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는 라틴 아메리카
오늘날의 사회주의(Socialism Today) 3월
브라질 헤알 위기의 엄습은 안정과 성장의 새로운 새벽이 시작했다는, 이 대륙 지배계급들의 꿈에 종말을 고했다. 노동자 인터내셔널 위원회의 토니 소누와 사무국장은 이 대륙의 위기가 가져올 개연성있는 결과들에 주목하고 있다.
사웅 파울루 포드 공장의 2,800여 노동자들에게 1998년의 크리스마스는 12월 24일, 고용주로부터의 정리해고 통보 편지와 함께 시작했다. 새해는 모든 해고 노동자들의 출근 투쟁 및 해고 거부 투쟁과 함께 시작했다. 일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두 번의 지지 시위에 참여했다. 동시에 미나스 제라이스 주는 연방 정부에 채무 지불 유예를 통고하고, 헤알화의 평가절하에 시동을 걸었다. 지금까지 헤알화는 미국 달러화에 연동되어 있었다. 그 이후 헤알화의 가치는 약 50%까지 떨어졌다. 브라질과 이 대륙의 나머지 국가들에게 위기는 이제 겨우 시작인 것이다.
이번 재난과 지역 전반에 걸친 영향의 규모는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 브라질은 세계 여덟번째의 경제 규모를 갖고 있으며, 이 지역 총 생산의 40%이상을 점하고 있다. 이번 위기는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더 큰 충격을 유발할 것이다. 십년 이상 라틴 아메리카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성공적인 적용 사례로 꼽혀 왔다. 무역 관세는 낮아져 왔고, 메르코수르라는 남미공동시장이 형성되었다. 라틴아메리카 판 유럽연합으로 성장할 거라는 메르코수르의 전망은 일련의 자본주의 주석가들에 의해 떠들썩하게 이야기되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이 대륙에 휘몰아쳤던 초(超) 인플레이션의 악몽은 ‘건강한’ 통화 정책과 민영화를 통해 일소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성장률 신기록이 세워졌고, 칠레는 10년 이상 매해 평균 7.8%의 성장을 기록했다. 칠레는 라틴 아메리카의 ‘호랑이’로 받아들여졌다. 1992년까지 이 나라는 일인당 구매력에 있어서 117개국 중 서른 네번째 위치에 도달했다.
이제, 세계 경제의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여 이러한 ‘발전들’은 다시금 무위로 돌아갈 상황에 처해있다. 이 발전 기간 동안 새로운 모순들이 이 지역에 축적되어 왔고, 이제 새로운 충돌과 격변들로 폭발할 것이 확실시된다.
빈곤과 불평등
그 동안 달성된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부간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으며, 대중의 빈곤은 경감되지 않았다. 심지어, ‘호랑이’라 불린 칠레는 소득 분배가 불공평한 상위 십개국 안에 끼어 있다. 이 나라에서 국가 소득의 50%는 최상위 부유층 10%에게 돌아가며, 다른 50%의 소득이 나머지 90%의 인구에 분배된다. 생산성은 60%까지 증가했지만 실질임금은 여전히 1972년의 살바도르 아옌데 인민연합 정부 때의 수준을 밑돌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전체 노동력의 50% 이상이 하루 미화 2달러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최상위 부유층 10%가 총소득의 50% 이상을 가져간다. 토지 소유의 엄청난 집중은 세계 최악으로 간주된다. 이 사실은 남미 최고의 경제력을 가졌다는 이 나라의 부가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일 퍼센트의 지주들이 경작 가능 농장의 44%를 통제한다. 인구의 3% 미만의 사람들이 브라질에서 경작 가능한 5억 헥타 농토 중 거의 삼분의 이를 점유하고 있다. 이 층계의 맨 밑바닥에는 53%에 달하는 농부들이 2.6%의 토지에서, 살아간다기보다는 생존을 연명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인구의 대부분은 지난 시기의 경제 성장으로부터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전 대륙을 통해 인구의 약 65%가 빈곤 상태에 살고 있다고 추산된다. 이런 평균적인 수치는 볼리비아나 파라과이, 페루 등 몇몇 최빈국들에서 진행되어 온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선 말하고 있지 않다. 볼리비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이며, 인구의 70% 이상이 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으며, 기대 수명은 60세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빈곤의 증가와는 별개로, 군경 독재체제의 종말은 여전히 억압에 대한 투쟁, 민주적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이 지역의 소위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많은 국가들이 의회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것은 국가나 비공식적인 백색테러단의 탄압과 병존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런 것들을 은폐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정권은 ‘선거를 통해 집권’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선거를 통해 집권’한 독재정부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군대는 여전히 대학을 점거하고 있으며, 테러리즘에 대한 투쟁이라는 명목아래, 대학에서 맑스주의는 금지되어 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 1990년이래 천여 명의 ‘땅없는 사람들의 운동(MST: the Movimento Sem Terra)’의 활동가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고 카톨릭 교회는 추산한다. 