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 날 특별행동
1999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WiPC는 전통적으로 박해를 받아왔던, 그리고 이 사건들에 대한 대중적 홍보가 이들을 이롭게 할 수 있을, 여성 작가와 기자들의 소송사건들에 활동의 초점을 맞추어왔다. 많은 단체들은 언론 관계자 가운데 탄압당하고 있는 여성작가들의 사례를 요청해 왔으며 올해, 우리들은 네명의 여성 기자들의 소송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가리아, 파키스탄, 쿠웨이트. 이들 사례들은 서로 다른 세 곳에서 벌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상이한 침해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 사건이나 다른 사건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우리들과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나지다 사라 비비
나지라 사라 비비는 아프가니스탄 언론인이며 여성운동가로서 지난 8년간 북부 파키스탄 페사워 지방에서 망영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몇 달 그녀는 알수없는 괴한들에게 계속적인 학대와 습격을 당해 왔는데 그들은 아프카니스탄에 거주하는 탈레반 군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녀는 북부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많은 언론인들 가운데 한명으로 지난 몇 달간 계속되는 위협과 습격을 당해왔는데 이는 탈레반 정책에 대한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현해왔던 그녀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탈레반 정부는 이러한 탄압행위에 대해 어떤 책임도 회피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는 이러한 탄압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진지한 조치들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1998년 10월 6일 나지다 사라 비비는 페사워에 있는 시장으로 가던 도중 두 명의 알 수 없는 괴한에 의해 피격당했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그녀는 상처입지 않고 도망쳤다. 3개월전, 그녀는 그녀의 신념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6명의 괴한과 대치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수많은 협박편지를 받았다: 이것들 가운데 1998년 9월 25일 받았던 편지의 겉봉투는 아프가니스탄 내무부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으며 1998년 10월 4일자로 보내진 또다른 편지는 탈레반 정보국장의 서명으로 보내졌다.
나지다 사라 비비는 BBC 세계 방송의 “교육적 드라마”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에서 시간제 조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전에는 파사토(아프가니스탄어를 파사토라고 함) 신문 “헤와드”에서 일했으며 그녀가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카불 대학교 교수였던 그녀의 남편은 바브락 카말의 통치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형당했다. 비비는 지금 그녀와 자식들의 생명의 안전을 위협받고 있으며 경찰에 보호를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총리에게 항의서한을!
His Excellency Prime Minister Nawaz Sharif
Islamabad,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Fax : 92-51-920-5532 / 920-8890 / 920-1545
■ 불가리아 요프가 아타나소바와 타티아나 팍스버그
요프가와 타티아나는 최근 몇년간 명예훼손죄로 재판에 회부중인 200명의 저널리스트들 가운데 일부이다. 아직은 아무도 투옥되지 않았지만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법원에 의지하려는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수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아타나소바는 스타라 자고라 지역에서 발간되는 “스타로자고르스키 노비니”신문의 편집장이다. 15년 경력의 신문기자인 아타나소바는 지난 2년간 12건의 법률소송에 연류되었으며 그 가운데 다섯건은 총 14개월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녀의 범죄요건은 형법 146조, 147조, 148조에 연관되어 있는데 이는 모독과 비방죄로 최대 3년의 실형이 판결될 수 있다. 그녀는 현재 재심 상태에 있다.
아타나소바에 대한 모든 범죄 요건은 부패 의혹에 대한 그녀의 신문보도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보도 사실의 진위 여부에서가 아니라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보도했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최근 자유 유럽 라디오 방송 기자인 타티아나는 형법 146조와 148조의 남용 가능성으로 인해 조사중에 있다. 그녀의 “범죄”는 불가리아 검찰총장이 범죄자들이 면책특권을 가지고 1998년 10월 라디오 방송에서 행동하도록 허가한 사실을 비난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즉각 그녀를 모독과 타인에 대한 명예실추에 관련지어 법적 소송에 처할 것을 명령했다. 1월 14일 조사가 착수되었으며 법률청문회가 개최된다면 그녀는 2년간의 실형에 처해질 수 있다.
200명의 불가리아 기자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소송들은 약 4000명의 사람들이 아타나소바를 지지하는 청원서에 서명하는 항의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다. 불가리아 의회 내에는 다음의 법정진술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는 56명의 의원들에 대한 깊은 우려가 상존한다. ” 20세기말에 불가리아 기자들이 인권과 자유의 보호에 어긋나는 제재에 관련될 수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내시오:
-형법 146,148조에 관련된 요프카 아타나소바, 타티아나 팍스버그와 다른 기자들에 대한 법적 소송에 대한 취하를 요구할 것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합법적 실천으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법률의 재심사를 요구할 것
Presient Petar Stojanov(페타르 스토자노브)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Bulgaria
fax : 3592-987-5601
■ 쿠웨이트 이브티삼 베르토 술라이만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에 대한 침공에 앞서, 그녀는 쿠웨이트 신문인 “알 카바스”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당시 신문은 정간되었으며 이라크가 통제하는 “알 나다” 신문으로 대체되었다. 그녀는 이라크군과 협력하기를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어떤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차례 구금되었으며 그녀가 협력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은 비극적 결과에 직면해야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알게되었다.
이라크의 패배이후, 쿠웨이트 정부는 협력관련자들에 대한 많은 소송을 제기하였으며 이 가운데에는 “알 나다”의 제작진들 역시 포함되었다. 알-다크힐 같은 사람들은 쿠웨이트인이 아니었으나 특별히 혹독한 판결에 처해졌다. (알-다크힐은 한때 쿠웨이트인과 결혼했으나 그의 태생은 이라크인이다) 1991년 6월, 군사법원은 그녀와 그녀의 다섯명의 동료들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 판결은 후에 종신형으로 대체되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 소송을 명백히 불공정한 것으로 규정했다: 변호사들은 그들의 소송인에 대한 접근을 금지당했으며 몇 명은 고문으로 강요된 자백으로 유죄판결 받았다. 모든 관련자들은 항소권리를 부정당했으며 이는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제적 기준에 위배되는 사실이었다.
동일한 소송으로 10년형을 구형받았던 또다른 네명의 여성들이 사면되었다. 그러나 알-다크힐은 쿠웨이트 중앙 교도소에 감금되어 있다; 명백하게 모든 이라크인들이 유사하게 감금되어 있으며 이들이 사면될 경우 이들은 이라크로 추방당할 것이다- 이는 알-다크힐이 피하고 싶어하는 운명이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그녀의 가족과 전화통화할 것을 허락받았으며 양호한 건강상태에 있다고 보고되었다. 그녀는 국제사면위원회 양심수이다.
쿠웨이트 국왕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시오:
-쿠웨이트정부의 알-다크힐에 대한 조기석방을 촉구하고 추가적으로 그녀가 사면될 경우 그녀의 의지에 반한 추방을 금할 것을 촉구하시오
주소
His Excellency Shaikh Jaber al-Ahmad al Sabah
Amir of the State of Kuwait, Kuwait
fax : 965-539-6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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