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들, 의회에서 시위

아인포서비스(A-Info Service) 2/11

약 250여명의 시위대가 2월 10일 저녁, 오타와 국회 앞에서 캐나다 무주택 문제의 시급한 해결을 요구하며 경찰기동대와 대치했다. 몇 시간 후, 약 100명이 밴쿠버 시내의 국세청사무실로 시가행진을 하며 연대활동을 벌였고, 50여명의 사람들은 이미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었다.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 밴쿠버지역의 빈곤퇴치그룹들이 동의한 시위대의 주요한 두가지 요구사항은 첫째, 실업수당, 복지, 장애수당, 학자금과 같은 소득지원금을 시급히 증대할 것 둘째, 영구임대주책을 위한 연방예산을 두배로 올릴 것, 등이다.

두번째 요구안은 “1퍼센트 해결”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영구임대주택은 현재 연방 예산에서 단지 1%만으로 해결가능하기 때문이다. 재정부 장관 폴 마틴은 2월 16일 올해의 예산을 발표할 것이다.

토론토재난구제위원회(Toronto Disaster Relief Committee)는 캐나다의 무주택문제는 국가적 재앙이라고 선언했으며, 토론토와 밴쿠버 그리고 오타와의 시정부들도 이 문제가 국가적 문제임을 인정했다. 캐나다에는 10만명의 무주택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해 겨울에는 수많은 무주택자들이 거리에서 죽어간다. 토론토의 한 변호사겸 교수는 공개적으로 무주택자들이 날씨가 추워 실내를 찾아 집으로 난입해 들어가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해왔다.

국회 앞 시위는 토론토 본부를 두고 있는 온타리오빈곤반대동맹(Ontario Coliation Against Poverty, OCAP)에 의해 조직되었고 오타와의 캐나다체신노조(Canadian Unions of Postal Workers, CUPW)와 티엔디나가 모호크 족 공동체의 지지를 받았다.

활동가들은 네대의 버스로 토론토로 몰려들었고, 더 많은 지지자들을 태우기 위해 킹스톤에서 버스를 세웠다. 킹스톤에도 역시 티엔디나가에서 온 버스가 있었고, 실업자위원회에 의해 조직된 몬트리올에서 오는 또 다른 버스가 있었다. 그들은 오타와에서 온 활동가들과 합류하였고, 그 중에는 무주택자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무주택자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무주택자들을 거리에 남겨두지 말라”라고 쓴 현수막아래 모여, 시위대는 국회 앞 거리를 점거하였고 온타리오빈곤반대동맹, 캐나다체신노조, 캐나다노동위원회(Canadian Labour Congress, CLC)의 대표들을 포함하여 발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시위대 사람들과 몇몇 발언자들은 자신의 요구가 단지 부패하고 생색내기 위한 호스텔, 피난처등을 늘려 달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오히려 그들은 수입과 적당하고 얻기 쉬운 영구임대주택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온타리오빈곤반대동맹의 한 사람은 나흘 전 토론토에서 죽은채로 발견된 무주택자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순간, 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 대표인 죠 클락은 시위대에게 연설하기 위해 군중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고함소리와 함께 난폭하게 밀쳐져 시위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기자들 쪽으로 밀려났다. 클락은 84년부터 93년사이 정부를 이끌었던 브라이언 멀로니 신보수주의 정권이 도대체 무주택자들을 위한 정책이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과거보다는 현재를 말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우익의 개혁당 출신인 베르너 슈미트와 에릭 라우더 의원들 역시 시위대의 고함소리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라우더는 “아무도 유인물을 요구하지 않았던”것에 대해 안도하는 것 같았다. 라우더는 시위대가 중요하게 요구한 사항이 복지, 실업수당과 영구임대주택에 대한 연방예산을 늘리는 것임을 알고, “이후에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표면적으로 사민주의적 색깔을 띈 신민주주의당(NDP)의 의원 리비 데이비스는 연설을 했고, 과거와 현재의 신민주당 지역정부―온타리오의 밥 레이, 브리티쉬 콜롬비아의 마이크 해커트와 글렌 클락―에 대한 부정적인 야유가 있긴 했지만, 데이비스는 시위참석이 허용되었다.

시위 조직자들은 쟝 크레티엥 수상에게 오타와에서 면담할 것을 요청한다고 통보했다. 연설이 끝나자 시위대는 이번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의회 빌딩까지 행진을 했는데, 하원은 회의중이었고 카레티엥도 그곳에 있었다.

시위대는 바리케이트, 입구에서 의회 건물까지 수 미터를

늘어서 있는 오타와 경찰, 그리고 캐나다기마경찰(Royal Canadian Mounted Plice, RCMP)을 밀어부치려고 했다.

처음에 이 대열을 뚫고 들어가려는 시위대를 밀어버리고 경찰은 7명을 체포했다. RCMP 전경들은 재빨리 중앙 출입구 안쪽에서부터 배치되었다. 진압봉과 방패, 헬멧으로 무장한 약 40명의 전경들이 시위대에서 불과 몇발짝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대체로 최소한 75명의 정복경관들이 그곳에 있었다.