아르헨티나 경찰은 여전히 거리에서 ‘이상하게 걷거나’, ‘의심스러워’ 보이는 행인들을 구속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아직도 젊은이들과 활동가들에 대한 수많은 고문과 구타가 존재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민영화 정책은 외국계 다국적 기업들의 민영화된 경제 부문 매입과 함께 지역 전반에 걸쳐 제국주의 세력들의 통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브라질 헤알화의 붕괴는 즉각적으로 메르코수르 내에 긴장과 분쟁을 촉발시켰다. 유럽적 관점에서 이것은 1992년의 유럽 환율조정장치(ERM)의 붕괴에 비견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독일 마르크가 40% 절하될 때와 좀더 유사하다.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제 메르코수르를 위한 장송곡이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가 아르헨티나에 미친 첫번째의 주요한 영향은 대 브라질 수출이 30% 감소한 것이다. 수출은 이미 비용 증가로 인해 극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동시에 값이 싸진 브라질 상품들이 아르헨티나로 밀려들고 있다. 물론 수출이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의 겨우 8%만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화학, 철강, 자동차생산, 모터, 섬유 등 이 나라 경제의 중요산업 전반이 이 위기의 영향권 하에 있다. 화학 산업 분야의 수출은 작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30%가 감소했다.
‘반덤핑’이나 관세 인상 등의 조치 도입에 관한 사항들이 메르코수르 긴급 정상회담에서 제기되었다. 정상들은 값이 싸진 브라질 수출품들의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몇 가지 완화된 통제 조치의 도입은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의 한 조짐이다. 이런 조치들은 사실 메르코수르가 공동시장의 건설을 통해 제거하려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각 나라의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해야한다는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현재까지 수출을 제한하고자하는 정책들에 대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은 수출 증가를 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국내 경제에 대한 평형추로 삼고 싶어하는 것이다.
달러 의존
위기의 강도는 까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제안으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메넴은 아르헨티나의 통화로 미국 달러를 도입해야한다-소위 아르헨티나 경제의 ‘달러화(dollarisation)’-고 제안했다. 이것은 현재 미 달러화에 일대일로 연동된(pegged)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절하 가능성을 없애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똑같은 제안이 1998년 하반기 페소화의 급격한 절하 이후 최근 메히꼬에서도 제기되었다.
메넴은 브라질을 덮친 위기의 영향으로부터 아르헨티나를 미리 차단하고, 북미자유뮤역협정(NAFTA)과 ‘안전한’ 미국 경제를 향해 자국 경제를 몰아가고 싶은 것이다. 사실, 만약 세계 경제가 실질적인 성장세에 있고, 아르헨티나가 급속히 확장하는 과정에 있다면, 아르헨티나 경제의 ‘달러화’는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 경제는 불황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헤알 위기의 영향이 감지되기 전에 이미 올해 성장률 제로라는 전망에 직면하고 있었다.
만약 ‘달러화’가 현실화된다면, 이것은 아르헨티나나 메히꼬를 조금 큰 푸에르토리코보다 나을게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즉 경제 정책 결정권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 넘기고, 오직 훨씬 더 커진 경제적 불안정성과 사회적 격변만이 남겨진, 미 제국주의의 준주가 될 뿐인 것이다. 하지만 미 제국주의는 결코 어느 나라도 이런 상태 속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달러화’ 정책은 아르헨티나나 메히꼬, 미국의 상이한 경제적, 정치적 차이들로 말미암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될 수밖에 없다. 이들 사이의 차이는 유럽통화연합(EMU)내에 존재하는 차이들보다 훨씬 크다.
