 미국 약 2백개, 유럽 5백개 정도를 포함해서 총 1000여개에 이른다. 다시 말하자면 다보스 포럼의 회원기업은 지구촌 경제의 이른바 ‘세계화’를 주도하는 초국적 자본인 셈이다.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는 정치인은 철저하게 현직으로 국한된다. 작년에는 미국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 러시아의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 이스라엘의 네탄야후를 비롯해 동유럽과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전세계를 망라하여 국가원수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올해에도 미국의 엘고어 부통령, 독일의 슈뢰더, UN의 코피아난 등이 참석했다.
특별히 구속력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보스 포럼의 수 많은 토론에서 나온 결론들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이렇게 포럼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초국적 자본이나 혹은 국가권력의 수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보스 포럼은, 세계화의 이름하에 무한정한 이윤추구를 도모하는 초국적 자본과 그것이 나은 부정적 결과를 비판하는, 전세계 NGO와 대중조직들의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자본과 권력이 만나서 인류의 ‘미래’를 논의한다는 것이 실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월마트의 회장과,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대표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교수와 몇몇 유력 정
치인이 모여서 얘기하는 21세기의 미래는, 보다 많은 유
통망을 구축하여 상품을 팔고, 이를 위한 컴퓨터 네트워킹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놀라운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이 가져올 낙관적 미래를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대학교수의 몫이 되고,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시대의 대세로서 읽어 내고 ‘실천’하는 것은 정치권력자들의 몫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바로 그들이 한데 ‘어울려’, ‘머리를 맞대고’, ‘인류의 미래를 논의하는’ 다보스 포럼에서 이야기된다.
다보스포럼에는 회원기업이 아니더라도 우리돈으로 2,200만원 정도를 내면 참가해서 강연을 들을 수 있는데, 전세계 수 많은 기업인들이 이 곳에 몰리는 것은 요즈음엔 세계화의 추세를 남보다 빨리 읽어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윤축적의 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정보가 집중되고 분산되며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하지만 어떤 구속력을 지니거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개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 그래서 세계 민중들의 직접적 저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부르주아들의 밀실담합. 다보스 포럼은 마치 이런 것이다.
세계의 민중운동 진영은 올해 다보스 포럼에 대항하여, ‘Another Davos’를 개최했다. 굳이 우리 식으로 번역하자면 ‘세계민중포럼’ 정도라고 부를 수 있을 이 회의는 ‘시민지원 금융거래 과세연합( ATTAC)’, ‘대안을 위한 세계 포럼(The world forum for alternatives; WFA)’, ‘구조조정 참여감시 국제네트워크(SAPRIN; Structural Adjustment Participatory Review International Network.)’, 그리고 과거에는 MAI 반대연합이었으며 현재는 ‘Co-ordination against the clones of MAI'(MAI 류의 다자간 협상에 반대하는 연합)이 제안했고, 각 대륙에서 초청된 대중운동 단체의 대표들이 함께 했다.
‘시민지원 금융거래 과세연합’은 98년 6월 건설되었고, 금융자본의 지배로 인해 상실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서는 국제금융에 대한 통제책을 강구해야 함을 주장
한다. 이들은 작년 12월 파리에서 ‘금융시장 및 기구들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했었으며, 이 회의에는 지구적 민중행동(PGA) 등 몇몇 네트워크를 비롯해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전선, 브라질 노동자당, 프랑스 노동총동맹 등이 참여를 했었다.
‘대안을 위한 세계포럼’은 세네갈의 진보적 학자인 사미르 아민의 제안으로 1997년 건설되었으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여 ‘투쟁의 세계화’를 외치고 있다. 이 네트워크에는 전세계 1000여명의 진보적 학자와 이론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현체제의 대안을 고민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집단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구조조정 참여감시 네트워크’는 1997년 벌어졌던 ‘구조조정 참여감시 운동’을 모태로 하여 만들어진 시민사회의 네트워크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은행이 제3세계 전체에 걸쳐 추진했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아프리카 토착여성에서부터 남미의 농민에게까지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에 대항하여 65개 나라의 1200개 조직이 함께 벌였던 운동이 바로 ‘구조조정 참여감시 운동’이었다. ‘구조조정 참여감시 네트워크’는 이 운동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밖에 MAI 반대 연합은 작년까지 MAI 반대를 위한 대규모 투쟁을 이끌었던 네트워크이다.