대오를 유지하며 이동을 거부한 사람들이 두명 이상 추가로 체포되었다. 현장에 있던 기마경찰의 말에 다르면 체포된 9명은 ‘경찰의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되었다고 말했다. 10번째 체포는 시위가 끝나고 해산할 때 벌어졌다. 오타와 경찰이 몬트리올의 한 활동가를 숨어서 기다려 그의 얼굴에 최루가스를 뿌린 것이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는 바리케이트 근처에 있던 한 경찰의 털모자를 잡아 군중속으로 던져버린 혐의로 체포된 것이라고 한다.

많은 의회담당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 몇년동안 전경이 국회 앞에 배치된 것은 어제가 처음이라고 한다. 전경의 배치는 더우기 이미 무주택문제로 분노한 군중들을 더욱 성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거나 심지어 죽어간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알고 있었다. 군중들의 분노와 좌절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경찰기동대와 간부들, 그리고 시위대 사이에서 긴장관계가 계속되고 있을때, “우리는 무언가를 얻지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고 티엔디나가에서 온 숀 브랜트는 말한다. 티엔디나가 시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한 관심사는 아이들이 있는 복지수혜자들에게 주었던 보조금을 삭감한 조치이다. 온타리오에서 아동세금혜택을 받는 복지수혜자들은 매달 50달러의 혜택을 삭감당했다. 이 정책은 2500명으로 구성된 티엔디나가에 있는 부족에게 커다란 손해를 끼쳤고 브랜트의 말에 따르면 온타리오에 있는 수천, 수만명의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시위대가 의회 건물에서 쫒겨나는가를 물었을때 캐나다기마경찰의 언론대변인은 그들이 ‘너무 시끄럽고 무질서’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마침내 리비 데이비스가 이끄는 대표단이 이미 허가된 기자회견을 위해 건물에 들어갔고, 권위있는 언론들은 무주택자들과 시위 조직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대표단은 또한 수상의 사무실을 방문하였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위가 끝날때까지 수상관저에서는 어떤 공식적 반응도 없었다.

“우리정부는 거만과 무지의 산물이다”라고 OCAP의 조직자 수 콜리스는 의회건물에서 나오며 말한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정부가 아니며 싸워야 할 대상이다”라고 덧붙인다.

이번 시위의 조직자들은 만약 그들의 요구안이 다음주말에 발표된 예산에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을 경우 더욱 배가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맹세한다.

오타와의 시위가 끝난 얼마후 밴쿠버에서 또다른 시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사회운동가들과 무주택자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오펜하이머 공원에 모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밴쿠버성희롱방지위원회와 빈곤퇴치네트워크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공동체 발언자들의 연설을 들었다. 성희롱방지위원회의 발언자는 영구임대주택의 부족으로 인해 일부 여성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많은 여성들이 종종 적당한 주거환경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불평등한 관계에 속박 당하곤 한다고 말한다.

빈곤퇴치네트워크에서는 오타와에서 만들어진 요구안에 두가지를 추가했다. 첫째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부과이고, 두번째는 밴쿠버의 영구임대주택 분양시 만연하고 있는 족벌주의와 편파주의를 없앨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시위대는 거리로 나갔고 해스팅 거리를 따라 밴쿠버 시내로 향했다. 최고조에 달했을때 100여명의 사람들이 거리시위에 참여했다. 행진은 주요 건물을 점거하기 위해 50여명이 먼저 도착해 있는 뷰라드와 펜더거리의 교차점에 위치한 캐나다 국세청 사무실 앞에서 끝났다.

사무실은 일찍 닫혔고, 보도에 따르면 국세청 사무실 직원들은 점거자들을 내쫒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금지명령을 받으려했다. 몇시간 후 25명의 핵심간부들이 남았고, 그로부터 약 8시간 후 점거는 끝났다. 점거가 진행되는 동안 음식 반입이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이번 시위와 점거가 노래와 춤, 그리고 많은 어린이들의 참여로 축제 분위기였다고 말한다. 조직자들에 다르면 이번 시위와 점거에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주택자 문제를 가까운 장래의 문제로 인식했고 빈곤퇴치네트워크의 포스터 슬로건에 적힌 것처럼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라는 말에 공감했다.

빈곤퇴치동맹의 조직자 티나 알스터는 점거 진행중에 “주택문제의 해결책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시행하지 않을 뿐이다.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 않는 수많은 여분의 주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오타와, 밴쿠버에서 있었던 11일의 시위는 빈곤퇴치네트워크가 토론토와 몬트리올에 있는 빈곤퇴치그룹들과 함께 준비한 첫 연대시위였다. 앞으로 빈곤퇴치네트워크와 온타리오빈곤반대동맹, 그리고 실업자위원회는 앞으로도 함께 공동계획을 준비할 것이며, 특히 가난과 인류의 불행에 대한 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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