또한, ‘달러화’를 진행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정치적 혼란과 동요를 불러일으킬 것이 확실하다. 아르헨티나와 메히꼬는 특히 독립 투쟁과 제국주의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이것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전복하고자 하는 노동 계급에 의해서만이 성취될 수 있는 과제이다.
이들 나라에서 지배계급의 중요한 몇몇 분파가 그런 제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반영한다. 먼저 이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의 국제화와 이들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의 확장을 의미한다. 국내 자본가 계급이 얼마나 제국주의 세력에 굴종적인지를, 그리고 제국주의의 지배와 통제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 결코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메넴과 메히꼬 지배계급의 절망을 의미한다. 위기의 진행과 함께 그들이 직면한 운명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채무 위기와 불황이 심화되면 브라질 헤알화는 분명 좀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브라질 헤알화가 좀더 하락하게 되면 아르헨티나 페소화 역시 미 달러화와의 연동에서 떨어져 나와(unpegged) 평가절하의 길을 걸으리라는 것이 확실시된다. 이것은 메넴의 경제 정책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게 될 것이다. 현재 메넴은 그런 전환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페르난도 카르도수 브라질 대통령 역시 그의 정부가 실제로 평가절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이를 인정하길 거부했었다. 1994년 시작된 헤알화의 미 달러화에 대한 연동이 카르도수의 경제 계획의 중심축 중의 하나였으며, 이것이 그의 재선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 기억될 필요가 있다. 그의 정부는 헤알을 지탱하는 데에 외환 보유고를 더 소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브라질 정부는 1994/95년의 메히꼬 위기로부터 뭔가를 배웠던 것이다. 당시 메히꼬 정부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까지 페소화를 지탱하기 위해 자국 외환 보유고의 거의 대부분을 소모해 버렸었다.
브라질의 외환 보유고는 1998년 8월의 700억 달러에서 1999년 1월 중순에는 300억 달러로 감소했다. 평가절하와 공황, 실업 그리고 채무 지불 유예가 뒤이었다. 카르도수에 대한 지지는 그가 1999년 1월 대통령으로서의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급락했다.
만약 메넴이 평가절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다면, 아르헨티나에 있어서 그 영향들은 브라질의 경우보다 훨씬 더 파멸적일 것이다. 그가 자국 통화로 미 달러화를 채택하자고 제안한 것은 부분적으로 이런 절망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메넴의 페론주의운동당(Peronist movement)은 올 경제 전망치들이 경제성장률 0%라는 예측만을 내놓는 가운데 1999년 가을의 대통령 선거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심지어 이런 예측은 헤알 위기가 이 나라 경제를 강타하기 전에 나온 것이다.라틴 아메리카 남부의 나머지 국가들로 이번 위기가 확산되리라는 전망은 국제적으로 지배계급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이번 위기가 세계 경제에 미칠 여파 때문이며, 또 부분적으로는 위기로 인해 야기될 것이 분명한 사회적, 정치적 격변 때문이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 총 수출의 18%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 국경 남쪽의 공황은 미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은행들은 라틴 아메리카에 64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풀어놓고 있으며, 이것은 그들 자본금의 17%에 이른다. 유럽 은행들의 경우는 이보다 더하다. 1,550억 달러, 자본금의 23%를 라틴 아메리카에 쏟아 놓고 있는 것이다. 공황의 심화와 함께 지급 정지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금융 시장 측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통용되던 동안의 논의들(agenda)로부터 이미 사라졌다고 간주되었던 위협이다. 미나스 제라이스 주가 통고한 채무 지불 유예조치는 퇴각하고 있던 이 유령을 다시 한번 불러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일개 주뿐만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정부들과 나아가서는 이전 식민지였던 나라들 모두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미나스 제라이스 주는 주민 수가 1억 6천 6백만이나 될 정도로, 웬만한 나라에 버금간다. 브라질에서는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두번째로 큰 주이며, 지역 총생산이 500억 달러에 달한다. 연방 정부에 대한 채무 지불은 미나스 제라이스 주로서는 31만 8천명의 주 공무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민주의 정치