이들이 세계민중포럼을 제안한 이유는, 전세계의 자본과 권력을 쥐고 있는 부르주아들의 연례회의를 맞이하여, 다보스 포럼에 모인 자들이 결코 전세계 민중들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과 이들이 추진하는 ‘세계화’가 인간의 삶을 위해 선택 가능한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진짜 대안은 폭발하는 각국의 민중투쟁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세계민중포럼’의 첫날은 참석한 각 단체들의 상황 발제로 시작했다. 각 대륙별로 남미에서는 브라질의 땅없는 사람들의 운동(MST)이 참석했고, 아프리카에서는 브루키나 파소의 농민 단체가 참석했으며, 북미와 그리고 여성을 대표해서는 캐나다 퀘벡주의 여성운동 단체, 유럽과 실업자를 대표해서는 프랑스의 실업자 단체, 그리고 아시아를 대표해서 인도의 카라나타카주 농민 연합이 참가 했는데, 이들은 주로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왜 투쟁할 수밖에 없는가?―을 설명하고, 그 동안의 투쟁의 경과를 이야기했으며,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전세계 민중들에게 미치는 파괴적 효과가 모두에게 동일한 것임을 확인했다.
‘땅없는 사람들의 운동’과 카르나타카주 농민연합은 빈곤과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농업노동자들의 대중운동이다. 브루키나 파소의 농민운동 단체(FENOP) 역시, 96년에 설립되어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과 그리고 빈곤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농민운동 단체이다. 이 밖에도 퀘벡주의 여성운동 단체(FFQ)는 캐나다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예산 긴축이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악화시켰는지와, 이에 맞서 자신들이 95년에 전개했던 여성대행진에 대해 설명했다.
실업운동에 대해 프랑스 참석자는 ‘실업노동자 운동’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97년, 98년 프랑스의 4개 실업자 단체가 수개월간에 걸쳐 투쟁한 성과라면서, 실업자 운동의 의의와 현황, 그리고 국제연대의 가능성 등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의 1인이 그 동안 국내에서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상황과 이에 맞선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에 대해 보고 했고, 올해의 계획을 포함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대체적인 전망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토론의 결과는 주로 ‘기자회견문’의 작성으로 모아졌다. 민중포럼의 목적이 어떤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민중들의 하나된 목소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1월 30일날 다보스 현지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을 통해 민중포럼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전세계 모든 여성과 남성은 현존 체제가 계속 유지되는 것에 결단코 반대한다. 우리는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여 일어나고 있는 저항과 투쟁에 고무받으며, 우리의 노력을 집중하여 현체제에 대한 반대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이제는 반격할 때이다.
교역과 투자에 대하여: MAI투쟁의 승리를 경험으로 우리는 WTO 내의 다자간 투자협상(MIA)과 대서양경제공동체(Trans-Atlantic Economic Partnership, TEP) 그리고 밀레니엄 라운드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할 것이다.
국제금융체제에 대하여: 우리는 동유럽을 포함한 제3세계 외채의 탕감을 요구한다. 국제금융체제와 그 대표적 기관들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정치적 민주주의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발전에 대하여: 우리는 IMF, 세계은행 그리고 런던, 파리 클럽 등의 국제적 금융기관들이 요구하는 구조조정 정책을 분쇄할 것이며, 인간의 기본적 필요와, 정의 그리고 자유에 근거한 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위해 국제적
금융체제를 다시금 사고하고 건설할 것을 주장한다.
우리는 여러 차원에서 수 많은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들은 사회적 필요와, 노동이 생산한 사회적 부의 공평한 분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목적은 사회 안에서 경제의 의미를 다시금 세우는 것이다. 부르주아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숭배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성과 남성의 손과 그리고 지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손과 그들의 정신이 오늘날의 경제를 건설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의 밑그림은 권력의 억압과 오만에 반대한 투쟁을 통해 형성될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부의 분배와 노동의 조직화를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미래는 이들의 몫이다. ‘
민중포럼은 참가한 여러 단체들과 네트워크들의 계획을 종합해서, 올해의 중요 일정을 정리했다. 그것은 PGA가 4월에 개최하는 인도방갈로 회의로부터, 6월 18일 초국적 금융자본 중심지에서의 전세계 동시다발 공동행동으로 그리고 바로 뒤이어 6월 24-26일부터 있을 시민지원금융거래 과세연합, 대안을 위한 세계포럼, MAI반대 연합 공동주최의 국제회의로 이어진다. 모든 일정은 전세계 대중적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민중포럼을 통해 전세계의 민중운동과 각종 네트워크는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투쟁의 세계화’가 실제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심도 깊게 논의했다. 그것은 비단 가능성의 확인으로 그치지 않았으며, 민중포럼을 위해 모인 자리 그 자체가 투쟁의 세계화의 출발점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였다. 자동소총으로 중무장한 병력이 지키는 다보스에서, 자본과 권력이 자신들의 친족성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순간, 고통당하는 세계 민중들은 자신들만의 세계포럼을 가진 것이다.
민중포럼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세계적 투쟁의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했다. 이와 함께 각 지역의 정보를 보다 체계적으로 공유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비록 한국에서 민주노총이 참석하지 않음으로 해서, 참석자들의 아쉬움이 컸지만, 그리고 여전히 국제적 투쟁이 유럽지역에 국한되는 면이 강하긴 했지만, 민중포럼으로 인해서 투쟁의 세계화는 우리 앞에 한 걸음 더 당장의 과제가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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