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1년동안 햇볕정책을 펴왔음에도, 북한은 적대적 태도와 때에 따라 금전적 지원에 대해선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협조하는 제스처를 번갈아 취하며 여전히 남한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의 남한에 대한 두 차례의 간첩침투, 지난 해 8월 인공위성 발사, 현대금강산 유람선에 대한 12시간 동안의 상륙지연 등과 같은 도발에도 인내심과 확신을 갖고 햇볕정책을 고수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남북관계 증진은 오직 점진적으로 수년에 걸쳐 이뤄질 것이며, 정치적 관계의 개선보다는 경제적 접촉의 발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김 대통령의 판단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현재와 같은 과도기에 평양이 때때로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서울은 자동적으로 즉각적인 보복을 하던 악순환을 피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장기적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북한의 행동은,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이 변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김일성의 사망, 옛 소련과 중국이 도와주던 냉전체제의 붕괴, 워싱턴과 서울이 북한의 붕괴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 등에서 오는 깊은 불안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북한은 김 대통령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남한이 여전히 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다는 뿌리깊은 의심을 갖고 있다.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햇볕정책이란 김 대통령 이전의 조악한 방법에서 이젠 훨씬 더 교묘하고 영리한 방법으로 흡수통일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달리 북한의 붕괴를 주창하거나 예측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햇볕정책이 북한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솔직하게 설명해왔다.

북한 지도자들에게 `개혁’은 현재의 북한 지도층을 남한과의 의존적인 경제적 관계 속에서 탄생한 남한종속적인 새로운 지도자들로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 북한 지도자들에게 개혁은 북한체제의 붕괴만큼이나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평양은 남한의 현금유입과 투자, 다른 경제적 도움을 열렬히 원함에 도, 여기서 발생하는 경제적 의존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거래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면밀히 검토한다.

김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북한이 태양의 따뜻함을 느끼면 통제 경제라는 답답한 겉옷을 벗어던지고 체제를 개혁할 것이는 말로 햇볕정책을 설명한다. 이것은 심각한 전술적 오류이다. 이런 설명이 남한 국민들이나 외국인들에게 햇볕정책을 설득시키는 데는 유용할 지 모르지만, 북한에는 심각한 역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설명은 쉽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김 대통령의 말은 정경분리 정책이 장기적으로 북한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직접’ 선택한 방식과 `속도’로 체제를 변화시키도록 자극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적 통제권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하는 북한 지도층의 욕구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북한은 햇볕정책의 메시지를 자신들의 정치구조를 전복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내 생각으로는 김 대통령의 정책은 그가 지난 40년동안 느슨한 국가연합 개념을 주장하면서 해 온 것처럼, 이질적인 정치·경제 체제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할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새로운 정책에 대한 국내의 반발에 직면하자 일시적으로 그의 오랜 주장의 어조를 낮춤으로써 그의 발 언을 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의 가장 중요한 실례가 오랫 동안 그의 대북 정책의 핵심이었던 국가연합 개념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느슨한 국가연합이란 그의 개념은 중앙집권화된 연합체, 즉 실제로는 연방제를 의미하는 북한의 제안과는 다르다. 북한의 방안과는 대조적으로 김 대통령의 방안은 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한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모방했던 것으로, 남북한이 각각의 군대를 보유하고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남한의 인구가 많음에도 동등한 수의 대표들로 구성된 남북평의회를 구상했다. 이런 남북한 사이의 동등성의 원칙은 김 대통령의 대북 방안의 중심을 이룬다. 북한이 자신의 고려연방제와 다름에도 이들 두 제안을 논의하도록 하는 등 이들 제안에 호의적으로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남북평의회는 가령 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남북공동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협력 확대 과정을 구조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평의회는 남북공동위원회와 한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평의회 본부에 `한민족(코리아)’ 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국가연합 구조 속에 동등한 수의 대표들을 인정함으로써, 서울은 서로 다른 두 체제의 무한한 공존을 인정함을 보여줄 수 있고 이는 남한과의 협력을 지지하는 북한의 실용주의 세력과의 유대관계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고위급 남북 접촉이 올해안으로 현실화된다면 김 대통령이 국가연합 구상을 재확인하고 그 예비단계들을 논의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이산가족 상봉 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아주 천천히 진전될 것이다. 평양은 남한과의 관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부유한 남한사람과 북한의 가난한 친척이 접촉하면서 북한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금전적 보상은 북한 정부로 하여금 제한된 상봉을 주선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촉에 대 한 북한의 저항감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상황, 특히 식량사정이 호전되고, 국가연합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김 대통령이 집권한 지 1년밖에 안됐으며, 냉전시대로부터 물려 받은 미국과 일본의 진부한 정책들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 한다면 김 대통령은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한 기초를 놓고,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한국민의 여론을 재형성하는 데 괄목할만한 출발을 시작한 것이다.

북한이 정치적 수준에서 김 대통령의 선의의 몸짓에 화답하고 있지는 않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평양에서 극히 이례적으로 지극히 영접함으로써 햇볕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주영 회장을 부르는 대신에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을 방문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은 조건만 좋다면 남한과 더 많은 경제적 협력을 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김 대통령의 잔여임기동안 햇볕정책의 성공을 재는 척도는 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해 북한이 의미있는 정치적 대화에 참여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의 기준은 북한이 남한사람의 투자와 기타 경제적 협력의 실질적인 유입에 대비해 준비를 하는 지에 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빗장을 열고,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가 진전된다면, 남북의 정치적 분위기도 개선될 것이고 김 대통령 이후의 정권들도 점증하는 민족정서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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