브라질의 27개 주 대부분이 같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것은 브라질이 국가적으로는 9%의 재정 적자 누적과 함께, 주의 수준에서 직면한 문제이다.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채무 지불 유예는 주지사 이타마르 프랑코에 의해 단행된 것이다. 카르도수의 전 동료이기도 했던 프랑코는 집권 연립 여당(PMDB) 소속으로 당선됐었다. 자본주의 정치가로서 그는 사회적 동요를 유발시키는 것을 두려워했고, 위기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는 인민주의적 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한 2002년의 다음번 대선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의 이유에서) 주 정부나 국가 차원에서도 채무 지급 정지라는 수순을 따르게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전직 군장교이자, 불발된 쿠데타의 지도자였던 위고 챠베스가 1998년 12월의 선거에서 권력을 잡았다. 이 나라의 경제는 부패와 세계 석유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황폐화되어 왔다. 그의 공약에는 자본 통제의 도입, 비민주적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개헌 의회의 선출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석유 수입을 산업, 및 농업 보조금으로 돌리며, 사회 보장 지출을 늘린다는 약속도 있었다.
선거가 끝난 후 이런 공약들은 제국주의 투자가들과 자본가들을 달래기 위해 완화되었고, 그것은 주식 시장에서 잠시 동안 주가가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12월이래 주가는 30%가량 떨어졌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브라질 위기의 결과이며, 또한 부분적으로는 새 정부가 이번 위기로 보다 ‘급진적’이고 인민주의적인 조치들을 채택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챠베스에 의해 제출된 것과 같은 인민주의적 정책들은 이번 위기의 영향하의 어떤 국면에서는 틀림없이 채택될 것이다. 이것은 지난 10년에서 15년의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상황들에 중대한 변화가 왔음을 의미한다. 경제 성장과 세계 시장의 지배는 모든 정부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라는 똑같은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해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 위기의 영향, 그리고 사회적 동요의 위협은 정책상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한계에 구속받는 이상, 그런 정책들은 노동계급과 여타 착취당하는 계급들이 직면한 대중적 빈곤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방향으로는 그 어떤 정책상의 변화도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이나, 브라질의 제툴리오 바르가스의 오랜 (인민주의적) 개혁 시절로의 복귀를 담보해 내지 못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위기의 시기에 인민주의적 정책들은 지속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수행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계급에 대한 더한 공격들로 전화될 뿐이다.
브라질 여러 주들의 채무 위기와 산업적, 상품적, 경제적 이해 관계상의 몇 가지 다양한 요소들은 또한 몇몇 주들에서 자율성에 대한 보다 많은 요구의 제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만약 위기가 심화된다면 이것은 브라질의 근본적인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정부는 미나스 제라이스 주에 부분적인 구제 조치를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양보는 다른 주들이 똑같은 태도를 취하도록 자극할 뿐이다.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이런 행동과 때를 같이 해 사웅 파울루의 포드 공장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 노동자들은 모터 산업과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땅없는 사람들의 운동(MST)’ 역시 새롭고 공격적인 토지 점거를 준비하고 있으며, 학생들과 대학 강사들도 투쟁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웅 파울루의 실업은 공황이 시작하면서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1998년의 북동 지역 토지 점거와 함께, 굶주린 사람들은 아사하지 않기 위한 자구책으로 슈퍼마켓들을 약탈하기도 했다.
위태로운 대통령들
카르도수는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두번째 임기를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시작했다. 그는 작년 10월 소위 ‘안전 제일’이라는 분위기 속에 당선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러시아와 아시아를 강타했던 국제적인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부터 브라질 경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길 희망하며 그에게 투표했다. 카르도수의 공약은 브라질을 초 인플레이션의 수중에서 빼냈다-그렇다고 그는 주장한다.
노동자당(PT: Partido dos Trabalhadores)의 지도부와 그 대통령 후보였던 룰라(Lula da Silva)는 카르도수에 대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으며, 그의 주장 대부분을 수용했다. 그러나, 선거 후 카르도수는 사상 가장 짧은 ‘밀월기간’을 누렸을 뿐이다. 그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자마자, 위기가 몰아쳤다. 사웅 파울루에서 여론 조사가 있었고, 이제 70%가 카르도수가 경제 위기에 대한 통제를 잃었다고 믿고 있다. 59%는 카르도수가 헤알을 평가 절하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그들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카르도수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의 50%는 만약 선거를 다시 한다면, 그때는 그를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위기의 여파로 브라질은 올해 동요와 혼란의 새로운 파도에 휩쓸릴 위험에 처해 있다. 1992년의 상황처럼 카르도수 퇴진 운동이 돌발할 가능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군부 독재 후 민주적으로 선출된 첫 대통령이었던 콜로르는 당시 퇴진 운동에 밀려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가는데 있어서 주된 장애물은 노동자당(PT)과 강력한 노조연합체인 브라질 노동총동맹(CUT: Central Unica dos Trabalhadores)의 지도력 부재이다. 노동자당 지도부가 현재의 위기에 직면해 정부에 대한 반대를 천명하기는 했지만, 또한 카르도수의 ‘통치권’을 흔드는 그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노동자당과 노동총동맹(CUT)은 1992년에도 처음에는 콜로르 퇴진 운동을 지지하지도 이끌어 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중의 움직임이 격화되자 어쩔 수 없이 퇴진 운동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주에서는, 특히 당이 보다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세력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상황이 다시 벌어질 지도 모른다.
노동자당 지도부의 우경화는 이미 당내 분쟁을 유발했다. 하지만, 노동자당이 유럽의 사민당들이나 칠레 사회당(PSCh: Partido Socialista Chileno)처럼 전적으로 자본주의에 포섭된 자본주의 정당으로 변모할 지는 아직까지 분명치 않다. 1998년 말 룰라가 당에 알리지 않고 카르도수와 비밀 회동을 가졌을 때 당내에 상당한 분란이 있었다. 위기의 맹습이 더 이상의 분란 진행을 중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또한 노동자당을 분열로 몰 수도 있다.
위기에 직면하여, 브라질에서 벌어지는 여러 움직임들은 올해 말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도 역시 격변이 임박했음을 시사해준다. 메넴과 페론주의자들은 그의 삼선이 가능하도록 헌법 개정을 획책하고 있다. 그에 견줄만한 다른 대안이 없음으로 인해 그가 다시 당선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황 상태가 선거전까지 심화된다면, 노동자들이 그를 단죄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아르헨티나 메넴의 페론주의 정부가 채택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메넴주의(Menemismo)은 민족주의적 페론주의 운동의 인민주의적인 역사적 지반을 침식해왔다. 이런 사실은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새로운 노동자 대중 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민중들의 투쟁을 성공적인 결말로 이끌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폐절을 목표로 하며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을 가진 새로운 노동자 대중 정당이 필요한 것이다.
이 대륙 전역에서 기존의 노동자정당들은 아르헨티나의 페론당같은 급진적 우파 운동과 마찬가지로 시장과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왔다. 기존의 노동자정당들은 그들의 지반을 잃어왔지만, 새로운 노동자정당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메히꼬의 민주혁명당(PRD: Partido Revolucionario Democratico)의 등장은 70년 이상 집권해 온 제도혁명당(PRI: PartidoRevolucionario Institucional)의 약화를 의미했다. 민주혁명당은 처음 급진적이고 인민주의적인 당으로 출발, 어느 정도 좌경적 색채를 띠었지만, 곧 다시 우파쪽으로 돌아섰다.
노동자들의 대중운동과 치아빠스 원주민들의 사빠띠스따의 성장에 직면, 제도혁명당은 약화, 분열하기 시작했다. 1994/95년의 위기는 이것을 더욱 촉진시켰다. 하지만 민주혁명당 역시, 비록 최근의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제도혁명당의 ‘민주적’ 부위의 역할로만 자신을 점점 더 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당 지도부의 대부분과 선거 때의 많은 후보들은 제도혁명당으로부터 거부당한 사람들이다. 메히꼬 위기 상황에서 전면에 떠오른 것은 원주민들의 투쟁과 치아빠스의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 Ejercito Zapatista de Liberacion Nacional)이다.
투쟁과 전술
이런 투쟁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보다 전투적인 기반 위에서 되풀이될 것이다. 바로 농업 부문과 농부들, 농촌노동자들에 미친 위기의 파멸적 영향 때문이다. 페루나 볼리비아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새로운 게릴라 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다. 치아빠스 주와 메히꼬의 다른 주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근 사건들과 칠레 남부 마푸치 인디안들의 토지 점거는 최빈곤층인 원주민들의 권리에 대한 쟁점들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와 문화, 토지 등에 관한 권리와 자치에 대한 요구들이 여러 투쟁들 속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존의 노동자정당들처럼, 콜롬비아의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Fuerza Armada Revolucionario Colombiano)이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Frente Sandinista Liberacion Nacional)같은 게릴라 조직들도 시장과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메히꼬의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비록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는 있지만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자본주의를 요구하며 ‘시민사회’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제적 정세의 변화와 위기에 직면하여, 임박한 투쟁은 지난 10년보다 훨씬 더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현 위기의 여파는 콜롬비아에서 생생히 목격된다. 평화 협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자본주의는 마약 카르텔과 결합해 있으며, 만 오천명의 전투원을 가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을 포함, 대부분의 게릴라 조직들도 마찬가지이다. 게릴라들은 프랑스 영토의 두배나 되는 이 나라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계속되는 전쟁은 콜롬비아를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곳으로 만들었으며, 매해 이만 칠천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러한 재앙은 만약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지 못할 때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이 처할 위험들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부패와 경제 황폐화의 참혹한 결과들은 최근의 지진에서도 관찰된다. 구조대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장비의 일부만을 갖췄을 뿐이었다. 생존자들은 자구책으로 슈퍼마켓을 약탈할 수밖에 없었고, 백색테러단들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엄습한 위기는 1994/95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국제적 상황 속에 진행되고 있다. 이제 지배계급은 당시 그들이 견지했던 낙관주의와 자신감을 잃었다. 이 위기는 바로 자본주의의 지구적 위기를 뜻한다. 노동계급은 그들 자신의 독립적이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더욱 강하게 낼 것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한때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노동자당을 자랑하던 칠레를 예로 들어보자. 칠레 사회당(PSCh)은 현재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지지했던 기독교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열정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사회당은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예비 선거에서 자당 출신 대통령 후보가 선출될 정도로 사실상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피노체트의 체포가 경제 위기의 엄습과 함께 런던에서 돌발적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칠레 노동자들에 있어서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칠레의 지배계급이 ‘이행기’ 동안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이 다시 불거져 나온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올해 말로 다가오는 한편, 정부의 지출 삭감은 교사 및 보건 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을 유발했다. 연립정권의 유력한 후보는 칠레 사회당의 위성정당(satellite)인 인민민주주의당(Partido Popular Democratico)의 리카르도 라고스이다. 그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피노체트의 체포에 대한 입장을 옹호했으며, 노동계급에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그가 말했다시피 그는 ‘아옌데와 인민연합의 전통보다는 현정부의 입장에 충실한’ 것이다. 여론 조사에서 드러난 그의승리 예측은 주로 극우파 후보에 대한 반대에 기대고 있다. 목하 진행중인 경제 위기와 피노체트 사태 당시 라고스가 보여주었던 행태는 또한 칠레 공산당(Partido Communista Chileno)에 대한 지지표를 증가시켜 줄 지도 모른다. 이것은 1998년의 지방 선거에서 분명히 확인되었으며, 또한 급진적인 대안에 대한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 대륙 전역에 위기의 강도가 심화되면서 투쟁과 정치적 급진화, 양극화의 새로운 파도가 라틴 아메리카에 몰아치려 하고 있다. 임박한 투쟁들을 확실한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혁명적인 사회주의적 대안이 건설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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